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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엄청난 행운을 만난 핍의 행로를 따라 가보자

    부모님을 일찍 여읜 핍은 자신보다 나이가 스무 살이나 많은 누나 집에 얹혀산다. 핍에게 자주 손찌검을 하는 누나는 솥뚜껑만 한 손바닥으로 남편도 퍽퍽 때릴 정도로 과격하다. 대장장이인 매형 조와 핍은 함께 수난을 받으면서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친해졌다. 아무리 마음씨 좋은 매형이 있다 해도 누나에게 구박받으며 희망 없는 삶을 살면 이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나에게 진짜 부모가 있어서 어느 날 짜잔 하고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나에게 큰 유산을 남겼다면 그 돈으로 뭘 할까.’핍에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 낯선 변호사가 조의 지도 아래 4년째 대장장이 훈련을 받고 있던 핍을 찾아와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게 되었으니 즉시 일을 그만두고 신사 교육을 받으러 가자”고 말한다.찰스 디킨스가 1861년 출간한 <위대한 유산>은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췄다는 평가 아래 오늘날까지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차례 이상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로 제작된 이 소설은 ‘영국 독자들이 뽑은 가장 귀중한 책’ ‘한국 문인이 선호하는 세계명작소설 100선’ 등 다양한 기록도 갖고 있다. 이 소설이 주간 잡지 ‘연중일지’에 연재될 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도 작품에 푹 빠져 디킨스를 흠모했다고 한다. 누가 재산을 남긴 걸까<위대한 유산>의 어떤 면이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걸까. 우선 160년 전 발표된 소설임에도 소설 속 인물과 그들의 행동, 여러 갈등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친근하고 생생하다. 추리 기법을 통원한 흥미로운 전개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행운이 다가오기 전 모든 게 암담했던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스토리텔링의 바이블 <시학> 완전 정복하기

    “말을 할 때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라. 과제도 스토리텔링을 넣어서 써라. 우리 모임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보자.” 일상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텔링(telling)’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이야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를 말한다.대학에서 스토리텔링만 특화해 강의를 시작한 게 십수 년 전이어서 스토리텔링이 활성화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이미 2400년 전부터 뜨거웠던 이론이다. 스토리텔링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책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35년에 쓴 <시학>이다. 오늘날 스토리텔링 강사들이 학생들에게 꼭 추천하는, 그야말로 생명이 긴 책이다. 문학이론이자 서사이론<시학>은 말 그대로 시의 제작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서정시, 서사시, 비극, 드라마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당시 소설이라는 장르가 없었으나, 소설을 포함한 모든 문학이론이자 더 나아가 모든 서사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스어 원전 번역본 <시학>이 여러 권 나와 있지만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가 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권하는 이유는 해설 때문이다. 전체 159쪽 가운데 해설이 56쪽에 이르는데, 해설을 읽고 나면 26장으로 구성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시학>에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작가들이 거론된다면 박 교수의 해설에는 우리가 잘 아는 드라마와 영화가 등장한다.26장의 짤막짤막한 이론을 보면 익숙한 듯 아리송한 단어들이 눈에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선생님과 학생들, 어느 쪽이 거짓말하는 걸까

    도쿄의 명문 사립 세이카학원. 이 학교 중등부 3학년 D반 학생 15명이 교내 체험캠프에 참가했다. 동일본 대지진 후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의 피난소를 가정해 교실에서 침낭을 깔고 하룻밤 지내는 훈련이다. 한밤중에 D반 담임 히노 선생이 남학생 7명이 모여 있는 3층 교실로 순찰을 와서 “모든 구조와 보급이 끊긴 절망적인 상황에서 한 명이 희생돼야 한다면 누구를 선택할지 논의해보라”고 지시한다. 마치 왕따를 지목하라는 듯한 상황에서 희생자로 선택된 시모야마 요헤이가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문제가 시작된다.학부형들은 불같이 항의하고, 학교 측은 행여 문부과학성에 알려지면 어쩌나 안절부절 못한다. 문제의 히노 선생은 절대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며 학생들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펄펄 뛴다. 학생이 거짓말한다는 선생, 선생이 이상한 상황을 조장했다는 학생, 대체 누구 말이 맞을까?<음의 방정식>의 작가 미야베 미유키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뛰어난 필력으로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리는 미야베는 여러 조사에서 한국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에쿠니 가오리와 요시모토 바나나를 제치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란’에 수차례 이름을 올렸다. 추리소설, SF, 판타지, 시대소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사회 모순과 병폐를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상처받는 인간의 모습을 따뜻하고 섬세하게 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학교 문제와 가정 문제중편 분량의 이 소설은 미스터리 방식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다가 거의 마지막에 가서야 사건의 윤곽이 드러난다. 짧은 이야기 속에 학교 문제와 가정 문제를 잘 버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100년 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대표적 유령소설

    사고로 부모를 잃은 두 남매가 사는 시골의 오래된 저택에 새로운 가정교사가 온다. 전 가정교사와 남자 일꾼은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죽음의 그림자와 낡은 시골 저택, 벌써 오싹하지 않은가.《나사의 회전》은 넷플릭스 드라마 ‘블라이 저택의 유령’, 영국 영화 ‘공포의 대저택’, 충격적 반전을 담은 ‘디 아더스’, 2020년 개봉한 미스터리 고딕 호러 ‘더 터닝’의 원작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공포영화가 《나사의 회전》에서 힌트를 얻었다.소설 초입에서 더글러스라는 인물은 일행에게 어떤 여인이 죽기 전에 기록한 글을 갖고 있다며 ‘기괴하고 흉측스럽고, 공포와 고통을 주는 내용’이라고 소개한다. 헨리 제임스가 1898년 이 작품을 발표할 때의 창작 의도를 대변하는 말이다.이 소설은 단순히 공포에 그치지 않고 ‘사실적인 서술에다 성격 묘사에 중점을 두고 인간 행동의 내면에 있는 심리적 동기를 심리학적 혹은 병리학적으로 해부하여 분석해 나가는 심리주의 문학의 모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버지니아 울프, 제임스 조이스, 조지프 콘래드, D H 로런스 같은 유명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며 ‘의식의 흐름’ 기법을 개척한 작품이다. 두 유령이 나타나다영미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꼽히는 헨리 제임스는 22편의 소설과 113편의 단편을 남겼는데,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킨 작품이 바로 《나사의 회전》이다. 이유는 모호성 때문이다. 유령의 존재에 대한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소설 속에 엄연히 유령이 등장하지만 가정교사가 글자를 읽지 못하는 가정부에게 유령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교묘한 방법으로 심문과 심리적 학대를 한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스무 마리 동물 속에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는 매우 독특한 소설이다. 모두 스무 종류의 동물이 등장하는 짧은 소설 모음인데, 주인공 이름은 동일하게 ‘비스코비츠’다. 잘생겼거나 용감한 수컷 비스코비츠가 좋아하는 상대의 이름은 리우바, ‘꿈결처럼 아름답고, 하품처럼 달콤하고, 베개처럼 부드러워’ 매우 매혹적이다. 그리고 친구 페트로빅, 주코빅, 로페즈가 수시로 등장해 다양한 상황을 만든다.돼지, 사자, 앵무새 같이 자주 들어본 동물도 나오지만 잠쥐, 되새, 쇠똥구리, 전갈같이 특성을 잘 몰랐던 동물도 줄줄이 등장한다. 스무 마리 동물 주인공의 특성에 맞춰 이야기를 만드는 게 쉽지 않아 보이지만, 생물학을 공부하고 2년 동안 동물유전학연구소에서 일한 알레산드로 보파에게는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었다.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이탈리아에서 공부했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태국 등지에서 산 보파는 친구들에게 엽서를 자주 보냈는데, 한 친구가 “좀 더 긴 글을 쓰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래서 쓰게 된 ‘낙타 이야기’를 통해 글쓰기에 흥미를 느껴 소설가가 됐다.생물학을 기묘한 우화로 재탄생시킨 보파의 첫 소설 《넌 동물이야, 비스코비츠!》가 출간되자마자 천재 작가가 등장했다는 갈채가 쏟아졌다. 이 소설에 대해 평론가들은 ‘다양한 동물이 지닌 본능과 습성을 바탕으로 인간의 동물적 욕망뿐만 아니라 악하고 약하고 모순적인 면을 다각적으로 그려냈다’고 평했다. 동물들의 특성에 맞춰 쓴 각기 다른 오묘한 이야기 속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카멜레온과 앵무새의 고민색깔을 조금 섞고 기관지를 부풀리면 가족도 자신을 못 알아보자 카멜레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K컬처를 다진 조용한 실력자 X세대

    MZ세대가 온갖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X세대를 분석한 《다정한 개인주의자》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970년부터 1979년 사이에 태어난 중년들의 얘기에 왜 귀 기울이는 걸까.우선 X세대가 요즘 가장 핫한 Z세대의 부모 세대라는 걸 환기하자. ‘생글생글’ 독자들의 부모 얘기를 담은 《다정한 개인주의자》를 통해 X세대가 어떤 특성을 지녔고 어떤 고민과 소망을 안고 있는지 파악한다면 가족 간 소통이 원활해질 것이다.세대는 ‘어린아이가 성장하여 부모 일을 계승할 때까지 30년 정도 되는 기간’을 뜻한다. 세상의 변화가 극심하다 보니 10년 단위, 때로는 5년 단위로 세대를 나누는 시대가 됐다. 김민희 저자는 이 책에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 86세대(1960~1969년생), X세대(1970~1979년생), 밀레니얼 세대(1980~1989년생), Z세대(1990년 이후 출생)로 세대를 구분했다. 요즘 자주 언급되는 MZ세대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를 합친 이름이다.X세대는 국외적으로 냉전이 종식되고 국내적으로 반독재 정치가 막을 내린 1990년대에 20대를 맞아 개인의 자유와 개성을 마음껏 펼치며 젊음을 보냈다. 정치·경제 만능주의 경향이 강한 우리나라 풍토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문화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냈다. X세대는 문화 세대, 정보화 세대, 탈정치 세대로 불리며 과거에 없었던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고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했다. 또한 패션, 가치관, 라이프 스타일이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달라 ‘신인류’라는 별칭까지 얻었다.이전 세대가 ‘우리’와 ‘시대정신’을 부르짖었다면 X세대는 본격적으로 ‘나의 욕망’을 노래했다. 최근 들어 MZ세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끝나지 않은 상처를 치유하려는 소녀들의 용기

    “이 집에 살던 열일곱 살 난 딸이 죽었단다.”갑자기 차를 세우고 둘러봤던 폐가를 구입한 엄마가 들려준 말이다. 세간살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으스스한 한옥, 마루 한가운데 놓여 있는 허옇게 빛이 바랜 여자 구두, 등짝이 선득해지는 장면이다. 이어서 발견한 붉은 나무 상자, 뚜껑을 여는 순간 비밀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다.《붉은 무늬 상자》는 초강력 베스트셀러 《시간을 파는 상점》을 쓴 김선영 작가의 최신작이다. 참신한 스토리와 섬세한 문장으로 청소년소설의 품격을 높인 작가가 이번에는 스릴러와 추리 기법에 묵직한 질문을 담아 찾아왔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둑어둑한 저녁, 텅 빈 집에서 읽기 시작한다면 재미와 감동과 오싹함이 배가 될 것이다. 아토피 치료를 위해 작은 산골 중학교로 전학 온 여학생 김벼리. 어릴 때부터 아토피 피부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지만 부모의 따뜻한 사랑과 강한 정신력으로 잘 이겨냈다. 원주민 아이들의 텃세에다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소문에 끼어들기 힘들지만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한마디로 쿨한 소녀다. 오래된 다이어리에서 발견한 진실김선영 작가가 소설을 통해 하려는 얘기는 ‘진정한 용기’에 관한 것이다. 어떤 상황을 목격했으면서도 “묻지 않아 답하지 않았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 나서지 않았다”고 하면 상관없는 걸까? 스스로에게 여러 질문을 던지며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벼리는 전학 온 첫날부터 친절하게 대해준 세나가 좋지 않은 소문에 시달리는 걸 알고 거리를 둔다. 지친 세나가 행여 나쁜 선택을 할지 몰라 걱정하면서도 다른 아이들의 눈총을 받고 싶지는 않다. 개학을 하고 사흘이 지났는데도

  •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개인과 자유에 대한 올바른 개념, 그리고 경제 자유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35번이나 언급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자유를 강조한 이유는 뭘까. 국민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개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를 지냈고 한국재정학회 회장과 자유경제원 원장을 역임한 현진권 박사의 저서 《자유경제 톡톡》은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던 개념들을 명확하게 해석해준다. 자유와 시장경제에 관한 입문서인 만큼 내용이 쉽고 재미있는 데다 분량이 150쪽 정도여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조금 까다로운 부분은 만화로 다시 설명해주는 친절한 책이다.모든 것은 사상에서 비롯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인간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체계화한 것이 바로 사상이다. 경제 체제도 사상에서 출발하는데, 시장경제 체제를 낳은 사상의 바탕에 ‘개인’과 ‘자유’가 자리하고 있다.헌법 제4조에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자유의 가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고 명시돼 있다. 자유는 ‘가치’고 민주주의는 ‘정치 체제’라는 걸 유념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사를 중시하기 때문에 때로는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소수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자유와 민주주의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 저자는 당연히 자유라고 말한다.자유의 주체는 개인이다. 개인이 없다면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 대한민국이 건국되기 전까지 한반도는 그저 왕을 위한 세상이었다. 대한민국 건국으로 개인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자유를 허용하는 체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개인이 모인 집단은 백성이 아니라 ‘국민’이 됐고, 개인의 존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