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현우 기자의 키워드 시사경제 - 재정자립도

지자체 수입 중 자체조달 비중을 의미
중앙정부 지원 의존할수록 수치 낮아져
지난해 국내 지자체 평균은 50.4%

美디트로이트·日유바리의 교훈
"도시도 방만경영하면 파산할 수 있다
재정자립도 낮으면 주민 삶의 질 하락"
경기도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모든 도민에게 1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준다. 설 연휴가 시작되는 11일 이전에 1300만여 명의 도민에게 2차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한다. 경남 산청군, 강원 강릉시, 전남 영암군 등 10여 개 기초 지방자치단체도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결정했다. 지역에 따라 현금으로 주기도 하고, 지역화폐로 주기도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서민들의 살림살이부터 팍팍해지는 현실에서 이런 ‘코로나 지원금’은 골목상권에 단비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중앙정부와 별도로 지자체 차원에서 재난지원금을 뿌리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논란도 적지 않다. 핵심 쟁점은 ‘그 돈, 어디서 마련했느냐’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지자체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0.4%에 불과하다. 국내에서 지방자치제가 본격 시행된 1995년 7월 이후 사상 최저치이기도 하다. 재정자립도 7% 지자체도 뛰어든 기본소득재정자립도란 지자체 총수입에서 자체적으로 조달한 수입(지방세+세외수입)의 비중을 가리킨다. 쉽게 말해 지자체가 스스로 살림을 꾸릴 수 있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예를 들어 재정자립도가 30%라면 필요한 돈의 70%는 중앙정부에서 보조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 수치가 높을수록 중앙정부 의존도가 작고, 자립 기반이 탄탄하다는 뜻이다.

시·군·구 등의 지자체는 중앙정부가 지원하는 돈과 지역 내에서 스스로 벌어들인 돈을 합쳐 살림을 꾸려간다. 도시마다 경제여건이 다르다 보니 곳간 사정은 제각각이다. 인구와 기업이 많은 대도시일수록 세금이 잘 걷히기 때문에 재정자립도는 높은 경향을 보인다. 반면 지방의 작은 곳일수록 재정자립도는 떨어진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도시에도 ‘빈부격차’가 생기는 것이다.

경기도의 지난해 재정자립도는 58.62%로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재난기본소득 지급을 결정한 기초 지자체 중 상당수는 재정자립도가 20%도 안 된다. 전북 정읍시(9.49%), 강원 인제군(8.99%), 경남 산청군(8.94%), 전남 해남군(7.41%) 등은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 국민이 낸 세금으로 지자체장이 생색을 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 소도시의 재정자립도가 하락하는 데는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 기본적으로 인구 감소와 지역경기 부진이 첫손에 꼽힌다. 저출산이 심화하면서 서울 인구조차 해마다 줄어드는 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정자립도가 악화되는 가운데에도 지자체 지출이 방만해지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선거로 뽑히는 단체장들이 선심성 공약과 치적 사업에 돈을 펑펑 쓰는 행태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자체마다 재정자립도를 스스로 끌어올리려고 노력하기보다 중앙정부에 보조금이나 교부세를 요구해 재원을 손쉽게 충당하려 한다는 비판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미국·일본에서는 지자체가 파산하기도지방자치제가 원활히 운영되려면 지자체들의 재정자립도가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 곳간이 부실하면 주민들 삶의 질을 유지하는 복지 제도나 기본적인 공공시설의 유지·보수조차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에는 아직 사례가 없지만, 미국 디트로이트시나 일본 유바리시는 재정 악화로 파산 선고를 받은 적이 있다. 유바리시는 관광산업 육성을 명분으로 무리한 투자를 이어가다가 2006년 파산했다. 한때 미국 자동차산업의 심장으로 불렸던 디트로이트시도 지역경기 침체에 따른 세수 감소를 견디지 못하고 2013년 파산 신청을 했다. 이후 실업률과 범죄율이 동시에 치솟고, 고장난 가로등조차 고치지 못할 정도로 공공서비스의 질이 추락했다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지자체의 모든 정책을 ‘방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다만 사람도, 기업도, 지자체도 돈 씀씀이는 ‘책임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한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