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5)

고맙다고 했으면 '고맙다고 말했다' 또는 '고마워했다'고 쓰면 된다.
'사퇴하겠다고 했다'고 하면 될 것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치하하다'보다 '칭찬하다' '격려하다'가 옳죠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하사품’이란 게 있었다. 명절이나 특별히 기념할 일이 있을 때 관련 단체나 소속원들에게 하사품 또는 하사금이 지급됐다. ‘하사(下賜)’란 임금이 신하에게, 또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물건을 주는 것을 말한다. 조개 패(貝: 돈, 재물을 뜻한다)가 들어간 ‘사(賜)’가 주다, 베풀다란 뜻을 담고 있다. 왕조시대의 용어라 지금은 이런 말을 쓸 이유도 없고, 잘 쓰지도 않는다.

일상의 언어 사용해야 ‘좋은 글’

그 시절에는 ‘금일봉’(金一封: 금액을 밝히지 않고 종이에 싸서 봉해 주는 상금)이니, ‘(노고를) 치하’(致賀: 남이 한 일에 대해 고마워하고 칭찬함)한다느니, ‘시달’(示達: 상부에서 하부로 명령이나 통지 따위를 문서로 전달함)한다느니 하는 말도 많이 쓰였다. 요즘도 쓰이는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은 이런 말들의 공통점은 모두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권위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치하하다'보다 '칭찬하다' '격려하다'가 옳죠
지금은 이런 말을 쓴 글이 많이 사라졌다. 말글에 대한 언중(言衆)과 언론의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금일봉은 상황에 따라 축하금, 격려금, 성금, 기부금 등 구체적인 말로 쓰면 된다. ‘치하하다’도 격려하다, 칭찬하다, 고마워하다 식으로 얼마든지 바꿔 쓸 수 있다. ‘시달하다’는 전달하다, 권고하다 등 좀 더 쉽고 편한 말로 쓰는 추세다.

보도자료 등에서 이른바 ‘관급(官給) 용어’로 쓰이는 ‘실시하다’도 마찬가지다. ‘일제 조사(단속) 실시’ 같은 표현을 흔히 볼 수 있다. 조사, 단속 따위는 동작성 명사라 그 자체로 서술어 기능을 한다. ‘일제 조사(단속)’라고 하면 충분한 말이다. 이를 풀어 쓰면 ‘일제히 조사한다(단속한다)’이다. ‘실시’를 덧붙일 때보다 간결하고 명료해서 좋다. ‘감리를 실시할 예정’이라 하지 말고 ‘감리를 할 예정’ 또는 ‘감리를 벌일 예정’이라고 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무겁고 문어체적이며 권위적인 표현을 일상의 언어로 바꿔 쓰는 게 ‘좋은 글쓰기’의 지름길이다.

상투어 남발하면 ‘건강한 우리말’ 해쳐

어휘 차원의 이런 ‘권위적 말’들은 그나마 금세 눈에 띄기 때문에 글쓰기에서 조심할 수 있다. 이보다 어려운 것은 구(句) 차원에서 이뤄지는 표현이다. 이들은 잘 드러나지 않아 놓치기 십상이다.

‘일본 정계 내 대표적 지한파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3일 경남 합천을 찾아 원폭 피해자들을 만나 사죄의 뜻을 전했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죄의 뜻을 전했다’이다. 언중의 일상적 어법과는 사뭇 다르다. 사죄를 했으면 ‘사죄했다’고 하면 될 일이다. 이를 비틀어 써서 의미가 모호해졌다. 좋게 말하면 완곡어법에 해당한다.

고맙다고 했으면 ‘고맙다고 말했다’ 또는 ‘고마워했다’고 쓰면 된다. 언론에서는 이를 굳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식으로 쓴다. ‘사퇴하겠다고 했다’고 하면 될 것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유감스럽다고 말했다’는 ‘유감의 뜻을 표했다’로 둔갑한다.

‘사의를 표명했다/감사의 뜻을 전했다/사과의 뜻을 표했다/사퇴 의사를 밝혔다’ 식 표현은 우리말을 왜곡한다. 이런 말투는 주체가 민간이든 관료든 상관없이 나타나지만 특히 정치 지도자급이나 고위층의 말을 인용할 때 더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그가 ~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게 자연스러운 어법이다. 틀에 박힌 문구를 상투어라고 한다. 표현도 진부해지고 무엇보다 ‘건강한 우리말 체계’를 해친다. 비틀어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드러낼 때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