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은(銀) 탄환' 코로나 백신
화이자·모더나 mRNA 방식
항체 만드는 유전정보 전달
바이러스벡터 방식은
유전자 조작 바이러스 활용
원천기술 진입장벽 높고
임상에도 수천억 이상 자금 필요
신종 전염병이 발병한 지 1년여 만에 그에 맞서는 백신이 개발된 것은 세계 의료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코로나19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이 심각하고 백신 개발에 전 세계 인력과 자본이 집중 투입됐다는 의미다. 코로나19와 인류 사이의 전쟁일 뿐 아니라 백신 개발과 접종을 둘러싼 국가 간, 제약사 간 글로벌 경쟁이 여전히 뜨거운 이유이기도 하다. 백신 개발 선점 경쟁미국 제약회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지난달 8일 영국에서 처음 접종됐다. 중국에서 코로나19가 처음 발병한 것으로 추정되는 2019년 11월 17일 이후 1년여 만이다. 중국 푸단대 연구진이 코로나19의 유전정보(염기서열)를 공개한 지난해 1월 10일 이후 200여 개 글로벌 제약사가 백신 개발에 나서 현재 화이자, 모더나(미국), 아스트라제네카(스웨덴·영국 합작기업) 등 제약업체들이 영국 등에서 사용 허가를 받았다. 우리나라는 이들과 얀센(벨기에)의 백신까지 포함해 네 가지 백신을 도입하기로 했다.
백신은 실제 병원체보다 독성이 약하거나 병원체와 비슷한 물질을 몸속에 넣어 싸워보게 한 뒤 대응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그러나 화이자와 모더나가 처음 개발한 ‘리보핵산(mRNA) 백신’은 약화시킨 바이러스를 몸속에 넣는 게 아니라 mRNA(메신저 RNA)를 이용해 코로나19와 같은 표면 돌기(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정보를 전달한다. 그러면 체내 면역세포가 여기에 대응할 항체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이 개발한 ‘바이러스벡터 백신’은 몸속에서 증식하지 않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다른 바이러스(아데노바이러스)에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드는 DNA를 끼워넣어 세포까지 운반하는 방식이다. 두 종류는 모두 코로나19 변이에 대한 대응력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바이러스 변이가 나와도 그에 맞는 유전물질만 갈아 끼우면 되기 때문이다. 면역 효과는 화이자가 95%, 모더나 94.5%, 아스트라제네카가 70% 정도다.화이자·모더나 mRNA 방식
항체 만드는 유전정보 전달
바이러스벡터 방식은
유전자 조작 바이러스 활용
원천기술 진입장벽 높고
임상에도 수천억 이상 자금 필요
이 밖에 러시아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학센터가 개발한 ‘스푸트니크 V’의 면역 효과가 95%라고 밝혔지만 정확한 데이터가 공개되지 않았고, 중국 시노팜과 시노백의 백신도 자국에서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백신 접종도 치열한 경쟁코로나19 확산세가 심각한 영국과 미국이 대량의 백신을 확보하는 등 백신 접종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도 치열하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에선 지난달 17일부터, 독일 등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은 지난달 26~27일, 캐나다 멕시코 칠레 코스타리카 등 북미와 남미에서도 지난해 말을 전후해 화이자 백신 접종을 시작했거나 곧 돌입할 예정이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지난달 21일 최초로 화이자 백신을 공급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백신 개발이 실패할 위험을 감수하고 이전부터 제약사들과 거액의 계약을 맺은 국가다.
러시아와 중국산 백신을 도입하는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효과에 대해서는 의문이 제기되지만 그동안 중국에선 약 100만 명, 러시아에선 44만 명이 자국이 개발한 백신을 맞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르헨티나는 러시아산, 터키 브라질 인도네시아 바레인 아랍에미리트 등은 중국산 백신을 도입했거나 곧 접종을 시작한다. 선진국 백신을 도입하지 못하는 국가들이 차선책으로 중국·러시아산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다음달 화이자 접종을 시작할 예정인 가운데 일부 부유층이 중국산 백신을 밀수입해 맞은 것으로 전해졌다. 뒤처진 한국의 백신 개발·접종한국은 다음달 후반께 아스트라제네카를 시작으로 백신 접종에 나선다. 오는 5월에는 모더나 백신이 들어오는 등 지난 14일 현재 4600만 명분의 백신 도입이 확정됐다. 얀센 백신을 제외하면 모두 두 번 맞아야 한다.
SK바이오사이언스 제넥신 옵티팜 진원생명과학 셀리드 등 국내 제약업체들도 백신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대규모 임상시험인 3상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1~2상 단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백신은 원천 기술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수십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장기간 임상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할 수 있는 조직적 개발역량이 필요하다. 백신 개발에 통상 4~5년 걸리고 수천억원의 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국내 업체들은 이 같은 역량을 갖추기엔 아직 역부족인 상황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확진자 발생을 비교적 잘 억제하고 있는 ‘K방역’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백신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임상 3상을 위해서는 임상 참여자의 절반에게 백신 후보물질을, 나머지 절반은 가짜 백신(플라시보)을 투여하고 일정 기간이 지난 후 감염·증상 발현율을 비교해야 한다. 가짜 백신그룹에서 30%가 발병했는데 백신후보군에서 3%만 발병했다면 90%(확진자 가운데 백신군과 가짜 백신군 비율) 예방 효과가 있다고 본다. 정부는 올 11월이면 전 국민 70% 정도가 백신을 맞아 집단면역이 형성된다고 하지만 그 이후에도 마스크는 계속 써야 할 전망이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NIE 포인트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신 개발을 추진하는 8개 업체에 백신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100억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이유는 왜일까?
② 백신이나 치료제의 위탁생산은 잘하지만 자체 개발 역량이 떨어지는 한국이 원천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③ 바이러스 변종이 발생해 효과가 떨어지거나 유효기간이 짧을 수 있는 백신·치료제를 서둘러 개발하는 방안과 수시로 뚫리기도 하지만 방역망을 강화하는 방안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주력해야 하는 방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