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대학등록금 통제, 계속해야 하나
한국에선 대학이 등록금을 마음대로 못 올린다. 고등교육법에 따라 연간 등록금 인상 한도가 묶여 있다. 직전 3년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 이내가 법정 상한이다. 그나마 이만큼 올리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다. 정부가 매년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압박’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학이 정부 말을 따르지 않고 법정 상한까지 등록금을 올릴 순 있지만 이 경우 각종 정부 지원금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 그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등록금을 동결하는 대학이 많다. 이런 일이 올해로 벌써 17년째 계속되고 있다. 대학등록금을 이렇게 통제하는 게 맞는 걸까. [찬성] "마구잡이 인상 땐 학부모 부담"…"교육 불평등도 함께 커질 것"대학이 등록금을 마구잡이로 올리면 학부모와 학생이 감당하기 어렵다. 1989년 대학등록금 자율화 조치로 등록금 결정권이 대학에 넘어간 적이 있다. 당시 상당수 사립대가 등록금을 대폭 올리면서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됐다. 대학가에선 ‘반값 등록금’ 구호가 쏟아졌다. 정부가 대학등록금 자율화를 포기하고 등록금 인상 폭을 법에 못 박은 배경이다. 대학등록금 통제가 사라지고 등록금 자율화로 복귀하면 과거와 같은 등록금 폭등이 재연될 수 있다. 등록금 억제 고삐가 사라지면 교육 불평등이 커질 수도 있다. 과거에 비해 낮아지긴 했지만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여전히 70%대에 달한다. 높은 교육열은 그동안 우리 사회를 발전시킨 원동력이었다.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는 핵심 통로도 교육이었다. 등록금이 대폭 인상되면 저소득층에선 값비싼 등록금 때문에 대학 진학은 꿈도 못 꾸는 사례가 속출할 수 있다. 교육 기회가 박탈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교육 불평등이 커지는 데 그치지 않고 사회적 역동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학등록금이 자율화되면 그 혜택이 수도권 대학에 쏠릴 가능성이 큰 점도 문제다. 수험생이 몰리는 ‘인서울’ 대학은 등록금을 올리더라도 학생을 모을 수 있지만, 지금도 학생 구하기가 어려운 지방대는 등록금을 올리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 대학 간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대학 재정난을 해소하기 위해 등록금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 있지만 이 문제를 등록금 인상에만 의존하는 게 바람직한지도 따져봐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 지표 2023’에 따르면 고등교육(대학·대학원) 지출액 중 한국의 정부 부담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0.91%로 관련 통계가 있는 28개국 중 19위에 그쳤다. 반면 학부모 등 민간 부담 몫은 GDP 대비 0.64%로 OECD 평균 0.33%보다 두 배가량 높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학부모의 고등교육비 부담이 크고 정부 부담은 상대적으로 적다. 지금보다 국가 지원을 늘릴 여지가 있는 것이다. [반대] "등록금 통제로 대학 경쟁력 저하"…"교육 질 하락은 결국 학생 손해"정부의 대학등록금 동결 기조가 시작된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소비자물가는 33% 올랐다. 그 사이 대부분 대학의 등록금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국립대든, 사립대든 가리지 않고 대학 재정이 열악해졌다. 교수 채용은 물론 노후 시설 교체조차 제대로 못 하는 대학이 부지기수다.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선 낮은 연봉 때문에 교수 초빙도 쉽지 않다. 해외 석학 초빙은 꿈도 못 꾼다.

대학이 교수 월급을 올려줄 형편도 안 되니, 교수들도 해외 유명 대학 교수나 대기업 연구원에 비해 ‘박봉’에 시달린다. 그러다 보니 돈 되는 프로젝트나 정부 예산 따내기에 매달리게 되고 교육과 연구에 전념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정부 지원이 많은 일부 국립대는 그나마 형편이 낫지만 사립대는 사정이 더 나쁘다.

대학 경쟁력 추락도 심각하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 조사에서 한국의 대학 경쟁력은 조사 대상 64개국 중 49위에 그쳤다. 2013년 41위보다 더 떨어졌다. 영국 대학 평가기관 QS 조사에선 아시아 최상위 10개 대학 중 한국 대학이 1개에 그쳤고, 타임스고등교육(THE) 평가에선 10위권에 든 한국 대학이 한 곳도 없다.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성적이다. 대학 경쟁력 저하의 피해자는 결국 학생들이다. 국가 경쟁력 측면에서도 손해다. 등록금 인상만이 해법은 아닐지 몰라도 등록금 인상 없이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교육계에선 대학등록금이 초·중·고 교육비나 영어 유치원비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온 지 한참 됐다.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4년제 사립대의 등록금은 연평균 732만6000원으로 월 61만1000원 정도다. 월평균 교육비가 유아 대상 영어학원(174만4000원), 사립 초등학교(76만5000원), 사립 국제중(106만7000원), 국제고(237만2000원)보다 훨씬 적다. 한국의 의무교육은 고등학교까지다. 의무교육이 아닌 대학까지 등록금을 이처럼 과도하게 통제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 생각하기 - 단계적·차등적으로 푸는 것도 방법
[시사이슈 찬반토론] 대학등록금 통제, 계속해야 하나
대학등록금이 무료이거나 저렴한 유럽 대학에서도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등록금을 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우리도 대학 경쟁력을 키우려면 적정 수준의 등록금 인상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는 등록금 결정권을 대학에 돌려줘 대학들이 수업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경쟁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래야 학생에게도 이익이고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된다. 물론 학부모와 학생의 경제적 부담, 교육 불평등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등록금 규제를 한 번에 풀기 어렵다면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는 지난해 대학등록금과 관련해 ‘5년간 법정 한도 내 인상→이후 5년 차등 등록금 인상 → 완전 자율화’ 방안을 논의했다. 대학등록금 자율화를 대학의 혁신 노력과 연계하자는 아이디어도 있다. 전공 간 벽 허물기, 교수 평가 강화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한 대학부터 차등적으로 등록금 규제를 풀자는 것이다.

주용석 논설위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