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5일부터 시작하는 이란 제재에 각국이 동참 의사를 밝히고 나선 것은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조항 때문이다. 보이콧은 사전적으로 ‘항의’를 뜻한다. 구매 거부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세컨더리 보이콧은 제재 당사국과 피당사국 사이의 1차 제재가 아니라 다른 국가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2차 제재를 의미한다. 이란과 거래하는 제3국의 정부·은행·기업 등도 이란과 마찬가지로 거래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가령 한국이 이를 무시하고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면 이란과 동급의 제재를 받게 돼 미국 정부나 기업과 거래가 전면 금지될 수 있다.
1973년 처음 적용된 세컨더리 보이콧
미국은 2010년에도 이란에 세컨더리 보이콧 규정을 적용했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를 포착한 결과다.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는 해외 금융회사들이 미국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이란 제재법을 발효했다.
세계 각국이 이런 세컨더리 보이콧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국제 거래의 대부분이 달러로 이뤄진다. 달러 수급이 제한되면 원유를 비롯해 철강, 구리 등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 등을 수입 또는 수출할 수 없다. 국가 산업이 흔들리고 경제가 휘청일 수밖에 없다. 경제 규모가 작고 무역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은 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 경제는 당시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인해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2년 동안 실업률이 20%, 인플레이션이 40%로 치솟았다. 2013년 경제성장률은 -6%까지 급락했다. 원유 수출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는데 이로 인한 손실만 1600억달러로 추산됐다. 해외에 동결된 이란 자산은 100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201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6개국과의 이란 핵협정으로 이어졌다. 이란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대신 이란에 적용됐던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내용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이 처음 나온 것은 1973년 2차 중동전쟁 직후다. 아랍 국가들은 ‘알제리 선언’을 통해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나라에 석유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중동으로부터 대다수 석유를 수입하는 한국도 제재에 동참했다. 1978년에는 아예 이스라엘과 국교를 단절했다. 당시 중동 건설 붐이 일면서 아랍 국가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평화 조약을 맺으면서 한·이스라엘 관계도 정상화됐다. 북한도 ‘미국 제재’ 단골 적용 대상
북한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적용되는 단골 국가다. 미국은 2005년 북한을 대상으로 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했다. 북한이 중국계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불법 자금세탁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각국 기업과 정부가 자금을 대량으로 인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BDA가 북한 자금 2500만달러를 동결하고 나서야 미국은 제재를 중단했다.
미국은 지난해 9월부터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시작하면서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다시 발동했다. 북한과 재화, 용역을 거래하는 기업과 개인의 자산을 미국 정부가 압류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원유 수출이 경제 버팀목인 이란과 달리 북한은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불과하다. 미국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주요 배경 중 하나다. 북한의 해외 거래 중 90%를 차지하는 중국이 적극 참여할지도 관건이다.
미국 재무부는 올 9월 한국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대북 제재 준수를 요청한 데 이어 지난달 초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466명(또는 기관)을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이 구체적인 대상을 직접 지목해 제재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북한이 핵폐기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경제협력 과속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5·24 조치’(천안함 폭침 후 북한에 가한 한국의 제재) 해제 검토 발언 등 북한 압박에 대한 수위가 낮아질 것을 우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는 내년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제시할 수 있는 협상용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미국이 대북 제재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NIE 포인트
미국이 제3국의 동의를 얻지 않고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제재 카드로 꺼낼 수 있는 이유는 무
엇인지 생각해보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제재 고삐를 죄고 있는 가운데 남북한 경제협력 등
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 게 바람직한지 토론해보자.
김형규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khk@hankyung.com
1973년 처음 적용된 세컨더리 보이콧
미국은 2010년에도 이란에 세컨더리 보이콧 규정을 적용했다.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정권이 핵을 개발하고 있다는 증거를 포착한 결과다. 미국은 이란과 거래하는 해외 금융회사들이 미국에서 활동하지 못하게 하는 이란 제재법을 발효했다.
세계 각국이 이런 세컨더리 보이콧에 따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국 달러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국제 거래의 대부분이 달러로 이뤄진다. 달러 수급이 제한되면 원유를 비롯해 철강, 구리 등 산업에 필요한 원자재 등을 수입 또는 수출할 수 없다. 국가 산업이 흔들리고 경제가 휘청일 수밖에 없다. 경제 규모가 작고 무역 의존도가 높은 신흥국은 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 경제는 당시 세컨더리 보이콧으로 인해 파탄 지경에 이르렀다. 2년 동안 실업률이 20%, 인플레이션이 40%로 치솟았다. 2013년 경제성장률은 -6%까지 급락했다. 원유 수출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는데 이로 인한 손실만 1600억달러로 추산됐다. 해외에 동결된 이란 자산은 1000억달러에 달했다. 이는 2015년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6개국과의 이란 핵협정으로 이어졌다. 이란이 핵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대신 이란에 적용됐던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내용이다.
세컨더리 보이콧이 처음 나온 것은 1973년 2차 중동전쟁 직후다. 아랍 국가들은 ‘알제리 선언’을 통해 이스라엘과 거래하는 나라에 석유 수출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중동으로부터 대다수 석유를 수입하는 한국도 제재에 동참했다. 1978년에는 아예 이스라엘과 국교를 단절했다. 당시 중동 건설 붐이 일면서 아랍 국가들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평화 조약을 맺으면서 한·이스라엘 관계도 정상화됐다. 북한도 ‘미국 제재’ 단골 적용 대상
북한도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적용되는 단골 국가다. 미국은 2005년 북한을 대상으로 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시행했다. 북한이 중국계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불법 자금세탁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는 정황이 포착되면서다. 각국 기업과 정부가 자금을 대량으로 인출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BDA가 북한 자금 2500만달러를 동결하고 나서야 미국은 제재를 중단했다.
미국은 지난해 9월부터 독자적인 대북 제재를 시작하면서 세컨더리 보이콧 조항을 다시 발동했다. 북한과 재화, 용역을 거래하는 기업과 개인의 자산을 미국 정부가 압류할 수 있도록 한 게 골자다. 경제 제재를 통해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전략이다. 원유 수출이 경제 버팀목인 이란과 달리 북한은 수출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불과하다. 미국 제재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주요 배경 중 하나다. 북한의 해외 거래 중 90%를 차지하는 중국이 적극 참여할지도 관건이다.
미국 재무부는 올 9월 한국 시중은행을 대상으로 대북 제재 준수를 요청한 데 이어 지난달 초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 466명(또는 기관)을 세컨더리 보이콧 대상으로 지정했다. 미국이 구체적인 대상을 직접 지목해 제재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북한이 핵폐기 로드맵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 경제협력 과속에 대한 우려가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5·24 조치’(천안함 폭침 후 북한에 가한 한국의 제재) 해제 검토 발언 등 북한 압박에 대한 수위가 낮아질 것을 우려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전문가는 내년 2차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제시할 수 있는 협상용 카드로 활용하기 위해 미국이 대북 제재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NIE 포인트
미국이 제3국의 동의를 얻지 않고도 세컨더리 보이콧을 제재 카드로 꺼낼 수 있는 이유는 무
엇인지 생각해보자. 미국이 북한에 대해 제재 고삐를 죄고 있는 가운데 남북한 경제협력 등
과 관련해 한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 게 바람직한지 토론해보자.
김형규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k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