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샛 경제학
(39) 필립스 곡선
최근 정부가 빚을 내면서까지 돈을 마구 쓰겠다고 했다. 언론들은 이를 ‘정부가 국가채무 비율을 높이는 등 확장적 재정정책을 운용할 것’이라고 표현한다. 최근 청년실업률을 비롯한 고용지표가 나빠지자 정부는 돈을 더 많이 푸는 재정정책을 공격적으로 사용해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당장 동원하기 쉬운 정책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펼치는 모든 정책의 핵심은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이다. 돈을 마구 써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경제가 성장하면 실업률은 낮아진다. 그런데 늘어난 소득 탓에 물가가 오르는 경향이 나타난다. 즉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 사이에는 상충(trade-off)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39) 필립스 곡선
실업률·물가 상승률 상충관계, 필립스 곡선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의 관계를 규명한 학자는 뉴질랜드 출신의 영국 경제학자 필립스(A W Phillips)다. 그는 1958년 영국의 저명한 경제학술지인 ‘이코노미카’에 발표한 논문 ‘1861~1957년 영국의 실업률과 명목임금 변화율’에서 임금 변화율과 실업률 사이에 역(-)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혔다. 필립스의 논문에서는 실업률과 임금 변화율 간 관계를 논했지만, 명목임금의 상승은 기업의 비용 증가와 재화·서비스의 가격 상승을 이끌어 결국 물가를 끌어올리기 때문에 필립스의 논문 내용은 후대에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의 관계를 나타낸 ‘필립스 곡선’으로 탄생하게 된다. 이후 필립스 곡선은 정부 정책자들이 실업과 물가 문제에 대응할 때 이론적 바탕이 됐다.
총수요관리정책
특히 대공황 이후 케인스 이론의 등장으로 필립스 곡선의 유용성이 더욱 높아졌다. 대공황 시기 공급보단 수요 측면의 부족으로 경기가 장기간 침체에 빠졌다. 그래서 정부는 재정정책을 통해 ‘유효수요’를 늘려 경기 침체에 대응했다. 이런 케인스 이론의 밑바탕에는 국가 즉, 정부가 개입해 경제 성장, 물가, 고용 등을 조절할 수 있다는 ‘총수요관리정책’이라는 것이 있다. 국민경제 주체들이 경제 활동을 위해 쓰고자 하는 돈의 총액을 관리하는 것이 총수요 관리다. 총수요(Y)에는 가계 소비(C), 기업의 투자(I), 정부의 재정지출(G) 등이 모두 포함된다. 총수요 관리는 보통 경기를 조절하기 위해 사용된다. 경기가 지나치게 과열되면 수요를 줄이고 너무 위축되면 수요를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케인스 이론의 핵심은 총수요 관리정책이었고, 이를 뒷받침한 것이 필립스 곡선이었다. 정부가 불황이면 일정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감내하며 실업률을 낮추고, 호황이면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실업률을 일정 수준 희생하는 것이다. 정부 정책자들은 바로 필립스 곡선을 통해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 사이의 적정한 균형점을 찾는 것이 숙제였다.
필립스 곡선의 유용성 논란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으며 필립스 곡선의 유용성을 둘러싼 의문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최근 미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실업률이 최저를 기록하고 있지만, 물가 또한 안정적이기에 필립스 곡선이 현재 유효한 이론인지를 두고 학계에서 논쟁이 있다. 실업률이 낮아지지만 물가 또한 안정적이거나 떨어지는 요인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투자 위축 등으로 노동생산성 증가세가 둔화되고, 고령화로 더 일하고자 하는 고령층이 저임금 노동시장에 진입하면서 전체 임금 수준이 하락하는 등 여러 요인이 있다. 학계가 앞으로 연구해야겠지만, 필립스 곡선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경제 성장과 물가 안정을 위해 정책 당국자들이 경제정책을 시행할 때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영동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원 jyd54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