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혁신과 기본원리
테슬라는 유일한 전기자동차 회사는 아니지만 인지도가 가장 높다. 기존의 많은 완성차 제조기업이 테슬라의 성공으로 전기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아이폰은 세계에서 유일한 스마트폰은 아니지만 단순한 전화기를 넘어 PC의 역할이 가능함을 깨닫게 해준 제품이다. 스페이스X 역시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로켓 제조회사는 아니지만 화물을 가장 저렴하게 우주로 보낼 수 있는 기업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기본원리로 돌아가 본질의 구현을 재설계했다는 점에 있다. 기본원리의 중요성폰 브라운은 독일의 로켓 공학자다. 3단으로 이뤄진 디자인, 추진체와 연료, 귀환캡슐과 선박을 이용한 회수 시스템 등 오늘날 로켓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모두 그에 의해 만들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에서 2754명을 죽인 V-2 로켓도 그의 작품이다. 전쟁 막바지에 그는 연합군에 투항했다. 투항 후 16년이 지난 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10년 안에 달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브라운이 구상한 ‘새턴 5호’는 닐 암스트롱을 무사히 달에 착륙시켰고, 1950년대와 60년대 미국의 우주산업은 그 어떤 국가도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앞서 있었다. 문제는 오늘날이다. 미국의 역량은 당시와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화물을 우주로 올려보내는 비용이 절반가량 감소했지만, 여전히 V-2 로켓 기술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기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류가 최소 다섯 번의 멸종 사건을 겪었으며, 최근에도 공룡 대멸종이 재현될 만한 크기의 소행성이 지구를 가까운 거리에서 비껴간 사례를 언급하며 인류를 화성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인류가 화성에 가려면 지구 궤도를 벗어나는 비용이 10분의 1로 줄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그는 지난 50년간 반복된 방식에서 벗어났다. ‘재활용 로켓’을 고안해낸 것이다. 1단 발사체를 지상 및 무인 바지선에 착륙시키는 방법으로 로켓을 재활용할 수 있게 됐다. 이를 통해 회당 10억달러가 발생하는 NASA의 우주발사 시스템 대비 90% 이상 저렴한 9000만달러로 우주에 보낼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이는 재사용 전의 비용이다. 금융 서비스의 변화기본원리로 돌아가 다시 설계해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례는 제품뿐만이 아니다. 서비스에서도 구현되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는 금융이다. 사람들이 은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만족을 문제의 본질로 돌아가 새로운 방식으로 충족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은행이 전통적으로 제공하는 만족은 돈을 안전하게 보관하고, 안전하게 옮기며,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주는 능력에서 나온다.

14세기에 뱅킹 서비스가 등장한 이후 오프라인 은행이 이 역할을 담당했지만, 오늘날 이는 모바일 기기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스마트폰으로 은행계좌를 몇 분 만에 개설할 수 있고, 스마트폰을 탭하거나 바코드를 읽어 결제할 수 있다. 인터넷 송금이 가능한 국가는 현재 190개국이 넘는다. 2005년 케냐에 살았다면 메트리스 밑에 돈을 넣어두는 것보다 안전한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 케냐 사람들은 모바일머니 계좌를 통해 안전하게 돈을 보관하고 송금한다. 케냐 GDP의 40%가 엠페사로 불리는 모바일머니 서비스를 통해 거래된다. 이러한 변화는 사하라 사막 이남에서도 나타난다. 은행까지 가는 교통비가 한 달 수입과 맞먹는 탓에 10억 명이 넘는 사람이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했다. 모바일머니 계좌가 도입된 이후 30% 넘는 사람들이 은행 서비스를 이용하며 해마다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기본원리로 돌아가 군더더기를 제거하자 은행 서비스가 주는 본질이 파악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 덕분이다. 기본원리 사고의 중요성모방은 삶을 영위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작고, 다른 사람 역시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일론 머스크는 기본원리에 따라 생각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가장 근본적인 진리까지 파고든 뒤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을 키우는 과정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혁신이라는 것은 새로움이 아니라 기본원리와 본질에서 나온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다. 기존의 규제와 제도가 달라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의 기준으로 많은 것이 단단하게 확립된 사회에서 기본원리와 본질에 집중한 새로움은 등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본질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뱅킹 서비스가 선진국이 아닌 선대로부터 물려받을 것이 별로 없는 개발도상국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언제나 세상은 돌고 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의미는 혁신의 무용함이 아니라 본질의 중요함을 강조한 표현일 것이다.새로움과 혁신이란 과거의 변형이 아닌 본질의 재창조임을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 포인트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김동영 KDI 전문연구원
테슬라·아이폰·모바일머니
기본원리로 돌아가
생각 재설계한 공통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