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작가의 북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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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힘들지만 따뜻하고, 각박하지만 달콤한 풍경들
20대까지는 그다지 차이가 크지 않아 노력 여하에 따라 앞날이 달라질 수 있다. 이 말에 청소년, 아니 초등학생들도 “뭘 모르시네”라며 코웃음 칠지 모르겠다. <창밖의 아이들>에 등장하는 세 명의 청소년이 처한 환경을 보면 어린 시절부터 확실한 차이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동조하게 된다.이 소설의 시작은 다소 충격적이다. 주인공 란이가 중학교 3학년이 돼서야 생리를 시작했고, 하필이면 교실에서 그 일이 벌어진다. 옷에 생리혈이 묻은 줄도 몰랐던 란이는 아이들이 웅성거린 탓에 그 사실을 알게 되자 쓰러지고 만다. 도망가버린 엄마 때문에 여자, 정확히 말하면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란이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나팔관 절제를 결심한다. 자녀를 버리는 엄마 같은 사람이 되기 싫어 임신할 수 없는 몸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짐작하겠지만 란이의 생각은 점차 바뀌게 된다.란이, 임대아파트에 사는 걸 몹시 창피하게 여겨 들키고 싶지 않다. 겨우 마흔 살에 방구석에서 TV나 보며 소일하는 아빠를 ‘그 남자’로 지칭하며 말도 섞지 않는다. 책임감 없는 부모 대신 칠순의 할머니가 집안 살림을 하며 생업 전선에서 뛰고 있다.클레어, 란이와 같은 반이다. 200만원짜리 몽클레어 패딩을 입고 온 뒤로부터 본명 대신 클레어로 불린다. 최고급 아파트에 사는 산부인과 병원 원장 딸로 모든 아이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다.민성, 란이가 아르바이트하다 알게 된 조선족으로 불법체류자 신분이다. 엄마는 중국으로 추방되면서 민성이에게 어떻게든 한국에서 살아남으라고 말한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버티는 게 힘들기만 하다. ‘넘사벽’ 클레어의 정체오래전 상영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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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희미해서 더욱 간절한 그 시절의 매혹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나는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첫 문장에 매료되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속으로 빨려들면 오묘한 미로 속에서 수많은 이미지를 만나게 된다. 모호하면서도 매혹적인 장면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위트가 운영하는 흥신소에서 탐정 일을 하는 기 롤랑. 그는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다. 기 롤랑이라는 이름과 신분증명서를 만들어준 위트는 “지금부터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하시오”라는 현실적 조언까지 한다. 8년간 함께 일한 위트가 흥신소 문을 닫자 롤랑은 늘 허전한 현재와 기대되지 않는 미래가 아닌 깜깜한 과거로 떠난다.‘흥신소’와 ‘탐정’이 추적을 좁혀가며 과거를 선명하게 복원해 낼 것이라는 기대를 주지만,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제목처럼 기 롤랑이 떠나는 길은 불확실하기 그지없다.파트릭 모디아노는 1945년 프랑스 불로뉴비양쿠르에서 이탈리아계 유대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23세에 발표한 첫 소설로 두 개의 상을 받은 그는 이후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평단과 독자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으며 유명 문학상을 휩쓸었다. 주요 작품으로 <도라 브루더> <신원 미상 여자> <작은 보석> <한밤의 사고> <혈통>을 꼽는데,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현대 프랑스 문학이 거두어들인 가장 큰 성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슬픈 빌라><청춘시절><8월의 일요일들><잃어버린 대학>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노벨 문학상·공쿠르상·부커상을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는데, 모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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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최전방에서 기획해 열정으로 엮은 명강의 28편
우유곽의 표준어는 우유갑으로, 우유를 담은 작은 상자를 뜻한다. 책 제목을 우유갑으로 쓰지 않은 이유를 알려두기에 ‘엮은이의 요청과 고유명사화된 개념으로 우유곽이라고 표현한다’고 밝혀놓았다. <우유곽 대학을 빌려드립니다>는 2010년에 발행된 책으로, 강의를 수록한 교수진 중에 이미 고인이 된 분도 있다. 그런데도 꾸준히 판매되는 비결은 이 책을 엮은 최영환 하이데어 대표가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강연 때마다 거론하기 때문인 듯하다.이 책에 등장하는 교수, 즉 필진 28인은 한마디로 쟁쟁한 인물들이다. 최 대표가 각 분야 최고를 엄선해 필수공통학부, 실무형인재학부, 릴레이션십학부, 국제적감각학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양학부로 나누고 세부적으로 학과를 분류해 인터뷰 내용을 게재했다. 교양학부 조엘 오스틴(<긍정의 힘> 저자), 세계인재학과 신호범(미국 워싱턴주 상원의원), 정직학과 윤은수(휠라코리아 대표), 관계학과 안성기(영화배우), 스피치학과 T.J.워커(미디어 트레이닝 월드와이드 CEO), 열정학과 이길여(경원대 총장) 등 교수진이 화려하다. 무명 청년의 용기이 책은 충실한 내용 못지않게 화려 필진을 섭외하는 과정이 유명하다. 이 책을 기획한 최영환 대표는 부산 영도에서 자라 경북 포항에 위치한 한동대학교에서 문화와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고 장교로 군에 입대했다. 늘 변두리에만 살았던 그는 군대만큼은 중심 지역으로 발령받고 싶었다. 하지만 인터넷은 물론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최전방 비무장지대에 배치됐다. 그는 ‘고립된 환경에서 세상과 소통하고 싶다’는 꿈을 꾸다가 ‘각 분야 전문가를 초빙해 자기 계발을 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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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이비인후과 전문의 눈으로 본 훈민정음 제자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고 과학적인 문자는 한글’이라는 자부심은 ‘손 안의 컴퓨터’ 휴대폰이 보편화되면서 완전히 증명됐다. 배우기 쉬운 문자에서 디지털 시대에 최적화된 문자라는 평가까지 한글에 대한 칭송은 나날이 높아만 간다.문창살을 보고 만들었다는 말도 있었지만, 언어학과 음성학의 대가인 세종대왕이 혀뿌리 모양을 바탕으로 만든 과학적인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예를 들어 어금니 소리글자 ㄱ은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습이며, 입술소리 글자 ㅁ은 입 모양을 본뜬 것이다.한글 창제의 원리에 대해 많은 것이 확인됐음에도 한글 원리에 대한 해석에서 합의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자음 글자는 혀나 입술 같은 발성 기관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건 이해하지만, 모음 글자는 성리학 이론과 관련된 천지인을 가져와서 만들고 조합했다는 것을 두고 학계 의견이 분분하다. 천지인을 명확히 입증한 책<훈민정음 음성학>은 ‘천(·)지(ㅡ)인(ㅣ)이 소리 조음 시 공명강의 특징적 모습을 본떠 만들었다’는 사실을 명확히 입증한 책이다. 과학적으로 훈민정음을 분석한 책의 내용도 놀랍지만, 저자가 이비인후과 전문의라는 점이 더 놀랍다. 연세대 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한 최홍식 작가는 후두질환과 음성 장애·두경부암 분야의 최고 권위자로 EBS ‘명의’에 두 차례 선정됐다. 김대중·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비인후과 자문의를 지내기도 했다.연세대 의대 명예교수와 제일이비인후과의원 대표원장으로 재직 중인 저자는 독립운동가이자 한글학자인 외솔 최현배 선생의 손자다. 그 인연으로 외솔회 이사장에 이어 세종대왕기념사업회 대표이사를 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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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문명국 부럽지 않은 야만인 존의 선택 '참된 자유'
91년 전인 1932년 발표된 <멋진 신세계>는 여러모로 충격을 안기는 작품이다. 이 소설이 예측한 것들이 이미 많이 이뤄진 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도 마음만 먹으면 바로 시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1894년 출생한 올더스 헉슬리는 영국 명문가 출신으로 이튼과 옥스퍼드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고 소설, 수필, 전기, 희곡, 시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다. <멋진 신세계>는 조지 오웰의 <1984>와 함께 ‘충격적인 미래 예언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도덕성에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당신은 어떤 신세계를 꿈꾸고 있는가. <멋진 신세계> 속 문명국을 보면서 내가 생각하는 이상향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살펴보자. 소설 속에는 문명국과 야만국이 등장한다. 야만국의 야만인은 우리처럼 부모에게서 태어나 자기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문명국에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이라는 다섯 단계의 계급이 존재하고 각 계급 내에서 플러스와 마이너스로 갈린다. 기계를 조작해 다양한 분야의 우수한 알파를 만들고, 지능이 모자라는 엡실론도 자유자재로 생산한다. 흑인의 피가 8분의 1 섞인 ‘8분 혼혈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필요한 분야의 쌍둥이를 무수히 찍어내기 때문에 문명국에선 똑같이 생긴 인간이 떼지어 다니는 것쯤은 신기한 일이 아니다. 가짜 행복보다 불행이 낫다요즘 세계적으로 출생률이 낮아 걱정인데 소설 속 문명국은 적정 인구를 생산하고, 험한 일은 델타 마이너스나 엡실론 계급이 도맡으니 인구 걱정, 실업 걱정이 없다. 태어날 때부터 계급이 정해져 있어도 불만 따위는 없다. 성장 과정에서 끊임없이 최면 구호를 주입하는 데다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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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일상의 반복에 갇힌 그 남자의 심리가 궁금하다
<모래의 여자>를 읽는 동안 ‘하늘이 암갈색으로 물들고 흙먼지가 풀풀 일어 숨 막힐 것 같은’ 기분에 빠질 수 있다. 절체절명의 수렁에 갇힌 남자의 절규를 따라가면서 그 심리에 젖어들다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오버랩되면서 많은 생각이 떠오른다.아베 코보는 <뉴욕타임스> 선정 세계 10대 문제 작가에 꼽혔으며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 국제적인 작가로 평가받았다. 1924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이듬해부터 중학교를 마칠 때까지 만주에서 살았다. 아베 코보는 수필집 <사막의 사상>에서 ‘사막적인 것에는 늘 뭐라 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며 ‘거의 사막과도 같은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사막을 동경했던 것 같다’는 심경을 밝혔다. ‘바짝 마른 눈두덩이 속으로 모래가 파고드는 짜증스러운 기분 이면에는 불쾌함이 아니라 일종의 들뜬 기대감이 담겨 있다’는 상반된 감정이 이 소설을 쓰게 했을 것이다.20개 언어로 번역된 이 작품은 1963년 요미우리 문학상, 1968년 프랑스 최우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4년 영화화돼 칸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모래 구덩이 집에 갇히다31세 교사인 남자의 여행 목적은 곤충의 새로운 종을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신종 하나만 발견하면, 긴 라틴어 학명과 함께 자기 이름도 곤충도감에 기록돼 거의 반영구적으로 보존된다’는 사실이 그의 관심을 끌었다. 어느 날 집 근처 강턱에서 딱정벌레목 길앞잡이속의 좀길앞잡이 비슷한 엷은 분홍색의 곤충을 발견한다. 안타깝게도 그 곤충을 놓쳤고, 길앞잡이속이 대표적인 사막 곤충이라는 사실을 알고 사막으로 향한다.남자는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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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과 감수성 변화가 디지털 언어 부른다
젊은 세대의 문해력이 문제로 떠올랐다. 한 웹툰 작가가 사인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편을 끼쳤다며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공지하자 네티즌이 ‘제대로 된 사과도 아니고 심심한 사과를 하느냐’며 비난을 퍼부었다. 심심한(甚深, 깊고 간절한)을 ‘지루하고 재미없는’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20대 초반의 한 래퍼는 ‘하루 이틀 삼일 사흘 일주일이 지나가’라는 가사를 써서 모두를 아연실색하게 했다. 사흘을 4일째, 고지식(융통성 없음)을 높은(高) 지식, 금일(오늘)을 금요일로 아는 이들이 많다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젊은 세대의 문해력을 탓하는 기성세대들은 ‘디지털 언어’ 앞에서 고전하는 중이다. ‘답정너, 자만추, 금사빠’를 겨우 익히면 ‘스불재, 닥눈삼, 드잘알’ 같은 뜻 모를 단어가 줄지어 등장하기 때문이다.<말의 트렌드>를 쓴 정유라 작가는 온라인 공간에서 매일 피고 지는 말의 풍경을 관찰하며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하는 빅데이터 전문가다. 저자는 ‘디지털 언어’를 ‘온라인 공간에서 발생해 그곳에서 사용되다가 우리 사회 전반으로 넘어온 언어’라고 정의했다.저자는 ‘우리 언어의 문법이 바뀌었고, 우리 시대의 감수성이 변화했으니, 세대 간 소통이 이뤄지려면 디지털 언어를 알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언어가 뿜어내는 신선한 에너지를 흡수해 실생활에서 순환시킨다면 우리의 언어 습관과 감각이 밝아질 것이라는 저자는 ‘늙는 것보다 낡은 것이 더 위험한 시대’임을 환기시킨다. 새로운 언어 감수성 키우기이 책은 총 4부로 구성돼 있는데, 1부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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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상반된 시각과 통찰 통해 생각 근육을 키워라
대한민국을 한 단어로 축약하라면 ‘대립’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분명한 사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안 앞에서도 엇갈린 의견을 내며 얼굴 붉히는 정치인들을 날마다 목격하며 살기 때문이다. K컬처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지만 한국의 토론문화만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토론의 힘 생각의 격>은 제목처럼 토론과 생각으로 힘과 격을 기를 수 있는 책이다. 쉽지 않은 주제로 책을 쓴 허원순 저자는 33년의 기자생활 가운데 12년간 논설위원을 지낸 논객이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인 저자는 그간 기명 칼럼과 사설 등 논리를 앞세운 글을 1700여 편 썼으며 취재차 46개국을 방문한 이력을 갖고 있다.사설은 ‘특정 사안, 특정 시점 등 특정 계기에 밝히는 신문사의 평가 내지는 입장’을 담은 글이지만 <토론의 힘 생각의 격>에서 다룬 70가지 아젠다는 찬반 양쪽의 시각을 중립적으로 다루는 가운데 논쟁의 포인트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저자가 논술탐구형 매체 <생글생글>에 기고한 글을 가치의 충돌, 경쟁과 규제, 고용과 노동, 성장과 복지라는 카테고리로 구분해 책으로 펴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실효성이 있을까?’ ‘인구 감소 문제, 재정투입으로 풀 수 있을까?’ ‘최저임금, 해마다 반드시 올려야 할까?’ ‘취약계층 빚, 탕감해줘도 될까?’ 등 제목만 봐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한눈에 들어온다. 3단계 전개로 논리력 기르기각각의 주제는 ‘사건이나 사태를 통해 생각해야 할 포인트’를 제시한 뒤 ‘찬성’과 ‘반대’ 의견을 피력한 다음 ‘생각하기’로 한 번 더 정리했다.많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