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덩이처럼 커진 서울지하철 부채를 놓고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가 머리를 맞대고 있다. 하지만 해법 마련이 영 신통찮다. 만성 적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서울지하철 운영에는 2021년 한 해에만 1조6000억원의 자금 부족이 예고돼 있다. 지하철을 운영하는 서울시 산하 지방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로 채무 불이행 사태를 맞을 수 있다”는 주장을 공식화하기에 이르렀다. 최근 서울시장 대행 주재로 ‘서울교통공사 재정 정상화 태스크포스’라는 긴 이름의 회의까지 열렸지만, 문제의 핵심과 본질을 짚고 근본 대책까지 세워낼지 의구심이 든다. 공사는 ‘65세 이상 무임승차’가 부실의 근본 요인이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서울시든 중앙정부든 그만큼 지원하라는 입장이다. 그도 아니면 요금 인상을 제대로 하든지, 그것도 안 되면 빚을 더 낼 수 있게 해 달라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공사의 군살 빼기와 자구책 마련을 요구하면서 주무 부처인 행정안전부 눈치를 보는 상황이다. 행안부는 행안부대로 서울을 제외한 다른 지방의 지하철공사는 물론 다른 지방 공기업을 의식하고 있다. 적자투성이 서울지하철에 자금 지원을 더 해야 하는가.
[찬성] '낮은 요금'은 정책 판단 따른 것...정부나 서울시 지원 확대 불가피서울지하철의 부채 규모가 크고 최근 몇 년 새 빚이 급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자체로만 보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여길 만한 상황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해서 생긴 부채인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다. 2020년도 기준으로 서울지하철이 승객 한 명을 태우는 데 든 비용은 2020원이었다. 하지만 1250원인 기본요금은 수년째 동결돼 있다. 기본 운영비, 안전관리 비용 등을 비롯해 모든 비용이 다 올랐으나, 요금은 억지로 안 올린 것이다. 산업·경제의 다른 부문과 마찬가지로, 최저임금 인상 여파에 따라 인건비는 여기서도 급등했다.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지하철 요금을 인상하는 게 정상적이다. 또 하나의 큰 적자 요인은 ‘65세 이상 무임승차’ 정책이다. 이른바 ‘지공(지하철 공짜)거사’는 고령화 추세에 따라 계속 늘어나고 있다. 1984년 이 정책이 처음 시행됐을 때만 해도 전체 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비율은 4% 정도였다. 무료요금이 지하철 경영에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급격한 고령화로 인해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18년 14.3%로 치솟았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2030년에는 24.5%, 2040년에는 32.8%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와 있다. 이런 현실은 정부도 여야 국회도 모두 외면하고 있다. 선심 정책을 도입할 때는 모두가 그럴 듯했지만, 그 부담과 여파는 두고두고 이어지는 것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정부가 져야 한다. 정책에 대한 총체적 책임을 지는 중앙정부든, 서울지하철 운영에 대한 직접 책임을 지는 서울시든 상관없이 정부가 해결할 문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간 협의를 통한 분담도 생각해볼 만하다. 직접 자금 지원이 어렵다면 서울지하철이 빚이라도 더 낼 수 있도록 ‘부채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지하철에만 부채 한도를 늘릴 수 없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서울지하철의 대중 승객 분담률을 본다면 예외로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납득될 것이다. [반대] 서울지하철만 '특혜' 주긴 곤란...'비용과 원가'에 모두 솔직해야 할 때공기업이든 민간 기업이든 대책 없이 빚을 늘릴 수는 없다. 기업뿐 아니라 정부나 가계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방 공기업이나 대형 국가 공기업도 다 마찬가지다. 갚아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에서 빚에는 예외가 없다. 서울지하철 운영에 부족한 자금이 2019년 3369억원이었던 것이 2020년에는 9872억원으로 급증했다. 1년 새 세 배나 늘어난 것인데, 올해는 1조5991억원으로 더 늘어난다는 게 서울교통공사의 전망이다. 급기야 공사가 언론에 대고 반(半)공식적으로 ‘채무 불이행’에 처한 상황을 토로한 배경이다. 공사가 보유 빌딩 등 자산 매각 자구책으로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은 1000억원밖에 안 된다.
공사는 일단 서울시에 빚 상환용 채권(공사채) 발행 한도를 늘려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당장 충분한 수준만큼 요금 인상을 하지 못한다면 이게 부도를 면할 현실적 대안이라고 본다. 공사의 채권 발행은 서울시 차원에서 어느 정도 가능하겠지만, 서울시도 이런저런 복지 지출 증가로 재정 운용에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당장 급한 것은 이미 쌓인 거대한 부채와 계속 커지는 적자의 발생 원인을 정확히 하는 것이다. ‘비용·원가 계산’과 ‘수익자(이용자) 부담 원칙’ 확인이다. 여기서 해법이 나오게 돼 있다. 이미 예외적으로 부채비율 한도를 높여준 서울교통공사에만 계속해서 ‘특혜’처럼 이 비율을 늘려 빚이 늘어나게 해서는 곤란하다. 지하철 요금 인상 권한은 시·도에 있는 만큼 서울시가 요금 인상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한 번에 현실화하는 게 시민에게 부담이 되고, 다른 공공요금 인상을 부추긴다는 부담을 안고 있다면 순차적 요금 인상 로드맵이라도 제시해야 한다. 지하철 요금에 대해 심야 및 주말 할증이나 출근시간대가 아닌 경우 운행 횟수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늘어나는 빚은 결국 갚아야 할 것이다. 손도 못 댈 정도로 커질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요금도 비용도 감출 수는 없다. √ 생각하기- 심각해지는 한국형 NIMT…누적된 빚 '언젠가, 누군가가' 갚아야 서울교통공사, 서울시, 행정안전부 관련 세 곳의 주장은 얼핏 들으면 모두 그럴듯하다. 하지만 자기 쪽 주장만 내세우고 있다. 공사는 ‘노인 무료’가 모든 문제의 전부인 것처럼 주장하지만 자체 경영혁신 노력은 회피한다. 서울시는 방대한 예산을 다 어디에 써버리는지 만기가 닥치는 공사의 부채 상환을 도울 여력이 없다. 자본금을 늘리는 등 ‘회계기술’로 빚 확대에나 급급하는 이유다. 행안부는 급증하는 지방부채를 나름대로 억제하고 있지만, 기획재정부 주도로 늘어나는 국가채무를 보면 중앙정부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빚더미 서울지하철이 예고된 대로 악화하면서 ‘안전 예산’ 마련도 어려운 지경이 됐다. 주요한 원인은 폭탄 돌리기 같은 ‘NIMT(not in my term·내 임기 중엔 불가)’다. 내 임기 중에는 요금 인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 기관 공히 권한 행사에만 적극적일 뿐 모든 책임은 다른 곳으로 넘기는 고질적 행정 병폐도 한몫했다. 2021년 1000조원을 넘게 될 국가부채도 ‘내 임기 중에 거덜 나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한국형 NIMT’의 결과물 아닌가. 내 임기 중에는 모두 폼 잡을 수 있는 선심 결정만 하려 든다. 그렇게 정부도 지자체도 공기업도 모두 빈털터리 재정이 돼 가는 게 문제다.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