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중국엔 기술, 일본엔 가격…뒤처지는 한국
“한국의 경쟁력 우위가 점차 약화되고 있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김창배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서강대 경제학 박사)은 최근 ‘또다시 넛크래커 상황에 빠졌다’라는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의 기술경쟁력이 급상승하고, 엔저(低) 영향으로 일본 기업들이 부활해 한국 기업이 두 나라 사이에 낀 ‘샌드위치’를 넘어 두들겨 맞는 ‘샌드백’ 신세가 됐다는 우려다.2년 내 다 따라잡힌다
UN 국제제조업 경쟁력지수를 보면 김 연구위원의 우려를 확인할 수 있다. 2000년 한국과 중국의 경쟁력 순위는 12위와 23위였다. 11단계의 차이가 있었다. 이것이 2010년에는 각각 4위와 7위로 좁혀졌다. 우리의 경쟁력이 급상승했지만 중국도 바짝 쫓아와 차이를 거의 없애버렸다. 세계 수출시장 점유율 1위 품목 수에서는 중국이 압도적으로 앞선다. 중국은 2007년 1210개에서 2013년 1538개로 늘렸다. 같은 기간 73개에서 65개로 급감한 한국과 비교된다.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최근 낸 보고서에도 경고가 담겨 있다. “한국과 중국의 기술격차는 1년4개월.” “2년 전과 비교해 격차가 6개월가량 더 줄어들었다.”
휴대폰·전기전자 위기
중국이 정부 주도로 강력하게 지원하고 있는 분야다. ‘타도 삼성’이 정책 목표다. 화웨이, 레노버, 샤오미 등 중국 휴대폰 업체들이 삼성 턱밑까지 추격해 있다.
제품의 성능면에서 아직 ‘톱 클래스’는 아니지만 쓸 만하다는 반응이 주류다. 2016년이 되면 중국이 스마트폰 1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중국 제품의 가격이 삼성의 반값인 데다 디자인과 성능이 나날이 좋아져 삼성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단계다. 삼성은 휘는 디스플레이 개발, 고집적 칩 개발로 바짓가랑이를 잡으려는 중국을 따돌리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삼성은 칩 개발에서부터 디자인, 판매까지 갖춘 일관체제로 경쟁력 우위를 유지하려 애쓴다. 이런 때에 중국 기업들이 삼성 출신 반도체 전문가를 고액의 연봉으로 영입하려고 한다. 한국에서 받던 연봉의 9배까지 제시한 상태다. 두뇌를 빼앗아 와서라도 삼성을 꺾겠다는 야욕을 중국이 숨기지 않고 있다. 휴대폰은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이다. 내년 휴대폰 시장 성장률이 2.1%에 그칠 것이란 전망도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가전시장도 비슷한 양상이다. 창훙, 스카이워스, 하이센스, TCL 등 중국 업체는 중국 내수시장에서 급성장 중이다. 스마트TV 시장에서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세계 시장 1위인 삼성은 중국에서 겨우 4~5위다. 내수시장에서 기술경쟁력을 키운 뒤 세계시장에서 삼성을 잡는다는 전략이다. 하이센스와 TCL이 생산한 OLED TV와 울트라 HD(UHD)TV는 삼성, LG 제품과 차이가 없다.
조선·철강 암울…3위에서 6위로
선박을 만드는 조선(造船)은 한국의 텃밭처럼 여겨졌다. 중국의 선박 건조능력은 2013년 이미 뒤집혔다. 중국은 약 2140만CGT(표준 화물선 환산 톤수)로 전 세계의 40%를 차지했다. 29%인 한국에 비해 훨씬 높다. 중국에 치여 올해 수출액은 380억달러 정도에 그칠 전망이다. 지난해보다 5%가량 떨어진다는 분석이 있다. 내년은 더 심각하다. 수출예상액이 370억달러다. 기술력 면에서 차이가 없는 중국이 가격경쟁력마저 앞세우고 있어 한국은 진퇴양난이다. 최근 국제 기름값이 폭락하면서 중동 등 선박 수요자들의 물량 발주가 급감할 전망이어서 ‘한국 조선’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세계 수출 1위 국가인 중국은 이제 자국의 선박 건조 물량을 자국 기업에만 주고 있다. ‘중국의 수출입 물량을 나르는 선박은 중국 조선소에서 지어야 마땅하다’는 국수국조(國輸國造)라는 슬로건까지 내세우며 ‘타도 한국’을 외치고 있다.
2014년 355억달러어치를 수출했던 철강업계도 299억달러 수출을 기록했을 뿐이다. 우리 앞에 허베이, 바오산, 우한 등 중국 업체가 서서 물량을 가져가는 중이다. 글로벌 3위였던 한국의 포스코는 이제 6위로 밀려 있다. 내년에는 295억달러 수출로 다시 떨어질 전망이다.
작년 기준으로 한국과 중국의 50개 수출품목 중 중복되는 부문은 20개에 달한다. 한국 수출과 44.8% 겹친다. 여기에다 많은 부문에서 겹치는 일본이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한국을 벼랑으로 몬다. 일본 산업과 수출도 비슷한 양상이다. 엔저로 가격경쟁력이 생긴 일본 자동차 등은 여러 경쟁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한국에선 반기업정서, 대기업 악마화, 경제민주화, 법인세 인상 주장 등이 난무한다. 중국이 환영할 풍조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