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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중세 유럽에서 황금보다 비쌌던 물감원료 '라피스라줄리'…18세기 이후 화학물감 나오자 비싸게 살 이유 없어졌죠

    14~17세기 유럽에서 황금보다 비싼 보석은 단연 라피스라줄리였다. 청금석이라고도 불리는 라피스라줄리는 당시 울트라마린 색상의 물감을 만드는 원료로 사용됐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바다흐샨 샤르샤흐 지역에서 생산되는 라피스라줄리는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상으로 인기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희귀하기까지 해 더욱 비싼 가격에 거래됐다. 희소성은 상대적인 개념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희소성의 가치가 더해지고,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기 마련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라피스라줄리는 황금이나 다이아몬드 이상으로 희소가치를 지닌 자원이었다.하지만 18세기 이후 화학산업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인공적으로 울트라마린 색상의 물감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울트라마린 색상의 물감을 생산하게 되자 더는 사람들이 라피스라줄리를 비싸게 살 이유가 없어졌다. 자연히 라피스라줄리의 수요가 급감했고, 여전히 라피스라줄리는 희귀하지만 더는 희소하지 않은 자원이 됐다.이처럼 희소성이란 굉장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라피스라줄리의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단순히 생산량의 많고 적음으로 희소성의 가치를 따질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희소성이란 인간의 욕구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가치이기 때문이다.욕구와 열정의 인간사람이라면 누구나 물건에 대한 욕심이 있다. 새로운 물건이 나오면 사고 싶고, 주변 사람이 가진 것이 멋져 보이면 자신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욕심이란 인간에게 너무도 당연한 본능이며, 누구나 더 좋은 물건을 갖고 싶어 한다.예를 들어, 삼성이나 애플의 신제품이 출시될 때를 생각해 보자. 으레 많은 사람이 남들보

  • 경제 기타

    미국·러시아는 원전 사고 겪었지만 세계 최대 원전국가, 원자력은 깨끗하고 친환경…제대로 알아서 옳게 써야

    2011년 3월 일본 동북부 방향 태평양 해역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의 영향으로 태평양 연안 일본 도시들을 향해 거대한 쓰나미가 일었다. 해일로 죽거나 실종된 사람만 2만 명 가까이 됐고 다친 사람도 6000여 명에 이르렀다. 고향을 잃은 이재민은 수십만 명이었다.후쿠시마 사고의 진짜 원인동일본 대지진은 일본 지진 역사상 가장 강력했으며 20세기 초 현대적 지진 관측이 시작된 이래 세계에서 가장 강한 다섯 번째 지진으로 기록됐다.지진과 해일만으로도 크나큰 자연 재해였는데 곧이어 큰 비극이 터졌으니 쓰나미의 영향권에 있던 후쿠시마현에 원자로 4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예상할 수 없는 자연 재해에 도쿄전력은 제때 대응하지 못했고 이른바 ‘멜트다운’(원자로가 녹아내리는 사고)이 일어났다. 광범위한 방사능 오염이 발생했고 발전소 근방은 순간적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됐다.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일본은 물론 전 세계에 반(反)원전 분위기를 불러왔다. 비극의 당사자인 일본은 일시적이었지만 50여 기에 이르는 나라 안의 전체 원자로를 가동 정지했다. 원전 사고가 발생한 상황인 만큼 원자로를 일제 점검한다는 차원의 조치였다.사실 반원전 분위기는 미국의 스리마일 원전 사고와 옛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때도 있었다.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 원전과 방사능 피해를 두려워하는 대중의 반응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 나라가 사고 뒤 원전을 포기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미국과 러시아는 여전히 세계 최대 수준의 원자로 보유국이며 스리마일 원전의 경우 심지어 재가동에 들어가기도 했다.후쿠시마 원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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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맬서스 "인구가 식량보다 빨리 증가해서 지구는 종말"…기술발전으로 생산성 급증…선진국마다 인구 줄어 고민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맬서스는 1798년 인류사에 크나큰 영향을 미칠 책 《인구론》을 저술했다. 그는 이 책에서 식량의 증산 속도와 인구의 증가 속도를 비교해 보건대 인류는 머지않아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할 거라고 예언했다. 현대인의 귀에도 익숙한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표현은 맬서스에게서 나온 말이다.맬서스와 종말론자들산술급수란 1, 2, 3, 4, 5 … 식으로 증가하는 것이고 기하급수란 1, 2, 4, 8, 16 … 식으로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식량과 인구의 격차가 이런 식으로 벌어진다면 인류는 결코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근심한 맬서스는 《인구론》의 결론을 토대로 빈민층을 대상으로 하는 불임 시술을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인구 관리 정책을 주문하기도 했다.맬서스의 예상은 다행히도 오래지 않아 사실이 아닌 걸로 드러났다. 하지만 그의 종말론적 미래관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1968년 일단의 지식인과 과학자들은 ‘로마클럽’이란 비영리 연구기관을 만들었다. 로마클럽은 환경오염과 자원의 고갈 추세를 감안할 때, 인류는 100년 이내에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게 될 거라고 경고했다. 물론 이들의 주장도 사실이 아닌 걸로 판명됐다.맬서스와 로마클럽의 예상은 빗나갔지만 그들의 주장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우리나라에도 제법 큰 영향을 미쳤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부르짖었던 1960~1980년대의 산아 제한 정책이 그렇다. 우리의 가족계획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없는 성공을 거뒀다. 어찌 보면 우리나라는 20세기 맬서스의 가장 충실한 계승자였던 셈이다.그의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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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톱깎이 세계기업 '쓰리쎄븐' 주인 바뀐 이유는 높은 상속세 탓에 지분을 팔아야 했기 때문이죠

    손톱깎이가 없는 집이 있을까? 손톱깎이는 아주 사소해 보이지만 우리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품이다. 이 작은 생활필수품으로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기업이 바로 ‘쓰리쎄븐’이다. 쓰리쎄븐은 손톱깎이로 30년 이상 세계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고,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90%를 차지할 정도였다.상속세는 정의로운가?1995년에는 쓰리쎄븐이란 상표를 놓고 미국의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사와 상표권 분쟁을 벌였고 끝내 이겼다. 그만큼 쓰리쎄븐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글로벌 강소기업이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쓰리쎄븐의 영광은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 종결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상속세 문제였다. 2008년, 창업주인 김형규 회장이 갑자기 별세하면서 기업의 존속이 크게 위협받게 됐다. 상속법에 따라 증여자가 5년 안에 사망하면 증여는 상속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2006년 가족과 임직원들에게 증여한 370억원어치가 넘는 주식이 김형규 회장의 별세로 졸지에 ‘상속’이 돼버렸다. 당시 증여받은 사람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는 약 150억원에 달했다. 너무나도 어이없는 일이지만 유족들은 상속세를 내기 위해 회사를 매각해야 했다. 상속세의 덫이 경영권은 물론이고 회사의 존립 자체를 어렵게 한 셈이었다. 그렇게 글로벌 강소기업 쓰리쎄븐 창업자의 영광은 세금과 함께 막을 내리고 말았다.상속세만큼 정의롭지 못하고 해악이 큰 세금을 찾기도 쉽지 않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식을 위해 부를 이루고 또 물려주고 싶어 한다. 이런 기본적인 인간의 본성에 반하는 세금이 바로 상속세다. 자식이 혹은 후계자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배려하는 마음은 인류가 발전해온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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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기업 경쟁은 '1대 1'이 아니라 '1대 다수'에요…'강한 기업'이란 경쟁에서 살아남는 기업이죠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2006년 개봉한 영화 ‘짝패’에 나오는 대사다. 장필호(배우 이범수)가 정태수(배우 정두홍)에게 말하는 이 대사가 많은 관람객이 뽑은 명대사가 된 이유는 뭘까? 아마도 우리 삶을 관통하는 절절한 깨달음이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유명한 영화 대사현재 우리는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사회가 발전하고, 경제 규모가 확대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경쟁 대상은 많아지고, 경쟁 속도는 빨라진다. 기업 세계에서 경쟁은 나날이 치열해지고 있다. 심지어 기업에 경쟁은 곧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업에 뒤처진다는 것은 곧 사멸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기업 세계에서 경쟁은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로 벌어진다. 과거의 경쟁 상대가 동지가 되기도 하고, 전혀 다른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던 기업이 어느 순간 최대 라이벌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에는 이런 문구가 유행했다.“나이키의 경쟁사는 닌텐도다.”“넥슨의 경쟁사는 싸이월드다.”나이키 경쟁사가 닌텐도?얼핏 보면 당최 나이키와 닌텐도가, 넥슨과 싸이월드가 무슨 상관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나이키는 대표적인 스포츠용품 브랜드, 닌텐도는 일본 게임회사가 아닌가.이는 단순히 산업 분야가 아니라 ‘여가 시간의 사용’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당시 게임기 붐이 일어나면서 많은 사람이 스포츠를 즐기던 시간을 게임에 쓰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축구를 좋아하던 아이가 직접 공을 차기보다 게임기를 이용해 축구를 하는 시간이 늘어난 셈이다. 그 전까지 전혀 상관없어 보이던 스포츠와 게임산업이 고객의 중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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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 발전하면 인간 영역은 업그레이드 돼…어떤 일자리는 없어져도 더 나은 일자리가 생겨

    2014년 3월 미국 LA타임스는 로봇 기자가 작성한 지진 속보 기사를 내보냈다. 물론 인간의 모습을 본뜬 휴머노이드 로봇이 키보드 자판을 두드린 것은 아니다. LA타임스의 로봇 기자는 실제로 움직이는 로봇이 아니라 컴퓨터 프로그램이다.로봇 기자가 나타났다‘퀘이크봇’이라고 불리는 이 자동화 프로그램은 정해진 알고리즘에 맞춰 인터넷상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하고 그 속에서 쓸 만한 기삿거리를 찾는다. 그런 뒤에 어떤 각도로 기사를 쓸지 결정하고 수집한 정보를 배열한 뒤 인간이 사용하는 자연 언어로 기사를 작성한다.아직까지 로봇 기자들은 스포츠, 날씨, 증권 분야의 기사를 작성하는 데 국한돼 쓰인다. 하지만 로봇 기자의 등장이 실제 ‘인간 기자’들에게 미친 충격파는 이미 꽤 큰 듯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래의 10대 몰락 직종’에서 우체부, 농부, 계량기 검침원에 이어 4위에 신문 기자를 올리기도 했다.인간은 기계와 경쟁하고 있다. 과연 앞으로 이 경쟁에서 어떤 승부가 날까? 더구나 단순한 기계가 아닌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기계라면 어떻게 될까? 이미 물리적인 힘에서는 기계가 인간을 앞선 지 오래됐다. 이제는 꽤 복잡하고 논리적인 사고를 필요로 하는 일에서도 기계가 인간을 앞설지 모를 일이다.러시아 출신의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와의 체스 게임에서 패배한 사건은 대단히 상징적이다. 인간이 지능을 사용하는 게임에서 기계에 패배한 사건으로 당시 무척 화제가 됐다. 조만간 SF영화에서처럼 인공지능으로 무장한 기계 군단이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만 같았다.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후 여러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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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00만명에게 1인당 2만엔씩 상품권 줬지만 국가 빚만 늘었을 뿐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죠

    상품권을 주면 소비하겠지!1998년 11월 일본 정부는 장기화되는 경제 침체를 만회해 보고자 긴급 경제대책을 발표했다. 당시로는 일본 역사상 최대 규모인 24조엔에 달하는 공적 자금 투입이었다. 하지만 경기 부양을 노린 이 어마어마한 금액의 긴급 경제대책에도 불구하고 도쿄 주식시장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일본 정부의 긴급 경제대책 발표 다음날,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일본 국채의 신용 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등급 강등하기까지 했다. 그 밖에도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나 경기 부양을 시도했지만, 그 무엇도 효과를 보거나 시장의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도리어 냉담한 반응과 비웃음까지 샀다.참다못한 일본 정부는 1999년, 야심차게 새로운 정책을 내놓았다. 그것은 바로 ‘상품권’이었다. 일본의 양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합의한 ‘상품권 배포’는 소비를 자극하려는 의도였다. 만 15세 이하 자녀를 둔 일본의 모든 세대와 노인복지연금 수령자 등 총 3590만 명을 대상으로 1인당 2만 엔의 상품권을 지급하기로 했다. 상품권 배포에 총 7000억엔이 사용됐다. 그런데 왜 하필 상품권이었을까? 일본 정부는 현금을 지급할 경우, 국민들이 그들이 의도한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해 버릴까 봐 염려했다. 또한 만성적 불황으로 고통받는 유통업계를 살리고자 하려는 의도도 포함됐다.상품권 현금화해 저축이처럼 정부가 상품권을 배포해 소비를 촉진하고 경기를 살리려고 한 시도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일본 정부의 상품권 아이디어는 일본 경제를 되살리기는커녕 참담한 결과를 낳으며 국제적 조롱거리가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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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과 일본 역사 바꾼 흥선과 후쿠자와…쇄국정책과 개방정책이 나라의 운명 갈라

    “서양 오랑캐가 침범해 올 때 싸우지 않음은 곧 화친을 주장하는 것이며, 화친을 주장하는 건 곧 나라를 파는 것이다.”- 1871년 신미양요가 발발한 뒤 세워진 척화비 비문흥선대원군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척화비, 쇄국정책, 위정척사와 같은 꽤나 고리타분한 것들뿐이다.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할 순 없지만 그런 이미지가 흥선대원군의 전부를 설명해 주는 것도 아니다.흥선대원군의 철학예컨대 흥선대원군이 조선 말기 실학자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 문하에서 수학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호포제 실시, 서원 철폐, 환곡제 폐지와 사창제 실시, 비변사 폐지와 의정부 부활 등 흥선대원군이 이룬 일련의 개혁 정책은 상당 부분 실사구시를 추구한 추사 실학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도 말이다.내치에서 뛰어난 개혁 정치가의 모습을 보여준 흥선대원군이 세상 물정 모르는 노인처럼 비쳐지게 된 건 역시 그의 강력한 쇄국정책 때문이다. 여기서도 변명의 여지가 아주 없는 건 아니라서 원래 조선은 500년 내내 쇄국이 국가 정책이었으니 마치 흥선대원군이 쇄국의 대명사인 양 알려진 건 다소 억울한 일이다.다만 독일인 오베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실패한 사건은 흥선대원군에게 꽤 큰 충격을 줬고 그의 쇄국 정책에도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한다. 제너럴 셔먼 호 사건,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거치며 조선은 극도로 폐쇄적인 사회가 돼 버렸다.후쿠자와 유키치의 철학흥선대원군의 쇄국 정책이 조선을 지배할 때 일본의 움직임은 달랐다.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국가 정체가 천황 중심의 근대 국가로 바뀌는 대변화가 일어났다. 1868년 메이지 연호에서 따온 메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