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경제 읽기
(9) 신기술과 사회변화

車 등장으로 농가 수익 줄었지만
도시에선 새로운 일자리 급증

AI 같은 디지털 신기술 출현하면
손실과 혜택이 공존하게 돼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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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2년 뒤 벌어질 변화에 대해서는 과대평가하고, 향후 10년간 벌어질 변화에 대해서는 과소평가한다." 사람들의 지나친 낙관적 경향을 꼬집은 빌 게이츠의 말이다. 사람들은 실제보다 변화가 더 빨리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인공지능(AI)이 어떤 직업을 대체하고, 어떤 직업이 새롭게 생겨날지 예측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경향이 두드러진다. 무엇에 대한 예측을 정확히 하는 것과 그 예측이 언제 일어날지 추정하는 일은 전혀 다른 문제다. 비선형적인 기술의 보급변화에 대한 과대평가는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다. 벤츠의 설립자인 카를 벤츠의 아내 베르타 벤츠가 100㎞ 떨어진 어머니의 집까지 직접 운전하면서 자동차의 위력을 보여준 해가 1888년이었다. 그로부터 17년 후인 1905년 뉴욕 브로드웨이 사진 속에는 말과 수레만 가득할 뿐 자동차는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15년 뒤인 1920년에 같은 장소에서 찍힌 사진 속에는 자동차와 수레 외에 말은 한 마리도 찾아보기 어렵다.

시기를 막론하고 신기술의 보급이 일정한 속도로 이뤄진 적은 없다. AI 기술도 이와 같다. 햄버거 매장에서의 주문 과정은 AI로 빠르게 대체될 수 있지만, 안전과 직결되는 자율주행차의 등장은 이보다 훨씬 느릴 수 있다. 동일한 기술이라도 경제 전반에서는 분야에 따라 순차적인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AI가 경제에 미치는 직간접적인 영향을 균형 있게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의 등장과 변화자동차의 등장은 인류의 생활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킨 사건 중 하나다. 심지어 대공황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미국 인구통계청은 자동차의 등장이 대공황의 주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보고서 《농업용 말》(1933)을 발간했다. 1870년 당시 미국에는 다섯 명당 말 한 마리가 있었다. 말은 사람보다 10배의 칼로리를 소비했던 탓에 농부들은 말을 위한 별도의 작물을 재배했다. 자동차가 등장하자 말 개체 수가 급감했다. 덩달아 말이 먹는 농작물 수요도 급감했다. 이제 농부들은 말이 아니라 사람이 수요하는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말 사료를 재배하던 농지 약 730억㎡에 면화와 밀을 심었다. 시장에는 이들 작물의 공급이 넘쳐났고, 이는 가격 하락과 농부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졌다. 농부들의 총 매출은 1919년 49억달러에서 1929년 26억달러로, 1932년에는 8억5700만달러로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농가는 대출이자도 감당하기 어려워졌다. 시골 은행들은 담보권을 행사하기 시작했지만, 연체 속도를 늦출 순 없었다. 결국 시골 은행들도 더 큰 은행에 진 빚을 상환하지 못하게 됐다. 한편 도시에는 여전히 많은 일자리가 농업을 기초로 한 제조, 포장, 농기계에 의존하고 있었다. 농가의 수익성 악화로 인한 연쇄 효과가 전국적으로 확산된 배경이다. 보고서는 이로 인해 국가 노동력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약 13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고 설명한다.

한편 자동차의 등장을 두고 정반대의 긍정적인 파급 효과도 존재한다. 1917년 뉴욕은 이미 전국 자동차 판매의 중심지였다. 마차와 마구를 판매하던 상점은 자동차 부품을 판매하는 상점으로 변모했고, 미국말교환소가 있던 자리에는 벤츠와 포드 소유의 고층 빌딩이 생겨났다. 당시 자동차는 각 가정에서 주택 다음으로 가장 비싼 소유물이었던 탓에 일시불로 구매할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신용을 제공하는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자동차 할부는 금세 전국의 소매 할부판매의 절반을 넘어섰다. 뉴욕의 자동차가 금융 부문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다. 자동차의 등장은 광고계 일자리에도 영향을 미쳤다. 시속 50㎞ 이상의 속도로 이동하는 사람에게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광고는 무의미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이 바로 기업 로고였다. 자동차의 등장이 기업 로고 디자이너라는 일자리를 만든 것이다. 적응을 통한 균형AI가 중심에 있는 디지털 경제는 자동차의 등장만큼이나 격변의 모습을 보일 것이다. 자동차가 등장했던 시기와 마찬가지로, 신기술의 보급은 기술뿐 아니라 제도의 혁신까지 요구할 것이다. 대공황 당시 정부는 특정 작물의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해 보조금 지급 정책을 고안했고, 은행 건전성 확보를 위해 예금자 보험과 규제를 신설했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자동차가 경제적 손실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 창출의 요인이 됐듯이, 신기술의 등장 역시 손실과 혜택이 동시에 존재할 것이다. 문제는 손실과 혜택 사이의 균형이다. 그리고 균형을 위해서는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 변화로 인해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결과를 막을 순 없겠지만, 조금은 낙천적인 마인드로 변화에 적응하려고 노력할 때 더 많은 승자와 더 적은 패자가 존재하는 디지털 경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