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박정자 번역·해설 <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
“말을 할 때 스토리텔링을 생각하라. 과제도 스토리텔링을 넣어서 써라. 우리 모임의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보자.” 일상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story)+텔링(telling)’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이야기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행위’를 말한다.대학에서 스토리텔링만 특화해 강의를 시작한 게 십수 년 전이어서 스토리텔링이 활성화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스토리텔링은 이미 2400년 전부터 뜨거웠던 이론이다. 스토리텔링을 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책이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35년에 쓴 <시학>이다. 오늘날 스토리텔링 강사들이 학생들에게 꼭 추천하는, 그야말로 생명이 긴 책이다. 문학이론이자 서사이론 <시학>은 말 그대로 시의 제작이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서정시, 서사시, 비극, 드라마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당시 소설이라는 장르가 없었으나, 소설을 포함한 모든 문학이론이자 더 나아가 모든 서사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어 원전 번역본 <시학>이 여러 권 나와 있지만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가 낸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권하는 이유는 해설 때문이다. 전체 159쪽 가운데 해설이 56쪽에 이르는데, 해설을 읽고 나면 26장으로 구성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시학>에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의 작가들이 거론된다면 박 교수의 해설에는 우리가 잘 아는 드라마와 영화가 등장한다.
26장의 짤막짤막한 이론을 보면 익숙한 듯 아리송한 단어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방, 카타르시스, 개연성과 필연성, 파토스와 에토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비극과 희극 등등 너무나 자주 쓰는 개념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쾌한 설명이 책 속에 가득하다.
‘비극은 보통보다 잘난 사람, 희극은 보통보다 못난 사람을 그리는 것’으로 요약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롯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수한 비극의 구조’는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이어야 하며, 두려움과 연민을 일으키는 사건을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의로운 사람이 행운에서 불운으로 떨어지면 안 되고, 성질 나쁜 사람이 불운에서 행운으로 옮겨가도 안 되고, 극악무도한 인간의 추락을 보여줘서도 안 된다. 극악무도한 인간이 추락하면 신날 것 같지만 그런 플롯은 자칫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있다. 두려움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의 불운에서 야기되기에 극악한 사람의 추락은 연민도 두려움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플롯 다음으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인물의 성격, 즉 캐릭터다. 인물들은 ‘선해야 하고, 적합성이 있어야 하며, 사실적이어야 하고,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게 아리스토텔레스의 인물론이다. 플롯 구성과 인물 묘사는 언제나 필연성과 개연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도 기억하자. 한국인이 이미 터득한 미학<시학>에서 예로 든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문학이론에 자주 등장하니 시간 내서 읽어볼 것을 권한다. 고대 그리스 최대의 서사 시인으로 불리는 호메로스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짧은 서설 다음에 곧장 한 남자, 여자 또는 여러 인물을 등장시킨다. 그 인물들이 모두 독창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음은 물론이다’라고 극찬했다.
박 교수는 “오늘날 한국의 가장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까지도 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미학에 통달하고 있다”고 말해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한국의 막장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반전과 출생의 비밀’ 등이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라는 것이다. 영상도 없던 시절에 쓴 아리스토텔레스의 서사 기법에 대해 박 교수는 “올드하기는커녕 해가 갈수록 새롭고 신선한 젊음을 자랑한다”고 평한다.
스토리텔링은 이제 반드시 통달해야 할 ‘만능 치트키’가 되었다. 스토리텔링의 비밀이 가득 담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박 교수의 친절한 해설과 함께 정복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