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4차 산업혁명과 GDP
[4차 산업혁명 이야기] 디지털 경제에서 과소측정되는 GDP
2014년 페이스북이 영국에서 낸 세금은 고작 4327파운드(약 660만원)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웨일스의 한 마을에서는 소규모 사업체 운영자들이 납세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자신들이 납부한 세금이 페이스북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이 사건의 근본원인은 과세의 기본이 되는 생산활동을 측정하는 방식에 있다. 즉, GDP가 오늘날 디지털 경제 시대의 생산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국내총생산과 디지털경제

경제성장의 기준이 되는 국내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은 국가 단위를 기본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다. 일정 기간에 한 국가 내에서 새롭게 생산된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를 합해 산출한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기업의 생산활동이 국가의 경계와는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GDP 이전의 생산지표는 국민총생산(GNP:Gross National Product)이었다. 이는 국가가 아니라 국민과 기업을 단위로 측정된다. 국내에서 생산했든, 외국에서 생산했든 한 나라의 국민과 기업의 생산활동이라면 모두 생산에 반영했다. GNP에서 GDP로 생산지표가 변경된 이유는 다국적 기업의 등장 때문이었다. 아이폰의 개발은 캘리포니아에서 이뤄지지만 조립은 중국에서 이뤄지는 탓에 생산이 이뤄지는 중국을 기준으로 경제를 측정해야 한 국가의 생산활동을 올바르게 측정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물론 다른 의견도 존재한다. 《공급충격(Supply Shock)》의 저자인 브라이언 체코는 GNP가 GDP로 바뀐 이유는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조지 H W 부시 대통령이 자신의 경제적 성과를 크게 포장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한다. 국가를 기준으로 생산기준을 바꾸면 미국 내 자동차와 전자제품 산업에 많은 투자를 했던 일본 기업들의 생산량을 모두 미국의 생산으로 포함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다시 GNP로 기준을 바꾼다면 서구 국가들의 경제상황이 더 나아 보이게 되고, 제조공장이 있는 개발도상국들은 더 나쁘게 보일 것이다.

GDP가 등장한 원인이 어떻든 중요한 점은 디지털 경제 시대에 GDP가 더이상 국가의 생산활동을 올바르게 측정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새롭게 생산된 가치’가 측정 대상이기 때문이다. 여가와 가사노동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디지털 경제 시대에는 무엇이 생산된 가치인지 명확하지 않다. 불과 4~5년 전만 하더라도 비행기 탑승 전에 수화물에 태그를 붙여주고 보딩패스를 확인해주는 직원이 많았다. 이들의 급여는 모두 생산활동으로 집계된다. 여전히 직원들을 찾아볼 수는 있지만 오늘날 많은 경우 디지털 키오스크에서 여행객 스스로 이를 처리한다. ‘시장가치의 합’으로 계산되는 GDP의 정의상 시장에서 거래돼 가격이 형성되지 않는 재화와 서비스는 GDP와 무관하다. 나를 위해 스스로 한 행위는 GDP에 측정되지 않는 이유다. 과거 GDP의 일부였던 생산활동이 디지털화되면서 생산활동의 경계 밖으로 사라진 것이다.

과소측정되는 디지털 경제

많은 경제학자들은 기술의 발전으로 경제성장, 즉 GDP의 증가가 과소평가된다고 주장한다. GDP는 시장가격을 중심으로 생산의 가치를 반영하지만 기술의 발전은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기 때문이다. 10년 전의 최고급 TV 가격과 오늘날 최고급 TV 가격은 큰 차이가 없다. 사실상 가격이 낮아진 셈이다. 하지만 얼마만큼 과소평가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에릭 브린욜프슨 MIT 교수와 오주희 에라스무스대 교수는 2002년과 2011년 사이 미국인들이 1주일 동안 인터넷 서비스(페이스북, 구글, 위키피디아, 유튜브 등)를 사용한 시간이 3시간에서 5.8시간으로 증가했음을 발견했다. 소비자들은 이 시간을 다른 생산활동에 썼더라면 경제가 보다 성장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시간 증가가 초래한 GDP 감소분은 국가 전체적으로 5640억달러에 달한다. 만약 이만큼이 GDP에 반영됐다면 미국 경제성장률은 2011년에 0.4%포인트 상승했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디지털 경제 시대의 생산활동 측정

GDP는 1930년대 쿠즈네츠에 의해 고안된 개념이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기준으로 경제를 측정할 방법을 찾았다. 당시의 상황이란 제조업 중심의 경제를 의미한다. 오늘날 GDP가 경제를 과소측정하는 이유는 경제의 많은 부분이 서비스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시대에는 한 제품의 가치가 물리적인 형태에서만 나오지 않고 브랜드, 지식재산권과 같은 무형의 자산 즉 서비스에서도 창출되고 더 크게는 서비스화된 생태계 자체에서 나온다. 곳곳에서 이뤄지는 데이터 중심의 디지털 전환은 이런 추세를 가속화한다. 제트엔진을 판매하던 회사는 엔진 판매뿐만 아니라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측정비, 유지보수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대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 서비스는 제트엔진 회사가 있는 미국이 아니라 인도의 고급 IT(정보기술) 인력들이 제공한다. 물리적 제품 판매의 수입은 미국에 쌓이지만, 서비스 수입은 세율이 낮은 인도에 쌓인다. 실제와 다르게 본사가 있는 미국의 GDP가 과소측정되는 이유다.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디지털 전환은 단지 기존의 활동이 0과 1의 디지털 정보로 바뀐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디지털 정보 중심으로 제도와 문화, 조직구조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제를 측정하는 방식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를 중심으로 한 측정방식의 한계가 점점 커지고 있다. 중국에서 아이폰을 생산하지만 가격의 2%만이 중국 노동자들에게 귀속되고, 30%는 영업이익으로 다시 애플의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디지털 전환의 시대에 경제와 생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볼 때다.

☞ 포인트

디지털로의 전환 시대에는
GDP가 생산을 과소측정
경제활동 측정할 보완책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