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번번이 빗나가는 전력예측
과소비 막는다지만 최저-최고구간 요금 격차 커 불만
전기요금 누진제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요금폭탄’ 우려가 높아져서다. 정부가 7~8월 요금을 한시적으로 낮추기로 했지만 역부족이란 게 국민들의 일반 정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주택에 대한 징벌적 누진제를 다른 나라처럼 완화하거나 폐지하라”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과소비 막는다지만 최저-최고구간 요금 격차 커 불만
최고 7.6배 차이는 ‘징벌적’
한국은 주택용에만 전기요금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전기를 많이 쓸수록 단위당 요금이 기하급수적으로 뛰는 구조다. 기업들이 쓰는 산업용과 상가 오피스 등에서 사용하는 상업용엔 단일 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누진제의 역사는 길다. 1974년 최초로 도입해 올해 45년째다. 당시 누진제를 도입한 건 에너지 절약 차원이었다. 발전설비가 부족해 전력생산이 저조했고 국제 유가까지 뛰었다. 전력 과소비를 막기 위해 누진제 도입이 불가피했다. 처음 누진율은 3단계였다. 최고와 최저구간 배수는 1.6배였다. 2차 석유파동을 겪은 1979년 12단계 19.7배로 누진배수 차이가 확 벌어졌다.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가정의 전력 소비를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전기를 많이 쓰는 집은 텔레비전 등 가전제품을 보유한 부유층이란 점도 국민 정서에 들어맞았다. 누진율이 처음 완화된 건 1989년이었다. 4단계 4.2배로 배수 차이가 좁혀졌다. 원자력발전소를 집중적으로 건설한 덕분이었다. 원전은 세계적으로 발전단가가 가장 싼 전력 생산시설이다. 그 이후 누진율은 몇 차례 등락을 거듭하다 2016년 말 지금과 같은 3단계 3배수가 됐다. 예컨대 한 가정이 한 달간 200㎾h 이하(1단계)의 전기를 쓴다면 ㎾h당 93.3원만 내면 되지만 201~400㎾h를 쓰면 2단계 요율인 187.9원, 401㎾h 이상 쓰면 3단계인 280.6원씩 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도 ‘예외’ 구간이 있다. 바로 슈퍼요금제다. 매년 7~8월과 겨울철인 12~2월엔 전기요금 누진제가 4단계로 확대된다. 이 기간 1000㎾h 이상 쓰는 주택에는 단위당 709.5원의 요율을 적용한다. 누진배수가 최고 7.6배로 치솟는 것이다.
영국·프랑스 등은 누진제 없어
다른 나라에선 주택용 전기요금에 한국만큼 높은 누진배수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전력 공급을 독점하는 우리와 달리 민간 전력회사들이 경쟁하는 구조인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일본 최대 전력 사업자인 도쿄전력은 총 5개의 가정용 요금제를 도입했다. 누진요금제가 있지만 단일요금이나 시간별 차등요금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누진제가 적용돼도 최대 1.5배 정도다. 대만 역시 전력회사 간 경쟁 구도다. 누진제와 시간별 차등요금제 중 소비자가 고를 수 있다. 미국은 주별로 다양한 요금제가 존재하지만 누진배수 차이는 1.1배 정도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주택용 전기요금에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다른 나라와 같이 최대 1.5~2.0배 이하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환경단체에서 누진제를 없애면 전력 과소비를 촉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가 미약하다는 견해도 많다. 한전에 따르면 누진제 완화 직후였던 작년 전력 판매량은 전년 대비 0.7% 증가에 그쳤다. 2016년의 증가율(3.7%)보다 오히려 낮아진 수치다. 전체 전력판매량 중 주택용 비중 역시 14%에 불과했다. 전력 수요가 날씨(기온)의 영향을 훨씬 크게 받는다는 분석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 관련학과 교수는 “당장 누진제를 없애기 어렵다면 주요국 중 최대인 누진배수 차이를 대폭 좁힐 필요가 있다”며 “이를 위해선 값싼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원전을 오히려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도 여론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2020년까지 계절을 봄·가을, 여름, 겨울 3개로 정하고 시간대를 최대부하·중간부하·경부하 등 3개 구간으로 나눠 전기료를 차등 적용하는 ‘계시별 요금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 NIE 포인트
우리나라 전기요금 누진제가 도입된 배경과 누진제의 긍정적 측면, 부정적 측면을 함께 정리해보자. 세계 주요국의 전기 요금 체계는 어떤지도 자세히 알아보자. 현재 우리나라 상황에서 전기요금 누진제가 꼭 필요한 것인지도 토론해보자.
조재길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