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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사업 중단 통보하던 날, 땅에서 기름 솟구쳤다
젊고 가난하고 외로운 남자가 있다. 대목장에서 일하는 그는 쉬는 시간이면 벽에 비스듬히 기대 폼을 잡는 것으로 우울과 불만을 해소하는 약간 ‘중 2’적인 캐릭터다. 종마를 사기 위해 도시로 나간 농장주가 말 대신 아름다운 여인과 함께 돌아왔을 때 남자는 그만 첫눈에 여자에게 반하고 만다. 그러나 이미 유부녀에다 무일푼이기까지 한 남자에게 여자는 너무나 먼 존재다. 남자에게 호의를 가진 농장주의 누나가 사망하면서 그에게 약간의 땅을 남겨주었을 때, 남의 땅이 자기 농장 안에 있는 것이 싫었던 농장주의 고가 매입 제의를 거절했을 때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 땅에서 홀로 시추를 시작했고 보상을 기약할 수 없는 지루한 노동 끝에 콸콸 석유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1956년에 개봉한 영화 ‘자이언트’의 스토리다. 삐딱한 청춘의 대명사 제임스 딘, 아프로디테의 강림 같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출연한 이 영화는 그러나 단지 영화일 뿐이다. 현실 세계에서 고물상 잡동사니 같은 장비로 나 홀로 시추를 해 석유를 퍼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석유가 땅에서 나온다고요?”1855년 예일대 화학 교수 실리만이 석유가 각기 다른 비등점에서 다양한 물질로 분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이어지는 질문은 두 가지였다. 다 좋은데 과연 충분한 석유가 존재하느냐, 있다면 어떻게 파낼 것이냐. 당시 사람들은 석유를 지하의 석탄층에서 떨어지는 기름방울로 인식했고, 석유를 얻는 방법은 당연히 땅을 파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리만 교수에게 연구 용역을 맡긴 투자 그룹의 리더 조지 비셀은 이미 동유럽에서 농부들이 수작업으로 땅을 파 등유 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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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이슈 찬반토론
대학등록금 통제, 계속해야 하나
한국에선 대학이 등록금을 마음대로 못 올린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연간 등록금 인상 한도가 묶여 있다. 직전 3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 이내가 법정 상한이다. 그나마 이만큼 올리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정부가 매년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이 정부 말을 따르지 않고 법정 상한까지 등록금을 올릴 순 있지만 이 경우 각종 정부 지원금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 그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등록금을 동결하는 대학이 많다. 이런 일이 올해로 벌써 17년째 계속되고 있다. 대학등록금을 이렇게 통제하는 게 맞는 걸까. [찬성] "마구잡이 인상 땐 학부모 부담"…"교육 불평등도 함께 커질 것"대학이 등록금을 마구잡이로 올리면 학부모와 학생이 감당하기 어렵다. 1989년 대학등록금 자율화 조치로 등록금 결정권이 대학에 넘어간 적이 있다. 당시 상당수 사립대가 등록금을 대폭 올리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됐다. 대학가에선 ‘반값 등록금’ 구호가 쏟아졌다. 정부가 대학등록금 자율화를 포기하고 등록금 인상 폭을 법에 못 박은 배경이다. 대학등록금 통제가 사라지고 등록금 자율화로 복귀하면 과거와 같은 등록금 폭등이 재연될 수 있다. 등록금 억제 고삐가 사라지면 교육 불평등이 커질 수도 있다. 과거에 비해 낮아지긴 했지만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여전히 70%대에 달한다. 높은 교육열은 그동안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는 핵심 통로도 교육이었다. 등록금이 대폭 인상되면 저소득층에선 값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꾸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 교육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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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합리적 기대'해도 완전한 미래 예측은 어려워
새고전학파는 고전학파의 전통을 따라 완전경쟁적인 시장구조와 신축적 가격을 가정해 거시경제의 움직임을 설명한다. 신케인스학파는 케인스의 전통을 따라 불완전한 시장구조를 바탕으로 임금과 가격의 경직성을 규명하고 거시경제 현상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한다. 케인스학파의 핵심 가정은 임금과 가격이 경직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가격변수가 왜 경직적인지를 설명하지 못하고 단순하게 가정으로만 제시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1980년대 들어서 새로운 연구가 시도됐다. 이들을 기존 케인스학파와 구분하기 위해 ‘신케인스학파(New Keynesian Economics)’라 부른다. New Keynesian Economics를 ‘새케인스학파’로도 번역하는데, 이는 새고전학파와 대립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신케인스학파의 특징새고전학파는 현실 세계의 정보가 완전하지 않아 미래가 불확실할 수 있지만 합리적 기대가 반복되면 불확실성이 점점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신케인스학파는 합리적 기대를 한다고 해도 정보가 완전해지지 않아 미래는 계속 불확실한 상태로 남게 돼 정확한 예측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합리적 기대와 미래에 대해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것 사이에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이다. 합리적 기대에도 불확실한 미래, 현실의 불완전 경쟁시장을 바탕으로 기업과 가계는 최적화 행동을 한다. 그 결과 가격과 임금의 경직성이 나타난다. 임금과 가격의 경직성현실에서 시장은 완전경쟁시장이 아니다. 합리적 기대로 임금과 가격이 신축적으로 변동함으로써 시장이 언제나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예를 들어 상품가격이 10%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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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0년간 벼슬하며 존경받은 비결 [고두현의 아침 시편]
면앙정가(仰亭歌) 인간 세상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없다.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바람도 쐬려 하고 달도 맞으려 하니밤일랑 언제 줍고 고기는 언제 낚고사립문은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은 누가 쓸까.아침이 부족하니 저녁이라 싫겠는가.오늘이 부족하니 내일이라 넉넉하랴.이 산에 앉아 보고 저 산에 걸어 보니번거로운 마음에 버릴 일이 아주 없다.쉴 사이 없거든 길이나 전하리라.다만 푸른 지팡이만 다 무디어 가는구나.(부분)*송순(宋純, 1493~1582): 조선 중기 문신.송순(宋純)의 ‘면앙정가’는 그가 41세에 관직에서 잠시 물러나 고향 전남 담양에 내려와서 지은 가사(歌辭)입니다. ‘면앙정(仰亭)’은 그가 지은 정자 이름이면서 호(號)이기도 하지요.이 작품은 “반복·점층·대구법 등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살리고 경치 또한 실감 나게 묘사한 절창”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첫 부분의 서사(序詞)에서는 면앙정이 있는 제월봉의 모습을 묘사했고, 두 번째 부분인 본사(本詞)에서는 면앙정에서 바라본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죠.사립문은 누가 닫고 떨어진 꽃은…본사의 앞부분에서 시선을 먼 곳으로 점차 이동하며 근·원경, 뒷부분에선 면앙정의 사계 풍경을 그렸습니다. 마지막 결사(結詞) 부분은 “이렇게 지내는 것도 모두 역군은(亦君恩, 역시 임금의 은혜)이샷다”라며 유학자로서의 충절을 표하고 있군요.위에 인용한 부분은 ‘면앙정가’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구절입니다. 우리말의 묘미를 절묘하게 살려냈다는 평을 듣지요. 속세의 번거로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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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경제체력 보여주는 환율…수출과 연관성 약해져
원·달러 환율이 IMF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는 뉴스를 보셨을 겁니다. 달러가 오르고 내리는 환율 변화는 어떻게 이뤄지는 걸까요? 쉬운 듯 어려운 환율의 세계를 쉽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수능에는 환율 관련 지문이 다양한 형태로 출제돼왔습니다. 환율이 왜 중요할까1달러와 한국 원화의 교환 비율을 ‘원·달러 환율’이라고 하지요. 사실 1달러당 얼마 이렇게 표기를 하는 건 달러·원 환율이라 해야 더 정확하지만 통상 원·달러 환율이라 불러요. 원·달러가 올랐다는 것은 달러의 가치가 높아졌단 뜻이죠. 1200원이면 살 수 있던 1달러를 이젠 1400원 주고 사야 한다는 뜻이니까요.환율은 금리와 주가와 더불어 현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가격변수로 꼽혀요. 환율을 매개로 수출입, 증권 투자 유출입, 해외여행 공급 및 수요 등이 결정됩니다. 기본 원리적으로는 환율이 상승할 때 수출기업은 수출이 늘어나요. 수입은 줄어들겠죠. 하지만 꼭 그렇진 않아요. 환율이 상승한 배경을 살펴봐야 합니다. 경제 구조가 흔들리고 성장이 둔화하면서 원화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떨어진 것이라면, 수출이 늘어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수입 물가 급등으로 내수경기가 더욱 힘들어지죠. 지난 10년간 튀르키예가 보여준 모습이 그런 사례입니다. 환율의 결정 방법한국은 1997년 12월부터 자율변동환율제도를 택하고 있습니다.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는 뜻이죠. 우리가 은행에 가서 환전한다고 칩시다. 점심시간 전과 후에 가격이 당연히 다르겠죠? 실시간으로 거래가 이뤄지면서 가격이 계속 달라지기 때문입니다.외환시장이 있습니다. 은행끼리 열리는 시장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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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읽는 세상
대기업 대졸 초봉 5000만원…일본보다 44% 더 받아
대기업(300인 이상)에 다니는 정규직 대졸자의 평균 초임이 처음으로 5000만원을 넘었다. 500인 이상 대기업의 대졸자 초임은 일본 대기업(1000인 이상)보다 43.5%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지난 12일 발표한 ‘우리나라 대졸 초임 분석 및 한·일 대졸 초임 비교’에 따르면 국내 300인 이상 사업체 정규직 대졸 초임은 평균 5001만원이었다. 연장근로 수당 등 초과급여를 포함한 임금 총액은 평균 5302만원이다.사업체 규모별로 임금 격차가 컸다. 300인 미만 사업체의 정규직 대졸 초임은 3238만원으로 대기업보다 35.3% 낮았다. 5인 미만은 2731만원으로 대기업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전체 대졸 정규직 초임 평균은 3675만원이다. 분석 대상은 근속연수·경력 1년 미만의 만 34세 이하 정규직 대졸 근로자다.경총은 “대기업의 전반적 고임금 현상은 높은 대졸 초임에 연공형 임금체계, 노조 프리미엄까지 더해진 결과”라며 “성과에 따라 합리적 보상이 이뤄지는 임금체계로 바꾸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500인 이상 한국 대기업의 대졸 초임은 일본 대기업(1000인 이상)을 크게 웃돌았다. 시장환율 기준 3만5280달러로 일본 대기업(2만4593달러)보다 43.5% 높았다. 일본은 500인 이상 기업을 집계하지 않아 같은 기준을 적용하면 격차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구매력평가(PPP) 환율 기준으론 한국 대기업(5만7568달러)이 일본 대기업(3만6466달러)보다 57.9% 높았다.대졸 초임을 1인당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분석에서도 한국(78.2%)이 일본(69.4%)보다 높았다. 대기업끼리 비교하면 그 격차가 한국 99.2%, 일본 72.7%로 더 커졌다. 하상우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일본보다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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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삶에 녹아든 AI…무엇을 바꿔놓을까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가 2022년 말 혜성처럼 등장한 이후, AI는 많은 이슈를 몰고 왔습니다. 예를 들어, 챗GPT에 의존해 작성한 대학생 연구과제를 어디까지 인정할 거냐라는 문제부터 AI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란 주장과 AI 기술개발 규제론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적지 않았어요.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을 비롯한 우리나라도 ‘AI 기본법’을 제정했고, AI 기술개발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는 인식도 퍼지기 시작했습니다.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 ‘CES 2025’가 지난 7일부터 나흘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려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CES는 지난해 세계 AI 기술을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올해는 한 걸음 더 나아가 AI가 우리 생활에 얼마나 밀접하게 다가오고 있는지 보여줬습니다. AI 기술에 푹 빠져들어 인류 공통의 과제를 해결해보자며 ‘다이브 인(Dive In)’이란 주제어를 제시하기도 했죠. AI 연산용 핵심 칩이 될 엔비디아의 블랙웰,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대신해주는 AI 에이전트가 어떤 모습일지 상세하게 전해줬어요.AI가 몰고 올 미래의 변화를 쉽고 빠르게 점쳐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논쟁점을 중심으로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AI 기술 자체에 좀 더 관심을 갖고 그 변화의 속도를 체감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CES를 통해 공개된 첨단 AI 기술의 현 단계를 4·5면에서 자세히 살펴봤습니다.AI 에이전트·양자과학…모든 산업 확산이젠 '디지털 전환'에서 'AI 전환'으로지난해 생글생글 마지막 호 커버스토리는 “세계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큰 도박이 인공지능(AI) 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영국 주간지 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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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기타
영국 처칠이 독일함대 제압했던 힘은 '석유'
1911년 여름에서 가을까지 세상에서 가장 바빴던 사람은 아마도 윈스턴 처칠이었을 것이다. 그해 7월 독일제국 빌헬름 황제가 모로코의 아가디르항에 군함을 파견해 아프리카에서 프랑스의 영향력에 의문을 제기하기 전까지만 해도 처칠은 게르만족과 충분히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각의 ‘경제 제일주의자’들을 이끌던 그는 독일과의 전쟁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라 주장하며 군비 확장파의 목소리를 제압하고 있었는데, 여기에 독일 황제가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해군 장관에 임명된 처칠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며 경제 제일주의자들을 납득시켜야 했다. 군비 강화에 주력하던 그는 기술적 사안 하나를 놓고 이번에는 군부(軍部)를 설득하는 데 진땀을 흘린다. 그것은 영국 해군 함정의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바꾸는 문제였다. 제1차 세계대전 해전(海戰)은 석유와 석탄의 싸움영국 산업혁명의 동력은 석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습관과 신뢰는 경로의존성을 갖기 마련이다. 군부는 안정적 공급이 가능한 석탄 대신 거리가 멀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불안정한 페르시아 석유에 의존하겠다는 처칠의 주장에 반발했다. 사실 영국의 구축함과 잠수함 일부는 이미 석유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군의 중추인 주력 전함들은 여전히 석탄을 때고 있었다. 해전(海戰)의 핵심은 속력이다.당시 영국 전함들의 평균속도는 21노트(knot)였는데, 처칠의 목표는 이걸 25노트로 올리는 것이었다. 그것만이 독일 함대를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그러자면 연료를 석탄에서 석유로 갈아타야 했다. 게다가 석유는 순간적으로 속도를 빠르게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석탄 선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