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이야기다. 투표일인 4월13일까지 시간은 좀 남았다. 하지만 걱정은 벌써부터 쏟아진다. 각 정당과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내놓을 공약 때문이다. 잘 계산된, 잘 조절된, 잘 지켜질 만한 공약이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경험은 이런 낙관을 불허한다. 공약(公約) 아닌 공약(空約)이 얼마나 난무할지!

선거는 이기는 것이 지상 목표다. 다수와 과반(過半) 점령을 향한 경쟁이 극심한 이유다. 선거는 몇 가지 기본 전술에 의존한다. 정당들은 표가 많이 몰려 있는 여론의 중간지대를 공략한다. 덩컨 블랙은 이런 현상을 ‘중위 투표자 정리’라는 말로 정리해줬다. 정당들은 선거 때만 되면 다수의 유권자가 몰려 있는 중도를 향해 정책과 공약을 집중 투하한다. 정당들의 공약이 비슷비슷한 이유다.

앤서니 다운스라는 사람이 제시한 ‘합리적 무지’라는 관점도 작용한다. 투표자 개개인은 정당만 보고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내 표 하나가 선거 결과를 바꿀 것 같지 않고 설사 바꾸는 경우에도 공약이나 정책의 덕을 못 볼 게 뻔하다’는 심리가 작동한다. 정당과 후보자가 내건 정책과 됨됨이를 알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일 가치가 없다며 냉소적이다. 정당들도 은근히 “이왕 모르는 거 정당 보고 찍으라’고 주문한다.

이번 총선에서는 3개의 주요 정당이 유권자들의 선택을 기다릴 가능성이 높다. 여론조사를 해보면 A는 B를 이기고, B는 C를 이기는데 정작 투표에선 C가 A를 이기는 기현상이 나타날지 모른다. 만일 이런 결과가 나온다면 선거는 유권자의 뜻을 제대로 반영한 것일까. 1785년 프랑스 수학자 콩도르세 후작(侯爵)은 ‘투표의 순환역설’을 지적했다.

다가올 총선에서 정작 우려되는 대목은 우후죽순처럼 나올 경제민주화 공약이다. 선거 때만 되면 경제민주화는 남발된다. 경제민주화만큼 중위 투표자들에게 솔깃한 것도 없다. 공짜 공약과 장밋빛 개발계획이 쏟아진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실현될 수 없는 허구다. 정부의 간섭과 규제, 성과의 강제적 분배는 필연적으로 실패를 잉태하고 있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도입된 대형마트 영업시간 제한은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 났다. 서민을 위한다는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는 거꾸로 서민의 전세가격만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말았다. 사례는 많다.

베네수엘라, 그리스,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는 경제민주화 천국(?)이었다. 모두 망했다. 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모든 것을 설계하고 계획하는 경제는 필패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이들 나라의 경제는 경쟁력 저하로 사망 일보 직전이다. 다가올 선거와 쏟아질 공약이 우려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경제민주화가 왜 망국의 길인지와 선거의 딜레마에 대해 4~5면에서 연구해보자.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