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생글생글 664호 2020년 5월 18일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퇴고(推敲)


▶ 한자풀이
推:밀 퇴
敲:두드릴 고


원래는 미는 것과 두드리는 것이란 뜻으로
글을 지을 때 문장을 가다듬는 것을 이름-당나라 가도의 시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인 한유(768~824)가 경조윤이란 벼슬을 지낼 때의 일이다. 가도(779~843)라는 시인이 장안 거리를 거닐면서 한참 시 짓기에 골몰하고 있었다. 초안의 내용은 이랬다.

이웃이 드물어 한적한 집(閑居隣竝少)
풀이 자란 좁은 길은 거친 뜰로 이어져 있다(草徑入荒園)
새는 연못가 나무 위에서 잠들고(鳥宿池邊樹)
스님은 달 아래 문을 두드리네(僧敲月下門)

그런데 결구(結句)를 밀다(推)로 해야 할지, 두드리다(敲)로 해야 할지 고민하다 자신을 향해 오는 고관의 행차와 부딪쳤다. 바로 한유의 행차였다. 하인들의 호통에 깜짝 놀란 가도가 고개를 들어 사죄하자 한유가 물었다. “어찌된 연유인고?” 가도가 길을 막게 된 자초지종을 말했다. 한유는 그를 나무라기는커녕 시를 다시 한번 읊어보라고 한 뒤 말했다. “내 생각에는 ‘두드리네(敲)’가 좋을 듯하군” 하며 그를 불러 시를 논한 뒤 둘은 더없는 시우(詩友)가 됐다.

이 고사에서 연유해 퇴고(推敲)는 문장을 다듬는다는, 원문의 뜻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다. 개고(改稿) 고퇴(敲推) 윤문(潤文)도 같은 의미로 쓰인다.

농단(壟斷)도 원문과 뜻이 다른 의미로 쓰이는 고사성어다. 원래는 ‘깎아지르듯이(斷) 높이 솟은 언덕(壟)’이란 뜻이지만 지위를 이용해 정보를 독점, 어떤 이익 등을 독차지하는 것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옛날 한 남자가 시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에 올라 시장 움직임을 두루 살핀 뒤 물건이 가장 잘 팔리는 좋은 자리를 잡아 큰 돈을 벌었다는 얘기에서 비롯됐다. 그로부터 농단은 거래를 좌지우지해 이익을 독차지한다는 뜻을 갖게 됐다.

세계적 베스트셀러는 하나 같이 수십, 수백 번의 퇴고 과정을 거쳐 탄생됐다.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역시 200번 이상의 퇴고를 거쳤다. 글은 덜어내는 훈련을 거쳐 정교해지고 맛이 난다. 만물의 가치는 수고로움을 거쳐 더 빛이 난다.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작가/시인 shins@hankyung.com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