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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글생글 646호 2019년 9월 30일

Cover Story

청년 돌아오는 밀양 vs 공장 반대로 소송비만 날린 예산

주물은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금속을 녹여 틀 안에 넣은 뒤 응고시킨 다음, 원하는 모양의 금속제품을 제조하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화학물질이 사용돼 악취가 난다. 거푸집 재료인 유연탄에서는 분진이 발생한다. 충남 예산은 물론 경남 밀양 주민들도 처음에는 주물단지 이전을 반대했던 이유다. 국내 양대 주물산업단지인 인천 경인주물단지와 경남 진해 마천주물공단은 2009년 나란히 이전을 추진하게 됐다. 공장 가동 25~30년 만에 한계에 다다르면서 기존 설비로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물기업 탐방부터 갈린 운명

기업들의 대응은 초기부터 갈렸다. 마천주물공단 기업들은 밀양 주민 대표 14명의 일본 나가노 주물공장 탐방을 주선했다. 최신설비를 적용하면 악취와 분진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탐방 후 주민들은 “나가노 공장 내부의 공기가 외부와 똑같이 깨끗하다. 냄새나 뿌연 연기가 없다”며 편견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예산 주민도 주물기업 탐방에 나섰다. 기업들이 아니라 반대위원회 주도로 인천과 경북 영양 등지의 노후 주물기업을 돌아본 것이다. “먼지가 날려 작물을 키우기 쉽지 않다”는 주민 반응을 들으며 반대 뜻은 더 굳어졌다. 이는 주민들이 자기 주머니를 털어 2011년부터 충청남도를 상대로 공단 지정 취소 소송에 나서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법원까지 가는 5년간의 소송 과정에서 공단 조성 공사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주물기업 이전 과정에서 환경 영향을 평가할 환경보존위원회 구성을 놓고도 결과가 엇갈렸다. 예산에서는 기업과 주민 대표를 각각 몇 명 정할지를 놓고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밀양 이전 주물기업들은 아울러 17억원을 투자해 조성된 공단 내에 환경측정장치를 네 군데 설치했다. 공단 조성 작업을 책임진 밀양하남공단사업협동조합의 조민석 이사는 “법적으로는 하나면 충분하지만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 약속이 결정적

밀양 주민의 마음을 완전히 돌려세운 건 기업들의 일자리 약속이었다. 500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지난 6월 밀양시 및 주민과 ‘밀양형 일자리 협약’을 맺었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에 밀양 주민을 우선 채용하겠다”고 약속했다. 주물업체 3년 숙련공의 월급은 400만원 이상이다. 연봉 5000만원이 넘는다. 주민들은 객지에서 고생하는 자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길이 열렸다며 기뻐했다. 올해 초부터 이전 공사를 하고 있는 한황산업의 장희중 이사는 “설비 증설이 내년까지 마무리되면 80명을 새로 고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옮겨오는 일자리 1700여 개를 더하면 2200개 이상의 일자리가 밀양에 생겨난다.

지자체의 유치 의지도 영향

밀양시와 경상남도도 체계적인 지원책을 내놨다. 올해 2월 정부가 기업 투자비의 최대 34%까지 지원하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모델’을 내놓자 주물기업들이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기업들이 “불경기로 진해의 기존 공장부지가 팔리지 않아 이전 자금 마련에 어려움이 있다”고 하자 도예산으로 장기 저리대출을 해줬다. 이재강 밀양시 투자유치과 주무관은 “환경 등과 관련해 각종 규제·감독만 받던 주물기업들은 정부에서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믿기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반면 예산에서는 지자체가 제 역할을 못했다. 기업들은 “이전 양해각서를 체결할 당시 도지사이던 이완구 전 총리가 떠나자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주민들도 “충청남도와 예산군의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이전까지의 논의는 사라지고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가구당 150만~200만원의 ‘투쟁기금’을 냈지만 시위 과정에서 일부 주민은 형사처벌을 받고, 공단 지정 취소 소송에서는 1, 2, 3심 모두 패하면서 상처만 남았다.

■NIE 포인트

밀양과 예산의 주물공단 이전 사례를 비교하고 기업의 이전·유치에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토론해보자. 밀양의 공장 유치에는 공무원들의 역할도 컸다. 조직 문화나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면 공무원들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자.

노경목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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