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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손자병법]下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
나라의 역량을 총 결집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 개념을 세상에 널리 알린 <손자병법>은 적과 나의 전쟁수행 조건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서 '승리 가능성'을 진단한다. 전쟁을 시작할 것인지를, 말 것인지를 가늠할 때에도 철저한 '계산'을 앞세웠던 손자는 전쟁의 실제 전략 수립에 있어서도 역시 '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손자에게 있어서 전쟁이란 전쟁터에서 발휘하는 용맹으로 쟁취하는 무훈이 아니었다. 전쟁은 전장에 나가기 이전에 준비성 여하에 따라 이미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국가사업이었고,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두철미한 계획 아래 빈틈없는 전략이 시행되어야 했다. 그래서 승리를 위해서는 고도의 능동적인 준비 자세와 함께 치밀하고 다양한 계획이 요구되었다. ⊙ 원문읽기전쟁을 일으키기 전에 조정에서 전략을 수립하면서 승리를 예측하는 자는 그 계획이 주도면밀하고 다양하다. 그러나 전략을 수립하면서 승리를 예측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계획이 치밀하거나 충분하지 못하다. 계획이 다양하면 이기고,계획이 다양하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하물며 아예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면,그 결과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측면을 살펴보면 어느 편이 이기고 질 것인지 예측할 수 있다. ▶ 해석전쟁의 청사진을 그려내는 조정에서 이미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다. 운명의 여신은 전쟁터에서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주사위는 운명의 여신이 전운이 감돌던 각국의 조정을 돌아보던 때 벌써 던져졌다. 전장에 나가서 하는 일은 각국의 전쟁 설계도가 얼마나 훌륭한지 혹은 조잡한지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하는 것뿐이다. 전쟁은 우연과 혈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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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손자병법>上 "최고의 병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
오나라 왕 합려와 손자가 만났다. 합려는 손자가 보낸 병법 13편을 이미 읽어본 상태였다. 군사전략가로서의 손자를 실제 상황에서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합려는 궁녀도 지휘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손자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합려가 불러 모은 궁녀 180명에게 군율을 설명한다. 왕의 전권 위임을 상징하는 도끼를 설치하고 궁녀들은 두 부대로 편성돼 합려가 총애하는 후궁 둘이 각 부대의 대장을 맡았다. 그리고 큰 북이 울리면서 손자의 명령이 떨어진다. 하지만 궁녀 무리는 어색한 상황에서 마냥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합려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누각 위에서 구경하는 그의 얼굴에 장난기가 어렸을지도 모르겠다. 손자의 표정은 아마 무덤덤했을 것이다. 손자는 담담한 어조로 군율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명령이 철저하게 이행되지 않는 것은 장수의 죄이니 그 죄를 물어 양 부대 대장의 목을 베어야 한다고 말한다. 대경실색한 합려는 그 후궁 둘이 죽으면 자신이 밥을 먹어도 맛을 전혀 모르게 된다며 말린다. 하지만 손자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합려가 아끼는 후궁 둘의 목을 그 자리에서 베어버린다. 참수된 두 후궁의 머리가 내걸린 가운데 남은 궁녀들은 이제 명령이 울려 퍼질 때마다 북소리에 맞추어 자로 잰 듯이 완벽하게 움직였다. 손자는 궁녀들이 합려를 위해 불구덩이나 물 속에라도 뛰어들 수 있게 훈련되었다고 보고한다. 망연자실하게 사열 광경을 지켜보던 합려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손자의 얼굴이 이 때도 무표정했을지는 짐작하기 어렵다. 기록에 남아 있기로는 손자가 합려는 그저 병서의 말장난만 즐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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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앙리 베르그송<창조적 진화>(L'Evolution Creatrice)
우주의 모든 존재물은 운동이며 흐름이고 지속이다 1907년에 출판된 앙리 베르그송(1859~1941)의 <창조적 진화>는 방대한 규모의 우주론과 형이상학을 구축한 대작으로 베르그송 철학의 집대성이라 불린다. 베르그송은 이 책에서 현실과 괴리된 순전한 사변적 기초 위에서 이론을 전개하려 한 것이 아니라,물리학 생물학 심리학 등 당대의 자연과학적 지식에 충실하면서도 과학과 철학의 근본적인 결합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책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수준의 철학적,과학적 지식이 필요하며,내용 자체도 우주론과 형이상학을 담고 있어 사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독해해내기에 그리 쉬운 책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으며,특히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 철학 교과에서 필수로 다루어질 뿐만 아니라 대학 입학시험에서도 거의 빠지지 않는 필독 독서로 등장하고 있다. 프랑스 학생들이 읽는다면 우리 학생들이라고 못 읽을 이유는 없다. 우리 학생들이 이 책에서 얻어야 할 것은 전문가 수준의 이해는 아닐 것이다. 우리의 존재와 세계를 바라보는 베르그송의 참신한,아니 혁명적 시각과 그 시각을 우주에 대한 통찰까지 확대하는 베르그송 사유의 방대한 스케일을 경험하면 족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글도 베르그송이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이 왜 참신하고 혁명적이었는지를 소개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제논의 역설 중에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이 있다. 이 역설은 거북이가 먼저 출발한 상황에서 아킬레스는 아무리 빨리 달려도 거북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논증한 것이다. 이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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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
유토피아는 왜 다스토피아로 끝나나?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제5막에서 미란다가 외친다."아아,얼마나 신기한가! 여긴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군요! 오,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런 사람들이 모여 사는 멋진 신세계여!" 그리고 이 대사는 시간과 함께 사람들의 마음속을 흐르다가 1932년 올더스 헉슬리(Aldous Leonard Huxley)의 작품 제목으로 다시 탄생한다.헉슬리가 집필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에서 야만인 존은 희망에 가득 차 들뜬 목소리로 이 대사를 읊는다.어머니의 실족사고로 자연 보호구역에서 태어난 존은 곰팡이 핀 셰익스피어 전집을 벗 삼아 고독과 싸우다 우연히 문명인 관광객 눈에 띄어 문명세계에 발을 디딘다.20년간 어머니에게 말로만 듣던 멋진 신세계가 그의 눈앞에 열리게 되는 순간이었다.그러나 누군가의 꿈이 반드시 다른 이에게도 꿈이 되는 것은 아니다.문명세계에서 존은 다시 한번,'오 멋진 신세계여!'라고 외치나 말을 마친 후 미친 듯이 달려가 구토를 한다.존에게 구토를 유발한 장면은 다음과 같다.⊙ 원문 읽기83명의 짧은 머리 검은 델타가 냉각 압연 작업을 하고 있었다.네 개의 스핀이 달린 기계 5, 6대가 덜컹덜컹하고 돌아가고,56명의 허리가 굽고 조심성이 많은 감마들이 기계를 운전하고 있었다.주물 공장에서는 열에 대해 습성훈련을 받은 세네갈 종의 엡실론 107명이 일을 하고 있었다.머리가 길쭉하고 골반이 좁고 얼굴이 황토색이며,모두 1m69㎝보다는 20밀리가량 모자라는 키를 가진 33명의 델타 여성들이 나사못을 끊고 있었다.조립실에서는 두 줄의 감마 플러스의 난쟁이들이 발동기를 조립하고 있었다.낮은 작업 책상 두 줄이 서로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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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조지 오웰 <1984년> (下)
감시받는 현대인, 상상속의 디스토피아만은 아니다? 《1984년》에서 '존재'라는 말의 의미는 극히 기만적이다.당의 의지와 명령에 따라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부정되고 날조된다.당이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고 공표하면 비록 진실이 아니더라도 그것을 믿어야만 한다.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실이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다.이러한 숨 막힐 것 같은 현실에 윈스턴은 반발한다.그는 자신의 언어를 토하며 일기를 써내려 가고,막연하기만 하던 그의 불만과 의문을 점차 구체적으로 다듬는다.또한 감시의 눈을 피해 쾌활한 줄리아와 연애하면서 사랑을 금지하는 체제를 비웃고 거리낌 없이 자유로운 생각을 나눈다.그는 일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당당히 쓴다."자유란 둘 더하기 둘은 넷이라고 말하는 것이 자유이다.그것이 용납된다면,그 밖의 다른 모든 것도 이에 뒤따른다." 그러나 이러한 생활도 잠시,밀월을 즐기던 현장에서 윈스턴은 줄리아와 함께 체포당해 애정성(愛情省)으로 끌려가 고문과 세뇌를 받는다.놀랍게도 세뇌 담당자는 윈스턴이 한때 반체제주의자라고 믿어 마음을 터놓았던 오브리엔이다.애정성이라는 역설적인 명칭의 감옥 안에서 윈스턴과 오브리엔은 실재와 가공,권력과 인간에 대해 논쟁을 벌이지만 고문을 앞세운 절대적인 권력에 의해 대립의 한 축이던 윈스턴은 서서히 허물어지고 만다.⊙ 원문 읽기"자넨 겸손하지도 않고 자기 훈련을 하지도 못해 이 꼴이 되었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복종도 하지 못했어. 정신 이상이 되어 단 한 사람으로 이루어진 소수파가 되려고 했지. 오직 훈련된 사람만이 실재를 볼 수 있는 거라네 윈스턴. 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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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조지 오웰 <1984년> (上)
전체주의 권력이 지배하는 '디스토피아' 형상화 이 세상에는 실존하지 않는 곳이 있다.천국과 지옥이다.천국은 너무 완벽해서 존재하지 않고,지옥은 너무 끔찍해서 존재하지 않는다.그러나 이따금 천국이 시공의 틈새로 얼핏 나부끼다 사라지는 찰나가 있고,말 그대로 생지옥이 세상을 찾아올 때도 있다.다만 천국은 개인의 현실에나 가끔씩 출현하지만,지옥은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크메르루즈처럼 사회집단적으로도 종종 현실 세상을 찾아온다는 점에서 인간의 어리석은 세상살이가 자아내는 씁쓰레함이 못내 아린 맛을 띤다.천국과 지옥에 대한 서사시는 유토피아(Utopia) 작품과 디스토피아(Dystopia) 작품으로 구체적인 모양을 입고 형상화된다.토마스 모어가 그의 작품을 위해 조어(造語)한 '유토피아'는 책 제목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였지만,그 반대말인 역 이상향(逆 理想鄕) '디스토피아'는 존 스튜어트 밀이 그리스어 디스(dys; 나쁜)와 토포스(topos; 장소)를 결합한 단어를 의회 연설에서 사용하면서 공식어로 등장하였다.동경의 이상향(理想鄕) 유토피아가 사람들의 꿈을 자양분으로 줄기를 뻗어나간다면,그에 대립하는 절망향(絶望鄕) 디스토피아는 불안과 근심을 집어삼키며 어두운 형체를 갖춘다.상상의 불길함이 구불구불 펼쳐나가는 디스토피아는 지금까지 다양한 문학과 영화 작품을 그 음험한 자식으로 낳았는데,누구나 첫 손에 꼽는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문학으로 조지 오웰의 <1984년>이 있다.1945년 소련의 스탈린 체제를 예리하게 희화화한 동물우화 <동물농장>을 집필하여 정치소설가로서 부동의 입지를 굳힌 조지 오웰-사실 조지 오웰은 필명이고 본명은 에릭 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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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下)
21세기 유토피아는 어떻게 그려질까?⊙ 원문 읽기 나는 남의 돈을 좀 훔쳤다고 해서 목숨을 뺏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왜냐하면 어떤 재산도 생명에 버금가지는 않기 때문입니다.만일 그 형벌이 돈을 훔친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법을 위배하고 정의를 침해한 것에 대한 것이라고 하면,"극단적 법은 극단적 불의"라는 법언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왜냐하면 어떤 사소한 일로 법을 어긴다고 하여 죽음으로 처벌한다는 만리우스의 법을 용인해서는 안 되고,또한 모든 범죄는 동일하다고 보아 절도와 살인은 형평상 완벽하게 상이한데도 불구하고 양자 간에 아무런 차이도 없다고 하는 스토아적인 계율에 근거한 법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해석토머스 모어는 궁지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도적이 되는 사람들을 사형으로 다스리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비판한다.엄벌주의로 일관하는 영국의 가혹한 법제는 범죄 형평성과 처형의 효과 측면에서 부당하다는 것이다.모어 스스로 법학을 공부하면서,그리고 법관 생활을 하면서 피부로 생생하게 느꼈을 사법제도의 모순을 논리적으로 지적한다.범죄의 경중에 따른 책임의 비례 문제는 물론이거니와 절도에 대한 처벌도 사형이고 살인에 대한 처벌도 사형이라면 절도에 그칠 자가 살인까지 저지르게 된다는 것이다.또한 정의롭지 못한 사회현실은 나 몰라라 도외시하면서 그러한 현실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을 범죄는 더할 나위 없이 엄격하게 처단하는 비정한 제도에 대해서 분개한다.그리고 '극 중 라파엘'은 사법제도 비판에 연이어 사유재산의 폐지 및 공동 소유제도를 거침없이 주장한다.이에 대해 소심한 '극 중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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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上)
사회 비판 통해 구체적으로 설계된 이상향 제시 '나는 생각한다. 나는 존재한다.' 흔히들 이 문구가 근대를 만들었다고 한다.그렇다면 인류의 전 역사를 만든 문구는 무엇일까? 정리해 보건대 '나는 불만족스럽다. 나는 욕망한다.' 이 문장으로 간추릴 수 있을 것 같다.인간은 꿈을 호흡하며 살아간다.꿈을 꾼다는 것은 현실의 불완전성을 깨닫고 그 불만 속에서 이상향을 욕망한다는 의미이다.기존 현실에서 만족을 찾지 못할 경우 우리의 상상력은 욕망과 희망이 날줄과 씨줄로 팽팽히 쳐진 세계를 창조해 낸다.신화,종교적 약속,환상 동화,가공 여행담 등은 현실에서의 결핍이 표출된 결과이다.현실의 불만은 그 모든 꿈의 모태가 된다.그런데 이상적 국가라는 에레원(Erehwon) 나라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눈치 빠른 이라면 Erehwon이라는 이름이 Nowhere를 뒤집은 단어임을 금세 알아차렸을 것이다.이상향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시금털털한 깨달음에서 나온 재치 있는 작명이다.우리는 어떠한 결핍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이상향에 가 닿고자 꿈꾸지만,완벽한 이상향은 불완전한 현실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다.다만 우리는 그 완벽함에 이르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리는 것이며 그 끊임 없는 경주 속에서 우리들의 역사가 태어난다.완전성에 대한 추구는 우리를 여기 이곳까지 치달리게 한 힘이다.오늘 소개하는 고전은 토머스 모어가 그린 이상향인 '유토피아'이다.출간 이후 500년 가까이 흐르는 세월 동안 가공의 나라 '유토피아'는 무수한 사상가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며 그 뒤를 잇는 모든 유토피아 저술의 모태가 되었다.유토피아(Utopia)는 존재하지 않는 장소,즉 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