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을 해치는 표현들 (5)
고맙다고 했으면 '고맙다고 말했다' 또는 '고마워했다'고 쓰면 된다.
'사퇴하겠다고 했다'고 하면 될 것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고맙다고 했으면 '고맙다고 말했다' 또는 '고마워했다'고 쓰면 된다.
'사퇴하겠다고 했다'고 하면 될 것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일상의 언어 사용해야 ‘좋은 글’
그 시절에는 ‘금일봉’(金一封: 금액을 밝히지 않고 종이에 싸서 봉해 주는 상금)이니, ‘(노고를) 치하’(致賀: 남이 한 일에 대해 고마워하고 칭찬함)한다느니, ‘시달’(示達: 상부에서 하부로 명령이나 통지 따위를 문서로 전달함)한다느니 하는 말도 많이 쓰였다. 요즘도 쓰이는 사례가 아주 없지는 않은 이런 말들의 공통점은 모두 위에서 아래로 내려지는, 권위적 표현이라는 것이다.
보도자료 등에서 이른바 ‘관급(官給) 용어’로 쓰이는 ‘실시하다’도 마찬가지다. ‘일제 조사(단속) 실시’ 같은 표현을 흔히 볼 수 있다. 조사, 단속 따위는 동작성 명사라 그 자체로 서술어 기능을 한다. ‘일제 조사(단속)’라고 하면 충분한 말이다. 이를 풀어 쓰면 ‘일제히 조사한다(단속한다)’이다. ‘실시’를 덧붙일 때보다 간결하고 명료해서 좋다. ‘감리를 실시할 예정’이라 하지 말고 ‘감리를 할 예정’ 또는 ‘감리를 벌일 예정’이라고 하는 게 훨씬 자연스럽다. 무겁고 문어체적이며 권위적인 표현을 일상의 언어로 바꿔 쓰는 게 ‘좋은 글쓰기’의 지름길이다.
상투어 남발하면 ‘건강한 우리말’ 해쳐
어휘 차원의 이런 ‘권위적 말’들은 그나마 금세 눈에 띄기 때문에 글쓰기에서 조심할 수 있다. 이보다 어려운 것은 구(句) 차원에서 이뤄지는 표현이다. 이들은 잘 드러나지 않아 놓치기 십상이다.
‘일본 정계 내 대표적 지한파인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3일 경남 합천을 찾아 원폭 피해자들을 만나 사죄의 뜻을 전했다.’ 이 문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죄의 뜻을 전했다’이다. 언중의 일상적 어법과는 사뭇 다르다. 사죄를 했으면 ‘사죄했다’고 하면 될 일이다. 이를 비틀어 써서 의미가 모호해졌다. 좋게 말하면 완곡어법에 해당한다.
고맙다고 했으면 ‘고맙다고 말했다’ 또는 ‘고마워했다’고 쓰면 된다. 언론에서는 이를 굳이 ‘감사의 뜻을 전했다’ 식으로 쓴다. ‘사퇴하겠다고 했다’고 하면 될 것을 ‘사퇴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 ‘유감스럽다고 말했다’는 ‘유감의 뜻을 표했다’로 둔갑한다.
‘사의를 표명했다/감사의 뜻을 전했다/사과의 뜻을 표했다/사퇴 의사를 밝혔다’ 식 표현은 우리말을 왜곡한다. 이런 말투는 주체가 민간이든 관료든 상관없이 나타나지만 특히 정치 지도자급이나 고위층의 말을 인용할 때 더한다.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그가 ~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게 자연스러운 어법이다. 틀에 박힌 문구를 상투어라고 한다. 표현도 진부해지고 무엇보다 ‘건강한 우리말 체계’를 해친다. 비틀어 말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드러낼 때 간결하고 힘 있는 문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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