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경제

베블런 효과

가격 올라도 수요 줄지 않는 현상
과시목적 구매 많은 사치품에 적합
19세기 美사회학자 이름 딴 이론

한국 명품시장 규모 年15조원
루이비통·샤넬 등 계속 값 올려도
줄서서 사는 '오픈 런' 현상은 여전
서울 한 백화점의 명품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경DB
서울 한 백화점의 명품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소비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경DB
루이비통이 이달 1일 주요 제품 가격을 평균 10% 올렸다. 올해 들어서만 다섯 번째 ‘기습 인상’이었다. 루이비통을 상징하는 무늬가 찍힌 한 핸드백은 1년 전 145만원이던 것이 201만원으로 값이 뛰었다. 자그마한 크기의 미니백은 같은 기간 78만원에서 131만원으로 올랐다. 샤넬도 11월 또 한 차례 가격 인상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가방값을 6~36% 올린 지 두 달 만이다. 올 들어 에르메스, 프라다, 디올, 버버리, 까르띠에, 셀린느 등 거의 모든 명품 브랜드가 가격을 인상했다.

그런데도 명품을 사려고 백화점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오픈 런’의 열기는 여전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해외 여행과 면세점 쇼핑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명품업체들의 콧대가 더 높아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비싸니까 더 갖고 싶어”고가 명품 브랜드와 같은 사치품 시장은 경제학의 기본 원리인 ‘수요공급의 법칙’이 잘 들어맞지 않는 영역이다. 대신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뜻의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가 이 시장을 잘 설명하는 이론이다.

베블런 효과는 가격이 오르는데도 과시욕과 허영심 때문에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의 사회학자이자 사회평론가인 소스타인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에서 창안한 이론이다. 1899년 펴낸 이 책에서 베블런은 “상층 계급의 두드러진 소비는 사회적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자각 없이 행해진다”고 했다. 베블런은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면서 상류층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사치를 일삼는다고 꼬집었다. 이 같은 분석은 과시 목적의 수요가 많은 명품시장에 잘 맞아떨어진다.

명품업체들은 소비자의 이런 성향을 활용해 일부러 높은 가격을 매기는 고가전략을 고수해 왔다. 이들 업체는 가격을 올릴 때마다 본사의 글로벌 가격 정책, 환율 변동분 반영, 제조원가·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들지만 이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경기가 꺾이거나 원재료값이 떨어져도 판매가를 내린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코로나 시국의 특수성’도 최근 명품 특수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억눌렸던 소비 욕구가 갑자기 폭발하며 나타난 ‘보복 소비(revenge spending)’ 심리가 작용했고, 증시 호황으로 자산이 두둑해진 개미들의 ‘부의 효과(wealth effect)’도 한몫했다. 여기에 더해 명품업체가 해마다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재테크 수단으로 활용하는 소비자가 급증하고 있다. 이른바 ‘샤테크(샤넬+재테크)’나 ‘롤테크(롤렉스+재테크)’처럼 명품을 중고시장에 팔면 쉽게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세계 7위 명품시장이런 호황에 힘입어 명품시장은 쑥쑥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명품시장 규모는 125억420만달러(약 14조9000억원)로 추산된다. 미국, 중국,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 7위다. 리셀(중고 재판매) 문화에 익숙한 20~30대가 이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오르고 있는 점은 미래 전망을 더 밝게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젊은 층은 명품 소비를 사치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로 보고 있고, 리셀 가능성까지 고려해 구매 여부를 결정한다”고 전했다.

[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1년에 다섯번 가격 올려도 잘팔린다…이상한 名品시장
백화점들은 온라인으로 이탈하는 소비자를 오프라인 매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명품 매장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가방과 의류를 넘어 향수, 보석, 남성용 제품 등으로 구색도 다양해지는 추세다. 유통업계는 1~2년 안에 백화점 주요 명품 매장의 면적이 지금보다 2~3배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백화점 관계자는 “명품은 백화점이 얻는 판매 수수료가 상대적으로 적지만 집객 효과가 크기 때문에 매장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고 했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