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허원순 <토론의 힘 생각의 격>
대한민국을 한 단어로 축약하라면 ‘대립’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듯하다. 분명한 사실, 재론의 여지가 없는 사안 앞에서도 엇갈린 의견을 내며 얼굴 붉히는 정치인들을 날마다 목격하며 살기 때문이다. K컬처가 세계로 뻗어가고 있지만 한국의 토론문화만은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토론의 힘 생각의 격>은 제목처럼 토론과 생각으로 힘과 격을 기를 수 있는 책이다. 쉽지 않은 주제로 책을 쓴 허원순 저자는 33년의 기자생활 가운데 12년간 논설위원을 지낸 논객이다.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인 저자는 그간 기명 칼럼과 사설 등 논리를 앞세운 글을 1700여 편 썼으며 취재차 46개국을 방문한 이력을 갖고 있다.

사설은 ‘특정 사안, 특정 시점 등 특정 계기에 밝히는 신문사의 평가 내지는 입장’을 담은 글이지만 <토론의 힘 생각의 격>에서 다룬 70가지 아젠다는 찬반 양쪽의 시각을 중립적으로 다루는 가운데 논쟁의 포인트와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저자가 논술탐구형 매체 <생글생글>에 기고한 글을 가치의 충돌, 경쟁과 규제, 고용과 노동, 성장과 복지라는 카테고리로 구분해 책으로 펴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 실효성이 있을까?’ ‘인구 감소 문제, 재정투입으로 풀 수 있을까?’ ‘최저임금, 해마다 반드시 올려야 할까?’ ‘취약계층 빚, 탕감해줘도 될까?’ 등 제목만 봐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한눈에 들어온다.
3단계 전개로 논리력 기르기
[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상반된 시각과 통찰 통해 생각 근육을 키워라
각각의 주제는 ‘사건이나 사태를 통해 생각해야 할 포인트’를 제시한 뒤 ‘찬성’과 ‘반대’ 의견을 피력한 다음 ‘생각하기’로 한 번 더 정리했다.

많은 국민을 슬픔에 빠지게 한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저자가 도출한 아젠다는 ‘국가 무한 책임론’이다. ‘이태원 참사로 제기된 국가 무한 책임론, 타당한가?’라는 질문을 던진 저자는 ‘찬성’ 의견으로 국가는 국민 안전을 총체적으로 책임져야 한다는 점, 경찰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점, 대구지하철·성수대교·세월호 사고 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유족 보상을 한 점을 들어 국가가 총괄 책임을 져야 한다고 기술했다.

‘반대’ 의견의 서두에선 500여 명이 사망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 공무원이 뇌물을 받고 무단 증축을 눈감아준 사실이 드러났지만 국가의 배상 책임은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짚었다. 이태원 참사가 건물 전체가 내려앉은 삼풍백화점 때보다 공무원(정부) 연관성이 더하다고 할 근거가 있는지 물으며 국가 무한 책임론은 유사 사고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자칫 무한 간섭·감독권의 발동 계기가 된다는 점을 우려했다.

‘생각하기’에서는 시민 자유권을 한껏 보장받으며 모든 사고에 대한 정부 책임을 무한대로 늘리는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 국가의 책임을 키울수록 간섭도 늘어나 규제 문제가 대두된다는 점을 환기했다. 실현 불가능한 ‘전지전능 국가’ 요구는 ‘초강력 통제 권력만 키울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법과 규정에 정해진 대로 정확하고 충실하게’를 해법으로 제시했다. 나만의 견해를 가져라저자가 서문에서 피력한 ‘복잡하고 급박하게 빚어지는 현실과 현상을 제대로 이해 못 하니 불안하고, 앞뒤 좌우 전후의 맥락을 모르니 늘 불만에 가득 차게 되고, 기초 지식도 충분치 않은데 공부조차 않으니 정부든 언론이든 모두 불신의 대상이 돼버리는 것이다’라는 개탄은 우리 사회 현주소를 고스란히 요약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이 불안 불만 불신이라는 3불(不)에서 벗어나 선순환의 성장 회로를 돌리는 데 일조하게 되길 희망했다.

다양한 매체와 넘쳐나는 1인 미디어가 매일 엄청난 양의 뉴스와 견해를 쏟아내고 있다. 정보 홍수 속에서 중심을 잡지 않으면 아무 생각 없이 휩쓸려 가게 된다. <토론의 힘 생각의 격>이 다룬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살펴보면서 사건 속에서 아젠다를 찾고, 찬성의견과 반대의견에 귀 기울인 뒤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나만의 견해가 생길 것이다.

이근미 작가
이근미 작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읽으며 토론하기 좋은 이 책은 논술 대비, 면접 준비 등에도 유용하다. ‘남의 의견은 무시하고 큰 목소리로 우겨야 이긴다’는 풍조가 이어지면 혼돈만 계속될 뿐이다. 70가지의 주제로 차근차근 토론하며 생각을 도출하다 보면 대립에서 화합으로 나아가는 길이 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