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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기업가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세상은 어떨까?…소설 《아틀라스》는 자유·소유 의미 깨우쳐주죠

    경제 관련 서적이나 기사를 보다 보면 ‘그린스펀 효과’란 용어를 접한다. 그린스펀 효과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의 영향력을 지칭하는 용어다. 그린스펀은 1987년부터 2006년까지 네 차례 연임하며, 무려 20년 동안 미국 통화정책의 수장을 맡았다. 그린스펀에게는 ‘미국의 경제 대통령, 미국 경제의 조타수, 통화정책의 신의 손’ 등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청년 그린스펀이 푹 빠진 소설Fed 의장으로 그린스펀을 처음 발탁한 사람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다. 그 뒤로 조지 H W 부시,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차례로 그린스펀을 의장으로 삼았다. 그러다 보니 그린스펀은 무려 네 번 연임하는 기록을 세웠다.그린스펀이 미국 경제의 수장을 20년 동안 할 수 있었던 까닭은 미국의 장기 호황을 이끌어내며 많은 사람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얻은 덕분이다.알고 보면 그린스펀은 늦깎이 경제학자다. 그린스펀은 젊은 시절 떠돌이 악사로 활동하며 동료들 세금 문제를 조언해 주는 등 평범한 일상을 보냈다. 실제로 그린스펀이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때는 1977년으로, 당시 그의 나이 51세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미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를 움직인 그린스펀이 한때 소설가 문하생이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는 젊은 시절 한 소설가로부터 엄청난 영향을 받은 바 있다.1950년대 그린스펀은 풋풋한 20대였다. 당시 그린스펀은 소설가 아인 랜드(Ayn Rand)의 뉴욕 친목회 일원이었다. 랜드는 소설, 극작, 영화 등에서 두루 활동했으며 대하소설 《아틀라스》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랜드는 죽기 전까지 약 30년 동안 그린스펀의 친구이자 멘토, 정신적 스승이

  • 경제 기타

    기업 성공

    사람들은 텃밭에서 길러 먹어도 되는 농산물을 사서 먹고, 나무를 가져다 직접 가구를 만들어 써도 되는데 굳이 시장에서 사다가 쓴다. 왜 자신이 필요한 것을 기업을 통해 해결할까? 자신이 직접 만드는 것보다 더 싸고 품질 좋은 제품을 시장을 통해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자신이 더 잘 만들 수 있다 하더라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유는 그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 시간에 자신은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분야에 기여하는 것이 모두에게 이익이기 때문이다.농사를 직접 짓지 않는 이유이처럼 사람들이 더 나은 경제 행위를 하기 위해 만든 문명의 이기(利器)가 바로 기업이다. 기업이란 사람들이 연합해서 경제적으로 활동하는 조직이다. 이 기업을 통해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더 빠르게, 많이, 잘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상상만 하던 물건까지 현실화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불과 50년 전만 해도 누가 전화기를 들고 걸어 다니며 통화도 하고, 인터넷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겠는가.기업이 시장 경쟁에서 효율적인 방식이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고도화되고 발전하면서 시장을 주도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협동조합보다는 주식회사가, 가내 수공업이나 자영업보다는 대기업이 경쟁의 주체가 된 것이다.살아남는 기업이 성공한 기업그렇다고 모든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아니다. 각자 경제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한 기업만이 살아남았다. 따라서 살아남은 기업은 곧 성공한 기업이고, 브랜드로 명성을 얻은 기업이 성공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가 되었다.기업의 목표, 즉 비전이란 무엇일까? 새로운 사업 방식을 찾아내 소비자들이 감동할 정도의 최고 제품을 판매하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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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프라 윈프리와 브랜드

    폐지될 토크쇼 살리다이처럼 윈프리는 화려한 성공을 거뒀지만 그의 유년 시절은 몹시 불행했다. 아주 가난한 10대 미혼모의 딸로 태어난 윈프리는 아홉 살 때 사촌에게 강간당했고 열네 살 때 임신해 조산아를 낳았다. 그렇게 낳은 딸은 태어난 지 2주 만에 죽고 말았다. 한때 마약에 손대기도 했고 자살도 생각하는 등 그의 10대는 불우한 미국 흑인 극빈층의 삶이었다.윈프리가 다른 극빈층 흑인들과 달랐던 건, 그는 주어진 삶의 조건에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빛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고, 고교 시절부터 지역의 라디오 방송국에서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다. 그러던 중 서른 살에 시카고의 한 지역 방송사에서 토크쇼 진행자 자리를 얻었다. 윈프리가 맡은 토크쇼는 낮은 시청률로 폐지가 임박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불과 한 달 만에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달성했고 3년 뒤 토크 쇼의 명칭을 자신의 이름을 딴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꿨다. 그렇게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그녀의 성공 신화가 시작됐다.브랜드는 사랑받는다브랜드는 모든 이에게 사랑받는다. 스타벅스의 커피는 동네 커피 가게 커피보다 훨씬 비싸지만 사람들은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신다. 아이폰은 비슷한 성능의 다른 스마트폰에 비해 비싸지만 사람들은 아이폰을 즐겨 사용한다.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고 스마트폰을 사용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스타벅스와 아이폰이라고 불리는 무형의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이다.윈프리는 자신의 이름에 투자하는 일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임을 일찍부터 알았다. 윈프리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토크쇼를 시작한 건 그의 나이 서른세 살일 때다. 자신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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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부하기 좋은 환경

    예전보다 한국의 기부 문화가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데는 유명 연예인들의 기부 활동이 한몫했다. 차인표·신애라 부부, 최수종·하희라 부부, 션·정혜영 부부 등이 대표적이다. 차인표·신애라 부부가 활발히 활동 중인 단체 ‘컴패션’은 1952년 한국의 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시작됐다. 이처럼 전쟁으로 빈곤에 빠진 한국을 돕기 위해 많은 기부단체가 생겨났다. 물론 지금은 개개인의 기부 활동뿐만 아니라 기업의 기부 및 사회공헌 활동도 많이 활발해졌다.연예인 부부의 기부개인의 자유와 창의가 존중되는 사회에서 경제 질서의 기본은 경쟁이며, 경쟁은 국민의 복지 향상에 기여하게 된다. 하지만 경쟁에는 상대가 존재하고 승자와 패자가 필연적으로 나뉜다. 따라서 경쟁의 규칙은 공정해야 한다. 승리자는 거만하지 않고 겸손해야 하며 자신과 경쟁한 상대방을 존경하고 배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경쟁의 가치는 확산되고 경쟁이 지속 가능한 환경이 조성된다.작든 크든 모든 경제적 부는 경쟁을 통해 얻게 된다. 부를 획득한 이들은 자신이 누리는 풍요에 책임감을 가진다. 경쟁이 복지 향상의 기회가 된다는 점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려고 경쟁에 참여하는 것이 바로 국민 전체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일이며, 부자가 되는 것은 노력과 운의 결과인 것이다. 결국 그 결실을 기부하는 것은 국민 전체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새로운 경쟁의 기회를 창출하게 된다.사회 환원은 자발적이어야기업의 기부 활동은 개인의 기부 활동만큼이나 중요하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이윤을 남긴 기업들은 기부 활동을 통해 자신들이 얻은 부를 다시금 사회에 환원한다. 더욱이 기부 같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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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선지와 비단길 경영

    동서양 최초의 대결이 페르시아 전쟁이었다면 서아시아와 동아시아 간 최초의 대결은 탈라스 전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전투의 주인공은 고구려 유민의 후예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고선지다. 그의 아버지가 고구려 사람이었다고 하니 고선지는 요즘으로 치면 고구려인 2세쯤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고선지와 탈라스 전투아버지가 고구려 유민이었다고는 하나 고선지 본인은 당나라에서 태어나 당나라에 충성한 군인이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고구려와는 별 관계가 없다. 하지만 중국의 역사서인 『구당서』와 『신당서』 고선지전에 그를 분명히 고구려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고 『자치통감』에는 동료 장군들로부터 “개똥 같은 고구려 놈”이라는 모욕까지 당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걸로 봐 망국 유민의 삶이 그다지 평탄하진 않았던 듯하다.고선지는 당나라의 서역 방면 절도사였다. 절도사는 오늘날 지방군 총사령관쯤 되는 자리다. 당나라는 절도사로 흥하고 절도사로 망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절도사의 역할이 중요한데 정복된 이민족의 후예에게 그런 자리가 돌아간 걸 보면 고선지의 재능이 만만치 않았음을 보여준다.오늘날 세계사 시간에는 탈라스 전투에 대해 꽤 중요하게 다루지만 정작 당시의 전투 규모로는 그리 큰 싸움은 아니었다고 한다. 당나라 사람들도 탈라스 전투의 결과를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진 않았던 모양이다. 탈라스에서의 패배에도 고선지는 별다른 문책을 받지 않았고 중앙정부로 복귀해 고위직을 지냈다는 게 그 방증이다. 하지만 이 전투의 후폭풍은 동시대 당나라 사람들의 생각만큼 간단치 않았다.비단길과 국력비단길은 동서양의 특산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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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

    로빈 후드는 영국 민담에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이다. 탁월한 활 솜씨와 리더십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고, 무리를 형성해 숲속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그리고 부유한 귀족을 상대로 도둑질을 일삼았다. 그런데 중세의 기록을 살펴보면 로빈 후드를 의롭거나 정정당당하게만 그려놓지는 않았다.로빈 후드는 불법조직일 뿐“최근 백성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셔우드 숲과 같이 잉글랜드의 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로빈 후드라 불리는 무법자가 무리를 이끌고 도둑질을 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고 룩스포드는 밝히고 있다.로빈 후드는 꽤나 오랫동안 무법자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민담에서는 로빈 후드를 ‘탐욕스러운 귀족의 재산을 빼앗아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의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백성을 돌보지 않는 부패한 귀족(정부)에 대한 대안인 듯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긍정적 이미지와 전혀 다른 ‘무법자’라는 평가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로빈 후드가 이끄는 무리의 특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다.로빈 후드는 요즘 말로 표현하면 사실상 ‘비합법적 폭력 조직’을 이끄는 수장이나 다름없다. 로빈 후드의 무리는 어떠한 원칙도, 법적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로빈 후드가 무리의 수장으로서 누리는 권한 역시 마찬가지다. 즉 로빈 후드나 그가 이끄는 무리는 힘에 의거한 조직에 지나지 않으며, 이것은 근대적 의미에서 법의 테두리 밖에 존재하는 폭력 조직과 특성이 상당히 유사하다.로빈 후드와 정부의 차이그렇기에 로빈 후드와 그 무리는 정부 조직과 엄연한 차이를 가진다. 정부는 법에 기반해 통치활동을 하는 조직이다. 쉽게 말하자면,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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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스로 진화하는 자본주의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아테네는 정치적으로는 직접 민주주의를, 사회적으로는 경제적 풍요를, 문화적으로는 뛰어난 학문과 예술의 성취를 이루어내며 최고의 도시국가이자 그리스 문명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 이와 같은 아테네의 번영에는 아테네 특유의 광장 문화가 있었으며 바로 그 중심에 아고라가 있었다.그리스 민주주의와 아고라아고라는 본디 아테네의 중앙시장으로 그 어원은 ‘시장에 나오다’, ‘사다’ 등의 의미를 지니는 ‘아고라조’이다. 마치 우리네 전통시장처럼 아고라는 다양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로 언제나 북적북적 활기가 넘쳤다.또한, 아고라는 단순한 시장기능뿐만 아니라 아테네 시민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생활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운동 경기, 정치 집회, 연극 공연, 종교 축제, 시민 재판, 철학 토론 등 다양한 행사와 공공 모임이 아고라에서 열렸다. 아테네 시민들은 아고라에 모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정치·사회적 논의를 하기도 했으며, 시민재판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처럼 아고라는 마켓플레이스 이상의 역할, 즉 다양한 민회의 장으로 아테네 정치·경제·사회·문화 발전을 이끌며 그리스의 광장 문화를 주도했다.고대 아테네의 아고라뿐만이 아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문명의 발전은 언제나 시장의 발달과 함께해 왔다. 5000여 년 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문자가 발명된 까닭도 경제 정보를 기록하는 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이고, 수학이 창안된 까닭도 상거래에서 각종 비용과 가격을 셈하기 위해서였다.고대 중국과 서역을 연결하던 비단길은 또 어떠한가. 비단길은 비단을 포함한 칠기, 도자기,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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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직이 최고의 자산

    사람들은 좋았던 기억을 곱씹으며 행복에 젖기보다는 나빴던 기억을 담아둔 채 두고두고 상처받는 일이 더 많다. 그래서 대개 사람들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을 더 크게 생각하고, 도움받은 일보다 상처받은 일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정직하면 손해본다?“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말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정직한 행동으로 이익을 얻은 경험보다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손해 본 경험을 더 선명하게, 더 오래 기억하기 때문에 정직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또 남을 속이는 방법으로 얻는 이익은 대부분 눈앞에 쉽게 나타나지만, 그로 인해 얻는 손해는 곧바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정직한 행동으로 얻는 이익은 금세 나타나지 않지만, 정직한 행동으로 야기되는 손해는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직하지 않은 방법으로 성공하는 사람들이 정직한 방법으로 성공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하지만 부실공사나 사기, 뇌물수수, 장부 조작 등 정직하지 않은 방법이나 행동들은 끝내 탄로 나기 마련이고, 한 번 잃어버린 신용은 원래대로 회복하기 어렵다. 또한 정직하지 못한 행동이 탄로 나거나, 신용을 잃게 돼 파생하는 손실은 부정직한 방법으로 얻은 이익보다 비교도 못할 만큼 막대하다. 그리스가 빚더미에 오르며 재정 파탄에 허덕이게 된 것도 그런 사실을 잘 뒷받침해 준다.그리스 정치인의 부정직과거 그리스 정치인들은 총선을 치를 때마다 복지 증진을 주요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며 수십 년 동안 실업 문제와 복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막대한 재정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그리스는 급격한 긴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