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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제 기타

    1년간의 생글기자 활동을 마치며

    우리는 지금, 역할에 대한 명확한 목표 의식이 희미해지는 사회 속 자신에게 질문해야한다, “나는 혹시 그동안 제자리만 걷지 않았는가지난해 7월 23일은 고교 재학 3년 중 가장 의미 있었던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자 동시에 학생만이 정보를 얻어가지 않고 남녀노소 불구하고 유익하게 읽을 수 있는 기사를 쓰겠다고 다짐한 날이었다. 첫 기사는 인터뷰 기사로 출발했다. 7월 26일 일본 가나가와현에서 발생한 장애인 시설 침입 및 장애인 살해 사건을 보고 나날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복지 문제에 관해 방향을 제시하고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라는 주제의 글을 쓰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여수의 한 사회복지법인 보육원의 관계자를 사전 허락을 맡고 찾아 봬 복지의 개념과 사회적 약자를 위한 현 제도의 개선책 등을 여쭤보았다. 그 후에도 며칠을 복지 정의에 대한 글을 읽고 메일로 질문을 하는 등 최선을 다해 완벽한 기사를 쓰고자 노력했다. 나름 학생 기자로서의 목표 의식과 책임감을 갖게 된 7월의 마지막 주였다. 또한,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과제를 해결하고 글을 써 가는데 핵심적인 목표 의식을 갖도록 했던 순간이었다.지난 6월 13일, 연세대학교에서 한 대학원생이 제조한 사제 폭탄이 터진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사건이 발생하고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인터넷엔 사건의 피해자인 교수의 학과를 건축공학과 또는 건축학과라고 작성한 기사가 만연했다. 하지만, 실제 해당 교수는 기계공학과에 재직 중이었다. 취재 사실의 확인 없이 신속만을 강조해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정보 전달이 이루어졌고 심지어 타 신문사의 기사를 복사 붙여넣기 식으로 사용했다. 더불어 최근

  • 경제 기타

    형식 보다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어야 한다

    국가에서 행하는 모든 것들이 서로간의 소통을 통해 만들어졌다면 얼마나 행복한 공간이자 국가가 되었을까 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계절이란 신기하게도 우리들로 하여금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인간은 지혜로울 만큼 놀라운 적응력으로 자신의 생활을 즐긴다. 나는 아버지와 함께 얼마 전에 서울역 고가공원 ‘서울7017’을 함께 가보았다. 평소 차량으로만 지나다니던 고가교를 직접 걷는 기분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 과 기대감으로 두근거렸다.내가 상상했던 만큼의 전경은 아니었지만, 아름답게 가꿔진 꽃들과 유리바닥 밑으로 지나다니는 차량들을 보면서 매연으로만 가득 찼던 이곳이 이렇듯 생각을 바꾸면 아름다운 곳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내친김에 청계천도 가보았다. 아버지께서는, “청계천은 ‘대한민국 경제개발의 한 주역이었던 곳이었으며 많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이 묻어있는곳’” 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이제 이곳은 누구나 가까운 곳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고 평화로움까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 되어 있었다.물론 이러한 기존 형식을 탈피하는 공간은 우리 안산에도 만들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상록구 주변에는 그간 수십㎞ 정도 방치되어 관리가 잘 안된 하천이 있었다. 그런데 불과 3년전 수인선이 연장된다는 결정과 함께 철로가 지하에 매설이 되며 ‘방치됐던 하천’이 ‘지상공원’으로 변화된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며 드디어 올해 공원의 모습이 완성되었다. 지하에는 시민들의 발 역할을 하는 지하철이 다니고 지상에는 각종 운동시설과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아름다운 조경이 만들어

  • 경제 기타

    아픈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교내 소녀상 세우기’ 운동은 2015년 겨울 이화여고 역사동아리인 ‘주먹도끼’에서 시작하였다.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인이 자행한 강제인력수탈 중의 하나인 ‘위안부’는 과거엔 정신대를 종군위안부라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종군위안부라는 뜻에는 ‘종군기자’처럼 자발적으로 군을 따라갔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나아가 일본 정부가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도 함께 숨겨져 있다. 따라서 기존의 종군위안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최근에는 한-일 위안부 합의 재검토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는 와중에 아베 일본총리는 절대 불가능하며, 한국은 기존 합의를 존중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엔 고문방지 위원회가 ‘충분하지 않은 합의’라고 판단하면서 재협상에 대한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이러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수요집회 개최, 마리몬드와 희움 브랜드,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교내 소녀상 세우기 운동 등이있다. 이중 교내 소녀상 세우기 운동이라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교내 소녀상 세우기 운동은 2015년 겨울 이화여고 역사동아리인 ‘주먹도끼’에서 시작했다. ‘대한민국 100개의 고등학교에 100개의 소녀상 건립운동’을 지난 5월 18일 퇴계원고등학교에서 함께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반크’ 라는 역사자율동아리에서 주도적으로 모금활동과 건립활동을 했다. 이러한 마음가짐에 감동받은 많은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하루빨리 작은 소녀상이 건립될 수 있도록 모금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덕분에 작은 소녀상을 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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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脫)한국 현상, 한국의 인재들이 새어나가고 있다

    요즘의 20~40대들이 조금 더 나은 근무환경과 안정적인 임금을 보장받기 위해 세계 각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전문적인 분야에서 종사중인 한국인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른바 탈(脫)한국에 동참하고 있다. 끝을 모르고 나아가던 한국의 경제는 어느 수준에 도달하여 그 성장세가 점점 둔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이러한 상황은 각 직업군의 임금을 어느 정도 규격화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임금은 규격화되고 있지만 초과근무 시간은 많아지고 있다는 데에 있다. 요즘의 20~40대들이 조금 더 나은 근무환경과 안정적인 임금을 보장받기 위해 세계 각지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 이미 해외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수도 상당하다.의사로 예를 들어 보면 환자를 건강보다는 매출에 연연하는 분위기와 끊임없는 경쟁과 과도한 업무에 염증을 느낀 의사들이 일본으로 떠나고 있고 그 수치는 점점 상승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보건복지부에 해당하는 일본 후생노동성의 2014년 자료에 따르면, 일본에서 의사로 활동하기 위한 국시를 치른 외국인 중 15%는 한국인들로, 중국에 이어 2번째로 많다. 이들이 한국을 떠나는 이유는 꼭 돈만은 아니다. 오히려 보건복지부와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자료를 비교해보면 국내의 의사들이 약 49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더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수치를 종합해 보았을 때 급여의 차이가 탈 한국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분석되어진다. 오히려 이들은 삶의 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가족들과 혹은 친구들과 밤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나라로 떠나고 있는 것이다.정부 주도의 일자리 확충이 연일 이슈가 되고 있다.새로운 일자리를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자리의 질 또한 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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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은 한국경제라는 배의 키를 쥐고 있다

    한국은행은 한국경제라는 배의 키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즉, 한국은행의 정책 하나하나가 한국 경제를 반영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한국은행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삼고 여러 정책을 실시한다. 첫째, 화폐를 발행한다. 지폐 4종류(1000, 5000, 10000, 50000)와 동전 6종류(1, 5, 10, 50, 100, 500)를 현재 발행하고 있다. 한국조폐공사에 의뢰하여 만든 지폐를 보관하고 있다가 시중에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시중의 화폐 중에 훼손된 화폐를 새로 교환해 주기도 한다. 둘째, 통화신용정책을 펼친다. 통화신용정책이란 정책을 통해 돈의 양이나 금리를 조절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또, 한국은행 총재를 포함한 7인의 금융통화위원들은 매월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기준금리를 결정하면 공개시장조작, 지급준비율, 재할인율 조정을 통해 시중금리를 기준금리와 비슷하게 조절한다. 셋째, 국고금을 담당한다. 국민이 내는 세금을 국고금으로 받아두었다가 정부가 필요로 할 때 자금을 내주거나, 정부가 자금을 필요로 할 때 돈을 빌려주기도 한다.외화는 다른 나라와의 무역 등의 이유로 적정량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한국은행이 외화의 양을 조절하여 국내 외화자산을 관리한다. 빚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어 고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와 같은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게 경제(금융)교육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은행은 경제교육을 통해 이를 예방한다. 나아가 한국은행의 정책들이 국민들에게 쉽게 적용되어 정책효과를 잘 나타내기 위해 경제교육을 실시하기도 한다.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했다.

  • 경제 기타

    해외 문화교류 프로그램 '나는 국가대표다!'

    해외에 파견된 학생들은 직접 준비한 태권무와 케이팝(K-pop) 공연 등을 선보이며 우리나라의 문화를 전파시킨다.여성가족부와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하 KYWA)에서 주관하는 대한민국 청소년 국제교류프로그램은 매년 각 지역의 청소년들을 선발하여 국가 간 청소년교류와 청소년 해외자원봉사 등의 참여 기회를 얻도록 해 준다.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이 국제 감각, 세계시민의식, 글로벌 리더십을 함양할 수 있도록 마련된 사업이다. 오늘은 해외 문화 교류활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나는 국가대표다’를 소개하려고 한다.본 프로그램은 청소년들이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로 해외에 파견되어 외교관 역할을 해내는 데 있다. 활동은 단순한 문화 교류를 넘어서, 한 국가의 대표가 되어 해외로 파견되어 대한민국을 알리고 서로의 문화를 교류하며 세계의 다양성 기여를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는 데 의의가 있다. 서류와 면접심사를 거쳐 선발된 학생들은 3차례의 사전교육을 거쳐 팀 이름을 짜고, 스스로 교류를 위한 준비과정을 거친다. 슬로건과 활동 티셔츠 디자인부터 각종 필요한 물품까지 직접 알아보고 협찬을 받아내는 등 청소년들이 교류활동의 주체가 되어 활동에 참여한다. 해외에 파견된 학생들은 직접 준비한 태권무와 케이팝(K-pop) 공연 등을 선보이며 우리나라의 문화를 전파시킨다. 그뿐만 아니라 문화탐방, 홈스테이 등을 통해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자연스레 습득하고 교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나는 국가대표다!” 2016년 국가 간 청소년 교류 활동에서 ‘투모로코우’ 팀으로 참가했던 최유진(삼호고 3년) 양에게 참여 소감을 물어보았다. 그녀는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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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꿈들을 담은 '다채로운 지식의 식탁'을 읽고

    "작가들만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누구나 본인만의 특별한 경험, 그리고 지혜만이 있다면 쓸 수 있다는 것이다."이제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특별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노하우만 있다면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 과거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여겼던 이러한 현상들의 첫 스타트를 끊은 책이 있다. 바로 <다채로운 지식의 식탁>이다. 세움스쿨 대표 장진우, 연세대 국문과에 재학 중인 장두원씨 외 17명의 공동저자가 한 자리에 모였다. 성공을 꿈꾸는 사람들은 그 목표를 위해 달려간다. 성공을 꿈꾼다고 남들보다 뛰어나고 대단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열심히 임하고 그 후 그들이 얻은 특별한 지혜나 지식들이 생길 것이다.이 책은 각기 다른 분야 및 업종에서 종사하는 19명의 사람들이 모여 그들이 직접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나 경험을 하면서 얻은 지혜들을 한 책에 담아놓았다. “위대한 사람은 기회가 없다고 원망하지 않는다.” 미국의 목사이자 사상가인 랄프 왈도 에머슨이 한 말이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는 기회를 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다. 그만큼 주어진 삶에 내가 어떻게 임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척도가 바뀌는 것이다. <다채로운 지식의 식탁>의 저자들은 독자들을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소통의 공간을 마련했다.작가들만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시대는 지났다. 누구나 본인만의 특별한 경험, 그리고 지혜가 있으면 책을 쓸 수 있는 시대다. 개성과 색깔이 있다면 무한한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좌절한 영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불어넣는 작가

  • 생글기자

    송(宋)대 산업혁명 이후 중국 경제로 보는 혁신의 필요성

    "송대 발전의 기반이 된 농촌의 소규모 생산 방식은 상업자본주의나 산업자본주의로 발아하지 못했다."약 300년의 역사를 가진 송나라는 제2의 산업혁명이라 불릴 만큼 산업과 상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농업에서는 개간과 집약 농법의 발전, 소농 경영 등을 바탕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다. 자연스레 총인구도 1억 명을 훌쩍 넘었고 북송의 수도 카이펑을 포함해 인구 백만 명 이상의 대도시도 생겼다. 농업과 광업의 생산 확대는 금속, 요업, 제지, 염색 등 각 공업 분야의 융성도 촉진해 새로운 발명과 기술 개발이 이뤄졌다. 산업의 발달은 곧 상업 발달을 견인했다. 판매대리상과 객상의 출현, 그리고 원격지 상업 성행, 상품 및 화폐경제의 발달은 거꾸로 생산발전을 촉진하며 중국 최대의 성장을 이뤘다. 하지만 송대 이후 약 500년 동안의 중국은 경제 둔화를 겪었다.송대 발전의 기반이 된 농촌의 소규모 생산 방식은 15세기 유럽 농촌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 초기의 원산업화와 비슷했지만, 기본적인 경제 메커니즘만이 작동했고 상업자본주의나 산업자본주의로 발아하지 못했다. 이런 명·청대 타성은 송대 산업혁명 시작으로부터 발생했는데, 이는 송대 농업의 발전이 기존의 생산요소를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는 측면에서 팽창하는 인구를 수용하는 데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세기에 결국 맬서스적 한계 및 우수한 서양 기술과의 경쟁이라는 두 가지 문턱에 맞닥뜨리게 됐다.명·청대는 송대의 세계적인 위상과 기술력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정체시켰다. 중국의 긴 역사에서 볼 수 있듯 지금 우리 사회에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분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