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41) 외환위기와 외환보유액
“정부는 최근 겪고 있는 금융 외환시장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유동성 조절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1997년 11월 21일 임창열 당시 경제부총리는 IMF에 긴급 외화자금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회견 당시 한국에 남아있던 외환은 39억4000만달러에 불과했다. 빚을 갚기는커녕 당장 쓸 석유를 사오기도 힘든 적은 금액이었다. 국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다. 개방경제인 한국은 국제금융·무역에서 거래하기 위해 ‘기축통화’인 달러와 같은 외환을 반드시 보유해야 했다. 외환위기 당시 외환 보유액이 바닥을 친 원인은 무엇일까?
외환위기의 과정
한국은 외환위기 전까지 표면적으로는 승승장구했다. 선진국만 가입한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였고, 국민소득 1만달러를 달성하면서 선진국 문턱에 진입하고 있다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하지만 내면을 보면 축제를 만끽할 처지가 아니었다. 무역에서 고평가된 원화로 인해 경상수지가 계속 적자를 기록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았다는 뜻이다. 즉, 기축통화인 달러가 국내로 유입되는 양보다 유출되는 양이 많았다. ‘세계화’라는 슬로건으로 기업, 금융사들의 해외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외화를 앞다퉈 조달했다. 기업과 금융사들의 단기성 외화부채가 급증했다. 시한폭탄을 지니고 있던 것이다. 이때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했고, 불똥이 한국으로 번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에서 자금을 빼내가기 시작했다. 외화 유출로 원화가치가 급락하자(환율이 급상승) 정부는 원화가치를 방어하기 위해 보유 외환을 풀었다. 단기성 부채를 조속히 상환하라는 외국의 압력도 세졌다. 달러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외환보유액의 중요성
외환위기 전인 11월 5일, 블룸버그통신은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150억달러 남았다는 오보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한국이 불안해지자 외환 유출 속도는 더 빨라졌다. 가지고 있던 외환으로 환율을 방어할 수 없게 됐다. 외환보유액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한 국가의 대외지급능력과 건전성을 나타낸다. 한국은 이 부분에서 적신호가 켜진 것이었다. 이 외환보유액은 한 나라가 비상사태에 대비해 비축하고 있는 외화 자금을 의미한다. 국가의 비상자금으로서 안전판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환율을 안정시키고 국가 신인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긴급사태 발생으로 금융사 등 경제 주체가 해외에서 외화를 빌리지 못해 대외결제가 어려워질 경우에 대비하는 최후의 보루(last resort) 기능을 한다. 외환보유액에 포함되는 자산으로는 △미 달러화, 유로화 및 일본 엔화와 같이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선진국 통화표시 자산 △국제금융시장에서 쉽게 현금으로 바꾸어 쓸 수 있는 주요 선진국 국채, 정부채 등 외화자산 △금, 은 등이 있다. 외환보유액은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화로 표기한다.
적정 외환보유액과 통화스와프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하며 외환보유액을 늘렸다. 현재 외환보유액은 2019년 4월 기준 4040억달러 수준이다. 세계에서는 9위 수준이다. 외환위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고 평가하더라도 위기는 찾아올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2008년 미국에서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를 꼽을 수 있다. 당시 한국은 환율이 불안정해지고 외국인 투자자의 외환 유출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하였다. 하지만 미국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며 위기를 진화하였다. 따라서 각국은 경제 사정에 맞게 적정 외환보유액을 보유하되, 주요 기축통화국(달러·엔·스위스 프랑 등)과 통화스와프를 맺는 등 외환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하여 위기에 대비해야 한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
● 기축통화
국제 무역거래나 금융거래에서 결제 수단으로 이용되는 기본통화로 통상 미국 달러, 유럽연합(EU) 유로, 일본 엔, 스위스 프랑 등을 가리킨다.
● 통화스와프
통화스와프는 말 그대로 통화를 교환(swap)한다는 뜻으로,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약정된 환율에 따라 일정한 시점에 상호 교환하는 외환거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