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敬而遠之 (경이원지)

    ▶ 한자풀이 敬: 공경할 경 而: 어조사 이 遠: 멀 원 之: 갈 지 존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않는다 겉으로는 공경하되 속은 멀리하다 - 공자는 평소 귀신이나 죽음, 괴이한 일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제자 자로가 귀신 섬기는 일을 묻자 공자가 답했다. “사람도 제대로 섬기지 못하거늘 어찌 귀신을 섬길 수 있겠느냐?(未能事人 焉能事鬼)” 자로가 다시 공자에게 물었다. “감히 여쭙건대 죽음이란 무엇입니까?” 공자가 다시 답했다. “삶도 아직 이해하지 못하거늘,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未知生 焉知死)” 인문주의적 전통을 계승한 공자는 이처럼 귀신에 대해 명확한 한계를 설정했다. 공자의 이런 생각은 다음 말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백성이 의롭게 되는 일에 마음을 쏟고 귀신은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 지혜다.(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공자는 귀신의 존재를 명확히 부인하지 않았으나 그 존재를 강조하지도 않은 것이다. 한나라 유향(劉向)이 저술한 에 나오는 다음 대화에도 공자의 그런 입장이 잘 나타난다. 자공이 공자에게 ‘죽은 사람에게도 지각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공자는 “죽은 자에게 지각이 있다고 말하자니 효성스러운 자손이 생업에 방해되면서까지 장사에 몰두할까 염려되고, 지각이 없다고 말하자니 불효한 자손이 죽은 이를 유기하고 장사하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걸 알고 싶거든 기다리다 죽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가까이하지도 멀리하지도 않는다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도 함의가 비슷하다. ‘그 사람에 대해서는 불가근불가원을 원칙으로 해라. 너무 가까이해서 좋을 일이 없다’ 식으로 쓰인다. 겉으로 드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街談巷說 (가담항설)

    ▶한자풀이 街: 거리 가 談: 말씀 담 巷: 거리 항 說: 말씀 설 길거리나 항간에 떠도는 뜬소문 하찮은 이야기나 소문을 일컬음 - 반고(班固)는 후한 초기의 역사가이자 문학가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아 기전체 역사서인 를 편집했으며 등의 작품을 남겼다. 반고의 문학성은 타고난 것으로 보인다. 왕충(王充)은 후한시대 유물론자로, 공자 맹자 등 성인의 추앙을 반대해 비난도 받았지만 학문은 매우 깊었다. 왕충이 어느 날 반고의 등을 두드리며 “너는 후에 반드시 한나라 역사를 쓸 것이다”라고 했다. 이때 반고는 열세 살이었고 왕충은 반고보다 다섯 살 많은 열여덟 살이었다. 인재가 인재를 알아본 것이다. 명마도 백락(말의 최고 전문가)을 만나야 세상에 알려진다는 뜻으로, 재능 있는 사람도 그 재주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야 빛을 발한다는 백락일고(伯樂一顧)가 연상되는 일화다. 반고는 소설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소설(小說)은 패관(稗官: 민간에 나도는 풍설과 소문을 수집하던 말단 관원)으로부터 나왔으며, 가담항설(街談巷說)과 도청도설(道聽塗說)로 만들어졌다.” 가담항설(街談巷說)은 길거리에 떠도는 뜬소문으로, 하찮은 이야기를 이른다. 풍설(風說) 풍문(風聞)과 비슷한 말이다. 도청도설은 에 나오는 말로, 길에서 들은 이야기를 그 길에 흘려버린다는 뜻이다. 공자는 “길에서 들은 이야기를 길에서 옮기는 것은 덕을 버리는 짓이다(道聽而塗說 德之棄也)”라고 했다. 말과 관련된 고사성어는 많다. 설왕설래(說往說來)는 서로 변론을 주고받으며 옥신각신하거나 말과 말이 오가는 것을 이르며 마이동풍(馬耳東風)은 ‘말의 귀에 동풍(東風)’이라는 뜻으로,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騎虎之勢 (기호지세)

    ▶ 한자풀이 騎: 말 탈 기 虎: 범 호 之: 갈 지 勢: 형세 형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 중도에서 그만둘 수 없는 형세 - 독고(獨孤) 씨는 수나라 문제(文帝) 양견의 황후다. 독고 씨 아버지인 신(信)은 북주의 대사마였는데, 양견이 앞으로 크게 될 사람임을 알아보고 열네 살짜리 딸을 양견에게 줘 사위를 삼았다. 독고 씨는 결혼 당초 남편에게 첩의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맹세를 받았다고 하는데, 어찌나 질투가 심했던지 후궁에게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고, 그녀가 쉰 살로 죽을 때까지 후궁에게서는 한 명의 자식도 태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단 한 번 문제가 후궁의 미녀에게 손을 댄 일이 있었는데, 이것을 안 독고 씨는 문제가 조회에 나간 사이 그 미녀를 죽이고 말았다. 화가 치민 문제는 혼자 말을 타고 궁중을 뛰쳐나가 뒤쫓아온 신하들을 보며 “나는 명색이 천자(天子)인데 내가 하고 싶은 일도 할 수 없단 말인가?”라고 외치며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과거 북주(北周)의 선제(宣帝)가 죽고 양견이 나이 어린 정제(靜帝)를 업고 모든 일을 혼자 처리하고 있을 때, 독고 씨는 환관(宦官)을 시켜 남편 양견에게 이렇게 전하도록 했다. “큰일은 이미 기호지세(騎虎之勢)로 되고 말았소. 이제는 내려올 수도 없으니 최선을 다하시오.” 이 말에 힘을 얻은 양견은 결국 정제를 밀어내고 수나라 황제에 올랐다. 에 전해오는 이야기다. 기호지세(騎虎之勢)는 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라는 뜻으로, 중도에 그만둘 수 없는 형세를 이르는 말이다. 우리말 속담 ‘벌인춤’도 뜻이 비슷하다. 잘 추든 못 추든 추기를 시작했으니, 추는 데까지 출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달리는 말에서 뛰어내리면 더 큰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風聲鶴唳 (풍성학려)

    ▶ 한자풀이 風: 바람 풍 聲: 소리 성 鶴: 학 학 唳: 울 려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겁먹고 작은 일에도 매우 놀람을 비유 - 진나라 기록을 담은 역사서 사현재기(謝玄載記)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동진 효무제(孝武帝) 때의 일이다. 전진(前秦)의 3대 임금인 부견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동진을 공격해왔다. 동진에서는 재상 사안(謝安)이 동생 사석과 조카 사현에게 8만의 군사를 주고 나가 싸우게 했다. 양쪽 군대는 강을 마주 보는 수양(壽陽)에서 대치하고 있었는데, 부견은 동진의 진영이 질서정연하고 병사들이 용감한 것을 보고 휘하의 장군들에게 명령했다. “전군을 약간 후퇴시켰다가 적군이 강 한복판에 이르렀을 때 돌아서서 반격하라.” 그러나 이는 부견의 오산이었다. 일단 후퇴 길에 오른 전진군은 반격은커녕 멈춰 설 수조차 없었다. 후퇴를 개시하고 선봉군이 강을 건너 되돌아오기 시작하자, 후미의 전진군은 선봉군이 싸움에 패해 물러나는 것으로 오인하고 앞다퉈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무사히 강을 건넌 동진군은 사정없이 전진군을 들이쳤고, 대혼란에 빠진 전진군은 아군이 적군으로 보이는 혼란 속에서 서로를 짓밟으며 달아나다 물에 빠져 죽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겨우 목숨을 건진 남은 군사들은 갑옷을 벗어 던지고 밤을 새워 달아났는데, 얼마나 겁에 질렸던지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 소리(風聲鶴)’만 들려도 동진의 군사가 뒤쫓아온 줄 알고 도망가기 바빴다고 한다. 풍성학려(風聲鶴)는 바람 소리와 학의 울음소리라는 뜻으로, 겁을 먹고 아주 작은 일에도 매우 놀라는 것을 비유한다. 풍성학려가 청각적 착각의 두려움이라면, 적을 두려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口蜜腹劍 (구밀복검)

    ▶한자풀이 口: 입 구 蜜: 꿀 밀 腹: 배 복 劍: 칼 검 입에는 꿀을 바르고 배 속에는 칼을 품다 친한 척하면서 속으로 나쁜 마음을 품음 - 당나라 현종(玄宗)은 45년 치세의 초기에는 정치를 잘한 인물로 칭송받았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양귀비를 총애하며 주색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임보(李林甫)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환관(宦官)에게 뇌물을 바친 인연으로 왕비에 들러붙어 현종의 환심을 사 재상까지 됐다. 그는 황제의 비위만 맞추면서 절개가 곧은 신하의 충언이나 백성들의 간언(諫言)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한번은 비리를 탄핵하는 어사(御使)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는 명군(名君)이시오. 그러니 우리 신하들이 무슨 말을 아뢸 필요가 있겠소. 저 궁전 앞에 서 있는 말을 보시오. 어사도 저렇게 잠자코 계시오. 만일 쓸데없는 말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소.” 그의 서슬이 퍼러니 설령 직언하려는 선비라 할지라도 황제에게 접근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가 야밤에 서재에서 장고하면 그다음 날은 예외 없이 누군가가 주살(誅殺)됐다. 이처럼 재상 지위 19년 동안 온갖 권세를 휘둘렀으나 현종은 눈치채지 못했다. 안녹산(安祿山)도 그의 술수가 두려워 반란을 일으키지 못했다. 뒤에서는 많은 선비가 그를 욕했다. “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하고 억누르는 음험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이 있다(口蜜腹劍)’고 말한다.” 에 나오는 얘기로, 구밀복검(口蜜腹劍)은 겉으로는 친한 척하면서 속으로는 나쁜 마음을 품고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이임보가 죽자 양귀비의 일족인 양국충(楊國忠)이 재상이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平地風波 (평지풍파)

    ▶한자풀이 平: 평평할 평 地: 땅 지 風: 바람 풍 波: 물결 파 평평한 땅에 파도가 일다 잘되던 일에 분쟁을 일으킴 - 유우석(劉禹錫)은 당나라 중엽의 대표적 시인이다. 학식이 깊고 글 잘하는 인재를 뽑는 박학굉사과(博學宏詞科)에 급제해 화이난 절도사 두우(杜佑)의 막료(정책을 조언하는 참모)가 되었으나 정치 개혁 실패로 변방으로 전직되는 등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는 등이 있다. 그는 지방관으로 있으면서 농민의 생활 감정을 노래한 9수 중 첫수에서 이렇게 읊고 있다.구당은 시끄러이 열두 여울인데(懼塘十二灘) 사람들은 길이 예부터 어렵다고 말하네(人言道路古來難) 길게 한하는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지 않아서(長恨人心不如水) 예사로이 평지에 파란을 일으키네(等閑平地起波瀾) 칠언절구(한 구절이 일곱 글자로 된 절구)인 는 당시의 민가(民歌)를 바탕으로 지은 것으로, 유우석이 기주자사(夔州刺史)로 부임했을 때 민가에서 흥을 느껴 지은 시다. 구당이란 산은 양쯔강 상·중류에 있는 험하기로 유명한 삼협(三峽)의 하나로, 옛날부터 배로 여행하기가 몹시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는 세 산골의 어려운 뱃길을 오르내리던 뱃사람들 사이에서 불리던 비속한 뱃노래를 유우석이 점잖은 가사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구당에는 여울을 지나면 다시 여울이 나타나 열두 개의 여울이 줄지어 있어 물소리가 시끄럽다. 그러나 이 빠른 여울보다 더 한이 서린 사람의 마음은 물과 같지 않아서, 평지에 파란을 일으켜 세상사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은 바닥이 가파른 곳에서만 여울을 짓지만, 한이 있는 사람은 평지에서도 풍파를 일으켜 인생길을 어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敗軍之將 (패군지장)

    ▶ 한자풀이 敗: 질 패 軍: 군사 군 之: 갈 지 將: 장수 장 싸움에서 진 장수를 뜻하며 패한 자는 구차한 변명을 하지 않음 - ) 한고조를 도와 천하 통일의 대업을 이룬 한신이 한창 세력을 넓혀갈 무렵의 일이다. 당시 조나라 군대는 세력이 강해 용장이자 지장인 한신에게도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하지만 천하 통일을 위해 조나라 정복은 필수였기에 한신은 위험을 무릅쓰고 조나라로 가는 통로인 정경을 지나가야 했다. 그곳은 폭이 좁은 길이어서 조나라의 기습을 받으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한신은 첩자를 통해 조나라의 복병이 없음을 확인했고, 결국 협곡을 신속히 통과해 조나라와 싸워 대승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조나라에서는 이좌거라는 장수가 정경에서 기습할 것을 주장했으나 대장군 진여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습은 군자가 할 도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진여는 패했고, 이좌거는 한신의 군사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이좌거가 뛰어난 명장임을 알고 있던 한신은 군사들에게 그를 사로잡으라고 명했다. 이좌거가 끌려오자 한신이 극진히 대접하며 말했다. “나는 북으로 연나라, 동으로 제나라를 공격하고자 합니다. 좋은 계책을 알려주시오.” 그러자 이좌거가 답했다. “예로부터 ‘패장은 용기를 말할 수 없고(敗軍之將 不可以言勇), 망한 나라의 대부는 국가의 보존을 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찌 포로가 나라의 계책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한신이 다시 말했지요. “그건 그렇지 않소이다. 진여가 당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지금 당신과 나는 자리를 바꾸어 앉았을 것이오. 사양 말고 계책을 말씀해 주십시오.” 결국 이좌

  • 신동열의 고사성어 읽기

    치인설몽 (癡人說夢)

    ▶한자풀이 癡: 어리석을 치 人: 사람 인 說: 말씀 설 夢: 꿈 몽 바보에게 꿈 이야기를 들려주다 어리석은 사람이 허망한 말을 늘어놓음 - 고사성어는 세월이 흐르면서 원뜻이 바뀌는 경우가 잦다. 치인설몽(癡人說夢)도 그런 사례다. 남송(南宋)의 석혜홍(釋惠洪)이 지은 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당나라 고승인 승가(僧伽)가 양쯔강과 화이허강 유역에 있는 지금의 안후이성 근처를 여행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승가의 행동을 보고 어떤 사람이 이상히 여겨 “당신의 성이 무엇인가?”라고 묻자, 승가가 “성은 하씨다”라고 답했다. 다시 “어느 나라 사람인가?”라고 묻자 승가는 “하국 사람이다”라고 대답했다. 뒤에 승가가 죽은 뒤 당나라의 서도가 이옹(李邕)이 승가를 위해 비문을 썼는데, 승가가 장난삼아 한 대답인 줄 모르고 그의 전기에 ‘대사의 성은 하씨(何氏)이고, 하나라 사람(何國人)이다’라고 썼다. 승가가 농담으로 한 대답을 진실로 받아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석혜홍은 이옹의 어리석음에 대해 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이는 곧 이른바 어리석은 사람에게 꿈을 이야기한 것이다(此正所謂對癡人說夢耳). 이옹은 결국 꿈을 참인 줄 믿고 말았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치인설몽(癡人說夢)은 어리석은 사람이 꿈 이야기를 한다는 뜻으로, 바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의미도 없고 아무 소용도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라틴어로 말을 걸면 알아듣기나 하겠어? 완전 치인설몽이지’ 식으로 쓰면 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바보가 종작없이 지껄인다’는 의미로 주로 사용한다. ‘그의 말은 거의 치인설몽 수준이야’ 식으로 쓴다. 치인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