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의 이동에 의한 하전입자가 만드는 번개.  Getty Images Bank
전자의 이동에 의한 하전입자가 만드는 번개. Getty Images Bank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던 철학자 탈레스는 동물의 털과 호박(화석화된 송진)을 맞대고 문지르면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작용의 주역은 전자의 이동이다. 호박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λεκτρον(일렉트론)에서 전자의 영어단어 electron이 유래했음은 현대인의 상식이다. 하지만 많은 상식이 그렇듯이 배경이나 근본적인 속성에 대한 이해는 막연하다.

전자는 본래 물질 구성의 기본 요소인 원자 내에 존재한다. 쿨롱 힘으로 양의 전하를 띠는 원자핵에 구속되어 있다. 전자의 파동성을 고려하여 양자역학 방정식을 풀어내면 전자가 존재할 수 있는 불연속적인 상태가 구해지는데, 이를 전자궤도 혹은 오비탈이라고 한다. 원자의 성질은 전자가 들어있는, 가장 큰 궤도에 따라 정해진다. 구조가 비슷한 궤도까지 전자를 채운 원자들은 비슷하게 행동한다. 이런 개념을 확장한 것이 주기율표다.

두 개 이상의 원자는 전자를 공유함으로써 화학 결합을 형성한다. 20세기 초반 GE에 근무하던 물리학자 랭뮤어가 화학자 루이스와 ‘원자가 이론’을 제안하면서 주기율표의 원소들이 화학 결합을 형성하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분자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연구하는 분자생물학이 시작되고 DNA 구조가 분석될 수 있었다. 열·에너지로 인해 원자핵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자유전자원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 구조에서 수많은 원자를 아우르는 전자궤도의 중첩 상태 같은 것이 생기는 것을 양자역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을 에너지 밴드라고 부른다. 구리나 은과 같이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는 밴드 내부에 자유로운 전자가 많이 있다. 부도체라도 전자가 이동할 수 있는 밴드가 가까이 있으면 도체 같이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을 반도체라고 한다. 반도체를 이용해 전자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덕분에 스마트폰을 비롯해 수많은 전자기기를 만들 수 있다.

원자핵의 인력(끌어당기는 힘)은 전자가 진공이나 대기 중으로 튀어나오는 것을 막는 에너지 장벽으로 작용한다. 수천도 이상의 가열이나 자외선 같은 에너지 입자와의 충돌로 전자가 이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다. 높은 전기장으로 당길 경우에도 벽을 뚫는 유령처럼 ‘터널링’이라는 양자역학 현상을 통해 장벽을 벗어날 수도 있다. 원자핵의 속박을 벗어나 진공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전자들은 (금속에 있는 전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유전자라 불린다.

진공이 나빠질수록 전자가 원자와 충돌할 확률이 증가하는데, 이런 충돌 과정을 통해 전자의 개수가 원자핵의 양성자 수보다 많거나 적어지면서 원자 자체가 전하를 띠는 이온이 형성된다. 이런 이온과 전자를 통칭하여 하전입자라고 하고, 이들이 거시적으로 평형을 이루며 집단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상태를 플라스마라고 한다. 오늘날 반도체 공정의 핵심 기술이다.

전기장을 펼치는 하전입자가 관찰자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움직이는 경우 상대론적 효과로 인해 자기장이 생성된다.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를 유도하는 원리는 맥스웰이 정립한 전자기학 방정식으로 설명된다. 이는 발전기와 일상적 노동의 상당 부분을 대신해주는 전동기의 기본이다. 자유전자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전자기파물리학자 크룩스는 1870년대 진공관 내에서 자유전자의 흐름을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뢴트겐이 발견한 엑스레이는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던 전자가 장애물을 만나 갑자기 정지하게 될 때 발생하는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최초의 발견 이후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구한 의료기술의 핵심이 되었다. 전자의 속도가 빠를수록 파장이 더 짧은 전자기파(방사광)를 발생시킬 수 있으므로 다양한 전자 가속기가 경쟁적으로 개발되었다. 최근 우리나라도 더 정밀한 빛을 만들어 첨단과학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가속기를 충북 청주에 짓기로 했다.

자유전자의 운동에너지 일부는 전자기파의 형태로 변환될 수 있다. 고전압으로 가속되어 빠르게 운동하는 다량의 전자빔을 잘 제어해서 고출력의 마이크로파를 발생시킬 수 있는데, 가정에서 조리에 이용하는 전자레인지에 들어있는 마그네트론이라는 장치가 대표적이다.

온도를 가진 모든 물체는 전자가 열운동을 하게 되므로 진공 속의 자유전자처럼 전자기파를 방출하게 되며, 이를 흑체복사라고 한다. 태양이 내놓는 빛도 핵융합에 의한 고온의 흑체복사다. 온도에 따라 그 파장이 달라지는데 용광로의 쇳물처럼 온도가 높으면 파장이 짧은 가시광선을 내놓는다. 체온이 36.5도인 여러분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지만) 문자 그대로 ‘빛나는 존재’다!

현대물리학이 집대성된 표준 모형에 의하면 전자는 쿼크, 보존, 렙톤으로 분류되는 물리학의 기본 입자 중에서 렙톤그룹에 속하는 작은 알갱이다. 화학과 생물학의 주요한 현상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어 현대 기술 문명의 토대가 된다. 건조한 겨울철 스웨터를 벗으며 불꽃을 목격하거나 여름철 장대비 속에 번쩍이는 번개를 접하게 되면, 원자핵의 속박을 떨치고 나와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주는 ‘꼬마요정’ 전자의 자유에 관해 잠시라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 기억해주세요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한성태 한국전기연구원 전기물리연구센터장
전자는 본래 물질구성의 기본 요소인 원자 내에 존재한다. 양의 전하를 띠는 원자핵에 구속되어 있는 전자는 수천 도 이상의 가열이나 자외선 같은 에너지 입자와의 충돌로 원자핵의 인력(끌어당기는 힘)에서 벗어나 진공이나 대기 중으로 튀어나온다. 전자는 화학과 생물학의 주요한 현상에 관여할 뿐만 아니라 자유롭게 제어할 수 있어 현대 기술 문명의 토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