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공업 중심 한국 대표기업
이젠 ICT 중심으로 재편
'포천 글로벌 500' 명단도 격변
혁신 대신 현상유지 급급하면
어떤 기업도 살아남지 못해
1700년대부터 400여 년간 명문기업들의 태동부터 소멸까지를 다룬 책 《세계 명문기업들의 흥망성쇠》에서 저자인 래리 슈웨이카트와 린 피어스 도티는 ‘역사 속 모든 기업은 꿈을 꿀 때 번창했고, 현상 유지를 하려 할 때부터 쪼그라들기 시작했다’고 결론 짓고 있다. “로마는 번영의 정점에서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말과 함의가 맞닿는 말이다.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기업의 변천사는 시대의 변천과 궤를 같이한다. 삼성과 LG만 60년대부터 10위권 유지1960년대 동명목재는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에 꼽히는 한국의 간판 기업이었다. 3년 연속 ‘수출최고상’을 받을 정도로 경제에 기여가 컸다. 1964년 수출 1억달러 달성을 기념해 제정된 ‘수출의 날’에 수상한 업체는 7곳이다. 동명목재 천우사 성창기업은 합판수출, 삼호무역 판본무역 삼성물산은 섬유, 영풍상사는 아연 등 광산물을 수출하는 기업이었다. 목재 아연 등 원자재와 섬유 등 경공업이 우리 경제를 떠받치던 시절이었다.이젠 ICT 중심으로 재편
'포천 글로벌 500' 명단도 격변
혁신 대신 현상유지 급급하면
어떤 기업도 살아남지 못해
자산 기준으로 1960년 당시 10대 그룹에 들었던 기업 가운데 현재까지 10위권에 머물러 있는 곳은 삼성과 LG뿐이다. 대한전선 대동공업 등은 존속하고 있지만 순위가 급락했고 삼호 개풍 동양 극동해운 등은 문을 닫거나 다른 곳에 인수합병됐다. 일제강점기 무역업에서 시작한 삼성은 1953년 설탕공장인 제일제당, 1954년 섬유업체인 제일모직 설립으로 재계 1위에 올라섰지만 1970~1980년대에는 현대 LG 대우 등에 밀려 4위권에 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1969년 TV 생산을 위해 설립한 삼성전자가 1983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면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지금은 글로벌 기업으로서 위상을 확고히 하고 있다. LG그룹 역시 화장품, 화장품 용기용 플라스틱 등을 만드는 락희화학(현 LG화학)으로 사업을 시작해 1958년 금성사(LG전자)를 설립하면서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 거듭났다. 1967년 설립한 현대모타(현대자동차) 대우실업 롯데제과, 1968년 선경직물 등은 이후 현대그룹 대우그룹 롯데그룹 SK그룹으로 성장하는 시발점이었다. 1970년대는 제조업 고도화와 중화학공업 육성을 통해 동국제강 국제 두산 코오롱 효성 등이 그룹 체제로 변모했고 중동건설 붐으로 동부 삼환 등이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반면 화신 율산 삼호 등이 이 시기에 사라졌다. 1980년대는 정부의 중공업 통폐합과 산업 합리화 조치로 대형화에 나선 현대 삼성 LG 대우 SK 등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이들이 국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지는 ‘5대 그룹 체제’를 갖췄다. 반면 재계 7위였던 국제그룹과 명성그룹 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았다.
1990년대는 재계 ‘2세 시대’가 열리면서 삼성에서 신세계, 전주제지(한솔), 제일제당(CJ) 등이 분리됐고 LG에서도 희성그룹이 분리독립했다. 또 LG에선 2004년 파트너 관계였던 GS그룹이 독립해 나갔다. 반도체와 이동통신이 각광받으며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났고 한국이동통신(SK텔레콤) 등 통신업체가 주목받던 시기였다. 1997년 외환위기로 한보그룹이 무너졌고 휘청대던 기아자동차는 현대자동차그룹에 인수됐다. 동아건설 한일그룹 뉴코아 거평 등이 매각되거나 공중분해됐다. 카카오 네이버 등이 새로운 간판 기업으로2000년대에는 ‘세계경영’을 표방했으나 분식회계 등에 연루된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재계는 ‘4대 그룹 체제’로 바뀌었다. 한때 STX그룹과 웅진그룹이 중견기업으로 새롭게 부상했으나 오래가지 못해 해체되거나 외형이 쪼그라들었다.
2010년 이후 대기업집단으로 신규 지정된 10곳 가운데 카카오 네이버 넥슨 넷마블 등은 인터넷·게임 분야이고 중흥건설 호반건설 SM(옛 우방) 등은 건설업체다. 또 닭고기로 유명한 하림, 도시가스 기업 삼천리, 바이오기업 셀트리온 등이 올랐다. 글로벌 500 기업도 ‘격변’미국 경제 전문지 포천이 총매출을 기준으로 발표하는 ‘포천 글로벌 500’도 시대에 따라 급격한 변동을 겪었다. 1995년 상위 4개사는 모두 일본 종합상사가 차지했지만 2000년대 위상이 추락하면서 유통업체 월마트, 미국과 유럽의 석유회사 및 자동차 업체가 상위권을 휩쓸었다. 2010년대에는 중국의 급성장과 함께 중국 기업이 100개 넘게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는 브랜드디렉터리에 따르면 2004년 기준 세계 기업 브랜드 순위는 코카콜라 마이크로소프트(MS) 씨티은행 월마트 IBM 홍콩상하이은행(HSBC) 제너럴일렉트릭(GE) 순이었는데, 10년 뒤에는 애플 삼성 구글 MS 버라이즌 GE AT&T 아마존으로 바뀌었다.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 노키아의 몰락은 트렌드 간과와 혁신 실패의 대표적 반면교사 사례로 꼽힌다.
최근에는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정태웅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redael@hankyung.com NIE 포인트① 섬유 등 경공업, 철강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기계 등 중화학공업, 전자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등으로 끊임없이 교체돼온 한국의 간판기업은 앞으로 어떤 업종으로 바뀔까.
② 섬유가 주력업종인 코오롱과 효성처럼 오랜 역사에도 여전히 명맥을 유지할 뿐 아니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기업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③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갈 한국의 간판기업이 갖춰야 할 역량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