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선거와 경제민주화…불안한 짝궁
선거철만 되면 경제민주화 공약이 많이 나온다. 경제민주화 공약을 내걸지 않으면 선거를 치르기 어렵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에서도 경제민주화 공약은 빠지지 않는다. 다가오는 ‘4·13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경제민주화가 공약을 주도할 것으로 예측된다.

경제민주화 공약은 효과를 냈나?

[Cover Story] 경제+민주화는 잘못된 조합…경제 자유일 때 저성장 탈피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이미 시행된 사례의 성과를 평가해보는 것이 좋다. 경제민주화 공약 중 대표적인 것이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이다. 이것은 동네상권과 재래시장을 보호한다는 명분에서 나왔다. 결과는 실패다. 대형마트 영업제한으로 동네상권과 재래시장이 보호됐다는 유의미한 통계분석은 없다. 영업제한에 힘입어 재래시장 매출이 늘었다는 수치도 없다. 오히려 대형마트 납품업체들만 납품감소 피해를 입었다. 마트에서 일하며 생활비와 아르바이트비를 벌던 가정주부와 학생들의 일자리 역시 줄였다. 재래시장과 대형마트는 소비자의 선택이 완전히 다른 별개의 시장이다. 재래시장은 과거, 마트는 오늘날의 서비스다. 소비자들은 마트를 닫아도 재래시장에 안 간다.

반값 등록금과 온갖 무상 복지도 재원대책 없이 추진돼 혼란을 만들었다. 특정 대학에 주는 반값 등록금은 매년 거둬들인 세금으로 유지될 수 밖에 없는 경제민주화 공약이다. 반값 등록금이 적용된 서울시립대는 예산지원 논란에 휩싸여 시설투자와 교육투자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방송보도도 있었다. 지속되기 힘든 약속이다. 3~5세 무상교육을 약속한 ‘누리과정’도 예산 확보 문제로 혼란에 빠져있다. 프랜차이즈 빵집을 규제하면 동네빵집이 보호된다는 공약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1인1표…경제에선 1원1표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조합 자체가 잘못돼 있다. 경제는 자유화·반자유화라는 단어와 어울리고, 정치는 민주화·반민주화가 제격이다. 민주주의라는 정치제도에선 모든 유권자가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 바로 1인1표다. 소득 수준 등과 관계없이 동일한 1표의 권리를 갖는다.

시장경제에선 다르다. 1원1표다. 100억원을 투자한 사람과 100만원을 투자한 사람의 권리는 명백히 다르다. 이것은 차별이 아니라 차이다. 많이 투자한 사람이 잘 살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위험도 그 만큼 크다. 잘못 투자하면 100억원은 날아간다. 경제민주화는 두 투자자의 권리를 민주주의 주권처럼 동일하게 만들겠다는 시도다.

서로 다른 권리를 동일하게 만들려면 무리가 따라야 한다. 바로 정부와 정치권의 강제와 규제, 이익단체들의 압력이 등장한다.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재래시장과 같게 하려는 무리수다. 재래시장이 사는 길은 자체 혁신 뿐이다. 혁신적인 재래시장이 최근 나오기도 했다. 영업시간은 사적 자유에 속한다. 특정 주말에 문을 열지 말라는 것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마치 신(神)이 되겠다고 하는 것과 같다.

시장경제와 정부 역할 오해

경제민주화는 시장경제와 정부의 역할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 시장은 우리의 무지를 해결해주는 곳이다. 우리는 어떤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누가 어떤 기술을 가지고 있고, 어디에 어떤 원자재가 있는지, 얼마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하이에크가 말한 ‘구조적 무지’라는 것이다. 시장은 우리의 이런 무지를 일깨워주고 돕는다. 가격과 행동규칙을 통해서다. 가격은 물질만능주의의 기수 같지만 사실 정보를 수치로 표현해낸다. 시장이 자유경쟁 속에 있다면 가격은 제품과 서비스가 아무리 멀리 있어도 정보를 반영한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정보를 해석한다. 비싸다, 싸다, 투자한다, 안한다는 가격이 제공하는 지식이다.

시장경제에선 각자가 원하는 물건을 교환하는 인간관계를 전제한다. 세계를 서로 다른 관점에서 보는 관용도 시장경제 하에서만 가능하다. 분업과 교환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에서 원자적 인간은 살아가기 힘들다. 시장경제는 행동규칙을 준수할 것을 요구한다. 계약을 어기면 사회적 비난과 처벌을 받기 때문에 행동을 신중하게 된다. 관습과 법을 지키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는 것도 행동규칙이다.

시장경제가 사회주의 경제보다 도덕적이라는 임마누엘 칸트, 애덤 스미스, 하이에크의 비유와 지적은 그래서 옳다. “돈의 힘은 국가 권력 아래에 있는 모든 것들 중에 가장 신뢰할만한 것이다”는 칸트의 한마디는 이것을 대변한다.

경제민주화는 시장의 이런 지혜를 자의적으로 바꾸거나 간섭해 왜곡하는 통제경제 중 하나다. 정부가 나서면 어떤 문제든 해결할 수 있다는 ‘치명적 자만’이 경제민주화에 들어있다. 정부가 시행한 경제민주화 정책이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이유다. 경제에 민주화라는 단어를 붙이는 나라일수록 못 산다. 역사가 증명하는 바다. 베네수엘라, 그리스, 아르헨티나, 북한 등 저성장과 빈곤에 허덕이는 나라를 보라.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