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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60호 2020년 4월 20일

4차 산업혁명 이야기

[4차 산업혁명 이야기] 소비자가 기술보다 시장을 더 파괴해요


《혁신기업의 딜레마》(1997)가 발간된 이후 ‘파괴적 혁신’은 많은 기업의 핵심 키워드였다. 이들은 시장의 파괴자가 되기 위해서 혹은 파괴당하지 않기 위해서 ‘신기술’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오늘날 기술혁신과 시장파괴는 생각만큼 밀접하지 않다. 여객운송시장을 파괴하며 등장한 우버는 미국 3대 자동차회사의 시가총액을 합한 것보다 높은 가치를 지닌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이들이 사용한 기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에어비앤비 역시 마찬가지다. 남는 공간을 다른 누군가에게 중개해주는 사업으로 호텔산업의 위기를 불러왔지만, 여기에 어떤 대단한 기술이 숨어 있지 않다. 오늘날 이런 현상은 업종, 지역, 시장을 가리지 않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의 욕구변화에 의한 시장파괴

《디커플링(Decoupling)》의 저자인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탈레스 테이셰이라 교수는 오늘날 시장을 파괴하는 요인은 기술이 아니라 소비자라고 주장한다. 소비자의 세분화되는 욕구가 시장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과거 소비자들은 물건의 평가와 선택, 구매를 모두 한 장소에서 해결했다. 매장에서 옷을 입어보고 마음에 들면 그 자리에서 구입하는 것이 편했다. 하지만 아마존으로 대표되는 전자상거래의 등장 이후 많은 소비자는 구경은 매장에서, 구입은 더 저렴한 온라인으로 구분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살펴보고 실제 구입은 온라인사이트에서 이뤄지는 ‘쇼루밍’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테이셰이라 교수는 이처럼 소비사슬을 끊어내는 과정을 ‘디커플링(decoupling)’이라고 정의한다. 디커플링으로 많은 변화가 발생했다.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은 급감했고, 소비자 욕구를 더 세분화해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서비스들이 생겨났다.

언번들링·탈중개화·디커플링…

시대에 따라 시장을 파괴해온 주요 요인은 달랐다. 디지털 시대의 파괴를 야기한 첫 번째 요인은 언번들링이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표현되자 기존에 묶음 방식으로 판매되던 콘텐츠를 분리할 수 있었다. 어떤 한 가수를 좋아하더라도 그 가수의 모든 음악이 마음에 들기는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과거에는 CD 구입을 통해 전체 곡을 구입해야 했지만, 아이튠즈의 등장 이후 소비자는 원하는 곡만 개별적으로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기존 기업들에 큰 위협이 됐다. 음악산업의 중심에 있던 타워레코드는 ‘우리가 알던 시대는 끝났다’는 록밴드 REM의 노래가사를 남긴 채 파산했고, 미국의 대표적 출판사 맥그로힐은 아마존의 킨들이 등장해 필요한 챕터만 구입할 수 있도록 교과서를 해체하자 2005년에서 2016년 사이 매출의 3분의 2가 날아갔다.

두 번째 요인은 탈중개화다. 인터넷이 저렴한 비용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콘텐츠를 노출할 수 있는 통로로서의 잠재력이 확인되자 중개인 없이 직접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등장 이전에 여행객들은 반드시 여행사를 통해 항공과 숙박을 예약했지만, 오늘날에는 직접 앱을 통해 예약한다. 주식거래도 마찬가지다.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인터넷으로 직접 거래할 수 있게 됐다. 친구의 주선 없이 데이트 앱을 통해 이성 친구를 찾는 모습 역시 탈중개화의 사례다.

언번들링과 탈중개화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공급을 하는 단계에서 영향을 미쳤다면, 세 번째 요인인 디커플링은 고객이 물건을 구입하고 가치를 경험하는 단계를 무너뜨린다는 점에서 차별화됐다. 디커플링을 통해 경쟁구도를 바꾸는 기업들은 소비자 욕구를 감지하고 이를 만족하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일 뿐 자신들의 전략이 디커플링이라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기존 기업들은 근본 원인은 파악하지 못한 채 표면적인 현상에만 대응했고, 이로 인해 위대한 기업에서 파괴의 대상으로 변모했다.

시장 파괴의 진정한 요인

언번들링과 탈중개화, 디커플링으로 이어지는 디지털 파괴의 요인들은 디지털 기업이 본질적으로 혁신적 기술의 개발자가 아닌, ‘사용자’라는 점을 알려준다. 오늘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디지털 기업 중 상당수는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기술을 개발하지 않았다. 기술을 활용하지만, 이들이 사용한 기술은 이미 다른 기업도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널리 퍼진 기술들이다. 이는 이미 약 20년 전에 발간된 책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 잘 나타나 있다. 저자인 짐 콜린스는 성공을 거둔 28개 회사를 연구해 기술은 그 자체만으로 흥망성쇠의 주된 요인이 될 수 없다고 결론 내린 바 있다.

기술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도구이고, 표면에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다. 살펴봐야 하는 것은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 누구에게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에 대한 일련의 과정이다. 오늘날 디커플링이라는 방식으로 세분화된 가치가 전달되고 있고, 이런 방식은 소비자 욕구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나갈 것이다. 기술이 아닌 기술을 활용해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출 때 소비자에게 공감받는 기업이 될 수 있다. 데이비드 타스 UC버클리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술은 혼자 힘으로 시장을 파괴하지 않는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의 거품이 조금씩 벗겨지고 있는 지금, 기술이라는 현상이 아닌 기술을 통한 가치의 전달이라는 현상의 핵심에 초점을 맞출 때다.

☞ 포인트

디지털 기업들의 기술혁신과
시장파괴 상관관계는 점차 약화
기술 통한 가치 전달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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