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쓰기'의 요체는 여기에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명사 풀어 쓰기'의
요령은 동사·형용사를 써서 서술성을 살린다는 것이다. 이는 또 어려운
자어를 배제하고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풀어 씀으로써 이뤄진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명사 나열해 쓰면 글이 딱딱해져요
최근 법무부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이 사건은 통칭 ‘아무개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으로 불린다. 약칭으로 ‘아무개 모해위증 사건’이다. 우리 관심은 사건의 내용이 아니라, 글쓰기 방식인 단어들의 선택과 구성에 있다. 이름 대신 인칭대명사 ‘아무개’를 쓴 까닭은 그 때문이다. ‘쉬운 단어’의 선택이 좋은 글쓰기의 출발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어떤 단어를 쓰느냐 하는 것(어휘 선택)은 글쓰기에서 우선적으로 부딪히는 문제다. 단어는 단독으로 의미를 띨 수 있는 최소단위다. 그래서 글쓰기의 시작을 ‘단어의 선택’에 있다고 한다. 그 다음에는 선택한 단어들을 얼마나 잘 배치하느냐(문장 구성)가 관건이다. 그에 따라 온전한 문장이 되기도 하고 배배 꼬인 비문이 되기도 한다.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그만큼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아무개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은 그런 점에서 얼마나 적절했을까? ‘어휘 선택’과 ‘문장 구성’의 관점에서 보면 피해야 할 어휘 조합이다. 사전 정보 없이 표현만 놓고 볼 때 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점에서다.

우선 ‘모해(謀害)’부터 막힌다. ‘꾀할 모, 해할 해’ 자다. 그나마 한자를 알면 ‘꾀를 써서 남을 해침’이란 뜻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한자 의식이 흐려진 요즘 한글로 쓴 ‘모해’를 알아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법령 용어 순화작업을 해오고 있는 법제처는 2014년 《알기 쉬운 법령 정비기준》을 펴낼 때 ‘모해’를 ‘해침’으로 바꿔 쓰도록 권했다. ‘위증’은 ‘거짓 증언’이라고 하면 쉽다. ‘모해위증’은 결국 누군가에게 불이익을 줄 목적으로 사실과 다르게 증언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아무개 거짓증언 (의혹) 사건’이라고 했으면 좀 더 알아보기 쉬웠을 것이다. 어려운 한자어 줄이고 말하듯이 풀어 써야하지만 이 표현은 많은 내용을 생략하고 있어 여전히 온전한 전달문이라고 할 수 없다. 구성 측면에서 치명적인 결함은 주체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사건의 핵심어는 ‘아무개’와 ‘거짓증언’인데, ‘아무개’는 거짓증언의 주체가 아니다. ‘거짓증언 (의혹)’의 주체는 검찰이다.

전체를 길게 풀면, ‘아무개의 뇌물수수 사건에서 증인으로 나선 이들이 위증을 했고, 검찰이 이들에게 그 위증을 하도록 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이렇게 여러 내용을 담은 문장을 몇 개 명사로 나열한 게 ‘아무개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이다.

글쓰기에서 명사 나열의 효용은 압축성과 간결미에 있다. 대신에 서술성은 떨어진다. 어떤 현상에 대한 명사화 과정은 곧 추상화·개념화를 뜻하는 것과 같다. 추상화는 세부적인 사항을 제거하는 효과를 갖는다. 그래서 어떤 사건의 내용이 추상화 과정을 거친다는 것은 곧 그 말이 나타내는 ‘실체(reality)’와의 관계가 덜 ‘직접적’인 것이 된다는 뜻이다. 구조언어학자와 기호학자들이 텍스트 분석에서 명사 남용에 주목한 까닭은 그 때문이었다.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글쓰기에서 명사가 많아지면 문장이 딱딱해지고 해독에도 어려움을 초래한다. 우리말이 서술어 중심이라는 것은 동사나 형용사를 많이 써야 우리말다워진다는 뜻이다. ‘쉽게 쓰기’의 요체는 여기에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명사 풀어 쓰기’의 요령은 동사·형용사를 써서 서술성을 살린다는 것이다. 이는 또 어려운 한자어를 배제하고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풀어 씀으로써 이뤄진다. ‘모해위증 교사 의혹 사건’보다 ‘거짓증언을 부추긴 혐의를 받는 사건’이라고 하는 게 이해하기 쉽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