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아 치열했던 사냥을 회상하고 '불멍'을 즐기기 시작했을 즈음. 아마도 그때부터 원시 인류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이 무엇인지 궁금해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만져지지 않는 밤하늘의 정체를 설명하고자 인류는 갖은 상상력을 펼쳐왔다. 상상의 흔적은 대상을 일컫는 이름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별들의 무리를 가리켜 한자 문화권에서는 은빛 강물이라는 뜻의 은하수(銀河水), 영미권에서는 우윳빛 길이라는 뜻으로 'galaxy' 혹은 'milky way'라 불러왔다.
지구가 속한 우리은하를 위에서 바라본 상상도. 인간은 우리은하 바깥으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은하의 3D(3차원) 구조를 측량해 상상도를 완성한다. 출처: NASA 홈페이지
지구가 속한 우리은하를 위에서 바라본 상상도. 인간은 우리은하 바깥으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은하의 3D(3차원) 구조를 측량해 상상도를 완성한다. 출처: NASA 홈페이지
인류의 지식체계가 견고해짐에 따라, 은빛 강물이나 우윳빛 길처럼 보이는 것은 인류가 거주하고 있는 ‘우리은하’의 단면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은하도 진화한다우리은하에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대략 100억 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각각의 별은 그 크기에 따라 다양한 수의 행성을 거느리고 있는데, 우리 지구도 평범한 별에 딸린 행성 중 하나다. 별들 사이의 공간은 새로운 별이 만들어지는 데 쓰일 가스구름으로 채워져 있다. 우리은하는 별과 행성, 가스구름 등으로 이뤄진 거대한 생태계라고 볼 수 있다. 100억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서서히 지금의 형태를 갖추게 된 우리은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변화하고 있다. 천문학자는 이렇게 영겁의 세월을 거쳐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변화하는 우리은하의 모습을 두고 줄곧 ‘진화한다’고 표현한다. 별들의 섬, 은하로 우주를 이해하기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우리은하와 같은 은하가 수천억 개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은하의 크기는 10만 광년(빛이 10만 년 동안 이동하는 거리), 은하 간 거리는 100만 광년에 달한다. 은하 간 공간에는 물질이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개개의 은하는 망망대해와 같은 우주의 빈 공간에 외롭게 솟아 있는 별들의 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은하들이 모여 상위의 구조물을 만들어내는데, 거미줄 혹은 거품을 닮은 이 거대한 구조물을 우주거대구조라 한다. 이 우주거대구조에는 은하가 몰려 있는 은하단이나 반대로 은하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우주의 빈 공간 영역이 있다. 은하는 별로 이뤄진 생태계이자 우주거대구조의 기본 구성단위이기도 하기 때문에 은하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우주를 이해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은하들은 크기와 형태, 밝기, 나이 등이 매우 다양하다. 저마다 거쳐온 진화의 역사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웃한 은하와의 상호작용은 은하의 진화를 촉발시키는데, 이웃한 은하가 접근하거나 함께 합쳐짐에 따라 은하의 특성이 크게 바뀐다. 은하단과 같이 이웃한 은하가 많은 영역에서는 은하의 진화도 상대적으로 더 빨리 이뤄진다. 즉, 은하가 위치한 환경이 은하의 진화 속도와 특성을 결정 짓는 주된 요인인 것이다.

이웃한 은하와 상호작용하는 데는 수억 년에서 수십억 년이 걸린다. 우리의 문명은 고작해야 수천 년 됐을 뿐인데, 수백억 년에 걸친 은하의 진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실시간 모니터링으로 은하의 진화를 아는 것도 불가능하고, 은하들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도 불가능한데 말이다. 이 수수께끼의 열쇠는 관측 가능한 우주엔 수천억 개의 은하가 있다는 사실에 숨어 있다. 다양한 환경, 이웃 은하와의 다양한 역학적 관계, 다양한 특성을 갖는 은하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은하의 특성과 진화의 상관관계를 통계학적으로 추론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즉, 숲을 바라봄으로써 다양한 단계에 있는 나무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나무의 일생을 파악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이 때문에 천문학자는 더 많은 은하의 정보를 수집하고자 극한의 밝기를 감지하고 동시에 방대한 우주 규모를 다룰 수 있는 첨단의 관측 기술 및 기기를 만들어내고자 애쓴다. 가상으로 우주를 만들어 연구하는 천문학자들그러나 관측만으로는 은하의 생태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가 관측하는 것은 특정 순간에 찍힌 은하들의 단편적인 모습이기 때문이다. 천문학자는 관측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시뮬레이션’이라 불리는 컴퓨터 모의실험을 수행한다. 수치 알고리즘으로 가상의 우주를 구현함으로써, 은하의 진화 및 특성 변화의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가상 우주에서는 시간 축을 거꾸로 돌리거나 빠르게 감을 수도 있고 아무런 제약 없이 공간을 순식간에 이동하거나, 특정 은하를 확대해 자세히 들여다볼 수도 있다. 가상의 우주 공간에서는 우리에게 신에 버금가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밀한 수치모형, 막대한 계산을 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그리고 최첨단의 컴퓨팅 과학이 필요하다.

필자가 속한 한국천문연구원은 은하의 특성과 진화에 대한 이해를 넓히기 위해 그동안 별개의 분야로 취급돼 온 관측, 기기 개발, 시뮬레이션을 융합함과 동시에 최첨단의 기술을 접목하는 도전적인 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협력해 천문학계의 어려운 문제 중 하나인 은하의 기원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인간의 물리적 능력은 우주의 장엄함에 비해 보잘것없지만, 인간의 사유능력은 우주를 향한 대항해를 시작한 지 오래다. 저마다 밤하늘의 은빛 강물을 지니고서 말이다. √ 기억해주세요
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신지혜 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우리은하’에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이 대략 100억 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주에는 우리 은하와 같은 은하가 수천억 개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인 은하의 크기는 10만 광년, 은하 간 거리는 100만 광년에 달한다. 은하들은 크기와 형태, 밝기, 나이 등이 매우 다양하다. 다양한 특성을 갖는 은하 정보를 수집함으로써, 은하의 특성과 진화의 상관관계를 통계학적으로 추론해 나갈 수 있다. 더불어 수치 알고리즘으로 가상의 우주를 구현함으로써, 은하의 진화 및 특성 변화의 인과관계를 분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