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노 박사의 시장경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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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교도소를 꼭 정부가 운영해야 한다는 것은 편견…'격리' 아닌 '교화'가 목적…민간이 더 잘 할 수 있죠
민간인이 교도소를 운영한다면 어떨까? 민간 교도소는 왠지 범죄자의 교화보다는 이윤 추구에만 힘쓰고 교도소 관리에는 허술할 것 같지 않은가. 최악의 경우, 탈옥수가 생길 것이란 걱정마저 든다. 또한, 이윤을 가장 중시하는 경제 주체인 민간이 공공재인 교도소 운영에 손을 대는 것은 불합리한 일처럼 느껴진다.1984년 미국에서 민간 교도서 첫선대개 사람들은 민간의 교도소 운영에 대해 위험천만한 시나리오를 상상하곤 한다. 그 이유는 단지 ‘생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을 돌려 보면, 민간의 교도소 운영에 대한 불안이 착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교도소는 당연히 정부가 운영하는 것’이란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지만, 사실 세상의 모든 교도소를 정부가 운영하지는 않는다. 단지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개념일 뿐이지, 세계사에서는 꽤나 오래된 교도소 운영 방식이다.미국에서 민간 교도소는 이미 1880년대에 추진되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은 날로 심해지는 강력 범죄와 교도소의 만성적인 수형자 과밀 수용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민간 교도소 설립은 국가의 재정을 절약하고 수형자 과밀 수용을 해소하며, 특히 범죄자의 효율적인 교화를 위해 추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민간 교도소’ 개념이 생소했던 것일까? 100여 년이 지난 1984년이 돼서야 미국 테네시 주에 최초의 민간 교도소가 설립됐다. 오랜 추진 끝에 생긴 최초의 민간 교도소는 현재 전 세계로 확산되는 추세다.교도소 과밀과 환경오랜 세월 짜놓은 대로 매년 똑같은 교도소 운영 방식을 반복하는 정부보다는 유연함과 효율성 제고 능력을 지닌 민간 부문을 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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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계획경제에선 배추값 급등해도 수확해봐야 이익 없죠…옛 소련이 사회주의 실패하고 개혁·개방으로 간 이유죠
한 공산주의 국가에서 일어난 일이다. 도시에서는 채소가 부족해 가격이 폭등하는데도 농촌의 밭에서는 수확하지 않은 채소가 그대로 썩어가고 있었다고 한다. 우리와 같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본주의 국가라면 상인들이 당장 트럭을 갖고 농촌에 와서 배추를 사다가 도시에 내다 팔며 중간 유통이익을 챙기고 남았으리라. 그런데 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이상적인 사회?그 이유는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사유재산을 금하기 때문이다. 모든 생산수단은 국가의 소유이므로 누구도 트럭을 소유할 수 없고, 이동의 자유가 없으므로 농촌에 채소를 사러 갈 수도 없다. 배추 농사를 짓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땅과 배추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돈을 받고 팔 수 없다. 설령 배추를 팔아서 이익이 생긴다고 해도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국가의 몫이라 굳이 팔려고도 하지 않는다. 아예 관심조차 없다. 도시에서는 채소 품귀 현상이 벌어지건 말건, 농촌 밭에서 멀쩡한 채소가 썩어가건 말건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이처럼 공산주의 계획경제 체제에서는 생산과 분배를 국가가 도맡아 하므로 개인이 나설 여지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생산자는 국가의 경제기구에서 정해주는 대로 생산하고, 소비자는 배급해주는 대로 소비할 뿐이지 그 이상은 관여하지 않는다. 게다가 국가가 철저하게 통제하는 계획경제 하에서는 괜히 잘난 척 나섰다가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알 수 없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고, 채소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어떤 잘못이 있든, 좋은 해법이 있든 차라리 그냥 입 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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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눈을 가리고 있는 까닭은 특권 없이 모두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뜻이죠
법치란 사람이 아니라 ‘법에 의한 지배’를 원리로 하는 통치로서 지역이나 종교, 인종, 민족과 상관없이 법에 따라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를 차별 없이 보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다. 그래서 법에 의한 통치가 정의롭고, ‘법이 곧 정의이며, 정의가 곧 법’이라는 말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법과 관련된 영어 표현에서는 ‘Ministry of Justice’, ‘Court of Justice’ 등 ‘법’이라는 단어 대신 ‘정의’라는 단어가 사용되기도 한다.법치와 정의의 개념개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유라는 권리도 타인의 자유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즉, 법치 안에서라야 정의롭게 보호되고 유지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법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반드시 선행돼야 할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일찍부터 민주주의를 확립한 영국은 “국왕이라도 신과 법 밑에 있다”는 헌정 원칙에 따라 법치가 잘 자리 잡은 나라로 유명하다. 다음의 이야기는 영국 사람들의 준법의식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내준다.영국 수상에게 교통티켓 발부어느 날, 영국의 수상이 타고 있는 차가 교통신호를 위반해 교통경찰관에게 적발되었다. 경찰관이 차를 정지시키고 다가오자 수상의 운전사가 차창을 내리고 이렇게 말했다.“수상이 타고 계신 차요. 지금 회의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보내 주시오.”하지만 경찰관은 운전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았다.“내가 알고 있는 수상 각하는 결코 법을 어기실 분이 아닙니다. 설혹 수상 각하라 하더라도 교통신호를 위반했으면 딱지를 떼야지 예외는 있을 수 없습니다.”경찰관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신호 위반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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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곡물 수입규제→가격 상승→임금인상 압박→경제 악화…리카도 "자유무역하면 가격도 내려가"…곡물법 폐지 주장
경제학에서 비교우위란 재화나 서비스를 다른 생산자에 비해 더 적은 기회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남들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다. 비교우위 개념을 처음으로 정립한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이다. 리카도는 당시 영국의 곡물법을 반대하고, 자유무역을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비교우위론을 들었다.리카도가 곡물법 반대한 이유곡물법은 1815년에 영국에서 시행된 법으로, 외국 농산물 수입을 금지하고 밀에 관세를 부과해 일정 가격 이상으로 거래하도록 강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곡물법에 따르면 밀 1쿼터(약 12.7㎏)당 80실링 이하인 경우에는 외국산 밀의 수입이 금지됐고 법으로 지정한 금액보다 싸게 수입할 수 없었다. 당연히 영국 국민은 법으로 정해진 가격 이상을 주고서야 겨우 곡물을 살 수 있었다. 즉, 곡물법은 영국 정부가 외국의 값싼 곡물에 맞서 자국 내 곡물가격을 유지하고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겠다며 시행한 법으로, 일종의 보호무역이었다.곡물법은 보호무역하지만 곡물법은 제정 이후 영국 내에서도 많은 논란을 야기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이 진행되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황이었다. 더욱이 나폴레옹 전쟁(1803∼1815년)으로 곡물 수요가 극도로 높아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외국산 곡물이 제대로 수입되지 않으니, 영국 내 곡물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나폴레옹 전쟁 전에는 밀 1쿼터당 가격이 46실링 수준이었지만 나폴레옹 전쟁 중에는 177실링까지 올랐다. 그러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60실링까지 내리기는 했으나 곡물법 시행으로 여전히 전쟁 발발 이전보다는 높은 가격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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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침묵의 봄'을 쓴 레이첼 카슨의 잘못된 주장 탓에 DDT사용이 금지되자 말라리아 환자가 급증했죠
해양 생물학자이자 환경 저술가인 레이첼 카슨은 1962년 《침묵의 봄》이란 책을 출간했다. 책에서 그는 살충제로 새들이 모두 죽어 봄이 와도 새가 지저귀지 않는, 말 그대로 조용해진 침묵의 봄을 묘사했다. 카슨은 이런 살충제의 대표 격으로 DDT를 지목했다. DDT는 20세기 중반 가장 많이 사용된 살충제다.새들이 지저귀지 않는다태평양전쟁과 6·25전쟁 때 미군이 사용하면서 유명해졌다. 당시 빈대와 이를 구제하는 데 널리 쓰여 지금도 나이 지긋하신 분들에게 DDT는 익숙한 이름의 살충제다. DDT를 개발한 스위스의 화학자 파울 헤르만 뮐러는 그 공로로 194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DDT는 어디까지나 살충제로 새의 생태와는 별 관련이 없는 약이다. 그런데도 카슨은 DDT가 새들을 죽인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생물 농축 현상을 들었다. 벌레를 잡아먹으면 새의 몸속에 DDT가 축적된다. DDT가 쌓인 새는 점차 껍질이 얇은 알을 낳게 되는데 그런 알들은 부화율이 떨어지기에 시간이 흐르면 새들의 개체 수가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거짓으로 드러난 카슨의 주장카슨의 이런 주장은 훗날 새들의 개체 수를 조사한 결과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당시엔 모두가 그의 말을 믿었다. 1970년대를 전후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DDT가 금지된 것이다.DDT는 역사상 가장 값싸고 효과적인 살충제 중 하나다. 하지만 이를 쓸 수 없게 됐다고 해서 미국 같은 선진국들이 곤란을 겪는 일은 없었다. 돈 좀 써서 다른 살충제로 바꾸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카슨은 미국인이었고 그의 책을 읽고 감동받은 대부분의 미국인 역시 DDT 사용 금지로 곤란해진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저개발국의 사정은 달랐다.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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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비 오면 우산장수가 좋고, 해 뜨면 짚신장수가 좋다"…로마가 유럽을 지배한 건 '열린 세계관' 덕분이었죠
전래동화 가운데 ‘우산 장수와 짚신 장수’라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두 아들을 둔 어머니가 있었다. 한 아들은 우산 장수이고, 다른 아들은 짚신 장수였다. 어머니는 날이면 날마다 가시방석이었다. 해가 쨍쨍한 날에는 우산이 팔리지 않아 걱정이고, 비가 오는 날에는 짚신이 팔리지 않아 걱정이었기 때문이다.“어째, 오늘은 날씨가 좋아서 첫째네 우산이 안 팔리겠네!”“아이고, 비가 오니 둘째가 짚신을 팔지 못할 텐데 이를 어쩜 좋을꼬.”어머니는 맑은 날 해가 떠도 한숨을 쉬고, 흐린 날 비가 내려도 한숨을 쉬었다. 자연히 어머니는 웃는 날이 없었고, 늘 근심 걱정으로 가득한 얼굴에는 깊은 주름살만 늘어갔다.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는 늘 그랬듯 아들 걱정으로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웃 사람이 어머니에게 말했다.“아니, 아주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왜 그렇게 한숨만 쉬고 계세요.”어머니는 울상을 지으며 대답했다.“오늘은 날씨가 맑아서 첫째가 우산을 하나도 못 팔 테니까요. 그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파서 한숨이 절로 나오네요.”“아, 그래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후에 비 소식이 있다고 했으니까요.”“이걸 어쩌나. 비가 오면 우리 둘째가 짚신을 팔 수 없는데…. 아이고, 둘째가 불쌍해서 어떡하나.”어머니는 울음을 터트리기 일보 직전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웃 사람이 안타까워하며 이렇게 말했다.“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생각을 바꿔서 해보세요. 비가 주룩주룩 내리면 우산이 날개 돋친 듯 팔려서 첫째가 얼마나 좋겠어요. 반대로 해가 쨍쨍 내리쬐면 짚신이 잘 팔릴 테니 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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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경쟁자 숫자·시장점유율만으로 독점 판단할 수 없죠…가격 등 소비자 이익이 사회적 손실보다 크냐가 관건
'브라우저 전쟁'은 웹 브라우저들이 점유율 경쟁을 하는 것을 말한다. 1차 브라우저 전쟁은 1990년대 말 마이크로소프트와 넷스케이프 사이에 벌어졌다. 1998년 미국 법무부는 마이크로소프트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그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브라우저 끼워팔기' 논란 때문이었다. MS의 브라우저 끼워팔기브라우저 끼워팔기란 당시 마이크로소프트가 자신들의 핵심 운영체제인 윈도에 익스플로러를 통합해서 판매한 방식을 말한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가 1997년 10월 인터넷 익스플로러 4.0을 발표할 때까지만 해도 익스플로러의 시장 점유율은 18%에 지나지 않았다. 브라우저 시장 점유율 72%의 강자는 단연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였다. 하지만 시장 경쟁에서 영원한 절대 강자는 없는 법이다.마이크로소프트는 ‘브라우저 끼워팔기’라는 공격적인 전략을 펼치며 ‘브라우저 전쟁’의 신호탄을 쏘았고, 그 덕분에 시장 점유율을 완벽하게 뒤집어놓았다. 컴퓨터 사용자들은 윈도를 설치하면서 자동으로 설치되는 익스플로러를 이용하게 됐고, 자연히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를 다운받아 쓰는 사용자가 줄어들었다. 그 결과 넷스케이프는 시장에서 마이크로소프트에 참패를 당했고, 독자적인 회사를 운영하기 어려워졌다. 마침내 1998년, 넷스케이프는 아메리카 온라인이라는 PC통신업체에 42억달러에 매각됐다.미국 법무부의 제재그러자 미 법무부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제재의 칼을 뽑아들었다. 그것이 바로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를 반독점법 위반으로 기소한 사건이다. 마이크로소프트가 브라우저 끼워팔기를 통해 경쟁 기업이던 넷스케이프를 시장에서 퇴출시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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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강호동, 천하장사에서 국민 MC로 제2 전성기…"인생은 길고 직업은 많다"…도전정신 가져야
강호동은 체육과 방송, 두 분야에서 연이어 한국 최고의 위치에 오른 사람이다. 각각 천하장사 타이틀과 연예대상 타이틀을 차지함으로써 남들은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성공을 전혀 다른 분야에서 두 번이나 이뤘다.강호동과 이경규연예계에 입문하기 전 씨름 선수로 활약한 강호동은 열여덟 살의 나이에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모래판에서 그가 남긴 업적은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로 씨름계의 전설인 이만기에 버금간다.운동을 그만둔 뒤에 그는 개그맨 이경규와의 인연으로 연예계에 진출한 최초의 사례였기에 대중의 더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연예계에 입문한 뒤 지상파 방송 3사의 연예대상만 다섯 차례 수상함으로써 자신의 진가를 입증했다. 인생 2막을 화려하게 열며 다시 한 번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 것이다.아무리 인생에서 우여곡절이 많아도 한 사람이 이처럼 숱하게 직업을 바꾸는 일은 흔치 않다. 하지만 두세 세대로 대상의 폭을 넓히면 대부분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특히 선진국에서 이런 현상들이 두드러지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도 위와 같은 산업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스스로 교육하라강호동은 잘나가는 씨름 선수에서 개그맨으로 매우 성공적으로 직업을 바꾼 경우다. 앞으로는 강호동과 같은 사례가 늘어날 것이다.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는 것처럼 개인도 자신의 일과 경력을 일평생 끊임없이 구조조정하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오늘날 삼성은 세계적인 전자업체로 유명하지만 원래는 설탕을 만드는 회사에서 시작했다. 현대도 건설사를 모태로 출발했지만 오늘날엔 자동차가 그룹의 중심이다. 한국 회사들만 그런 게 아니다. 휴대폰으로 한때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