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책을 읽다가 "그는 어두운 들판에 나가 권총으로 가슴 한복판을 쏘았다.
간신히 몸을 이끌고 여관으로 돌아온 이틀 후 급히 달려온 동생의 품에 안겨 세상을 떠났다"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간신히 몸을 이끌고'라는 구절을 몇 번이나 되풀이해 읽었다.
제 가슴을 겨누었지만 치명상을 입히는 데 실패한 고흐는 '간신히 몸을 이끌고' 《까마귀가 나는 밀밭》이라는 인상적인 그림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어두운 들판을 걸어 여관으로 돌아간다.
힘겹게 숙소로 돌아가는 동안 밀밭이 바람에 일렁이고 총을 겨눌 때보다 어둡고 고요해진 밤공기가 땀을 식혔을지도 모른다.
누런 밀밭에 상처에서 흐른 피가 떨어지기라도 하면 흔들리는 밀밭 사이에 몸을 묻고 울음을 터뜨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간신히 생이 부지되던 고흐의 마지막 며칠을 종종 생각했다. 상처를 입은 채로 고요한 밤길을 되돌아가는 고통에 대해서, 여관 주인에게 자신이 심장을 겨누었음을 고백하고, 의사의 치료를 받고, 동생이 달려오기를 기다리던 이틀간에 대해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떠오른 것은 고흐에 대해 말한 그 구절, '간신히 몸을 이끌고'라는 것이었다.
고흐와 달리 베르테르는 방에서 권총을 쏘았으므로 상처 난 몸을 이끌고 어디론가 가지는 않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베르테르가 오래 전부터 총상을 입은 몸으로 '간신히 몸을 이끌고' 살아가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말하자면 베르테르가 로테에게 시를 낭송해주던 중 '고결한 사람들의 운명에서 자신들의 불행'을 느끼고 둘이 부둥켜안고 하나가 되어 눈물을 흘리던 순간부터.
로테가 베르테르를 달래기 위해 "여행이라도 하면 기분이 달라질" 것이며, '당신에게 어울리는 소중한 사람'을 찾아오고, 그렇게 해서 '진정한 우정의 행복'을 나누자고 충고하던 순간부터. 로테의 약혼자인 알베르트가 자신과 '마주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
자신이 로테를 '이렇게 사랑하고 있는데 정작 다른 남자가 그녀를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어 고통스러워할 때부터, 그리고 "그녀 말고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탄식할 때부터.
그러니까 사랑 때문에 불화가 시작된 순간부터. 혹은 애초에 '더없이 영민한가 하면 순진하고, 강인하면서도 심성이 착하고, 생기 가득하고 활동적이면서도 영혼의 평온을 유지'하는 로테와 사랑에 빠진 순간부터.
베르테르가 '간신히 몸을 이끌고' 살아가게 된 것은, 그가 알베르트라는 약혼자가 있는 로테와 불행한 사랑에 빠져서가 아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애당초 그렇게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살아가야 할 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것이어서도 아니다.
그런 게 사랑일 리가. 베르테르가 로테를 사랑하게 된 후 '유쾌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눈부신 태양'을 쳐다보며 "오늘도 나는 그녀를 만날 거야!"라고 다짐할 때를 상상해보면, 사랑이라는 것은 간신히 몸을 이끌고 살아가던 사람을 거뜬히 일으켜 세우고, 무표정한 사람을 유쾌하고 가볍게 하고, 서로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더 바랄 게 없게 만드는 것일 텐데.
자살에 이른 베르테르의 상심은 누구에게도 자신(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사랑)을 이해받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서 온다. 심지어 사랑하는 로테에게도.
그는 '대체 인간의 감정이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 궁리하고,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결을 가진 존재인지 헤아리려 애쓴다.
그가 알베르트와의 논쟁 끝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가 이렇게 힘들다니"라고 말하는 것은 알베르트를 탓하기보다 인간의 마음이 수만 겹이라는 걸 깨달은 스스로에 대한 탄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 베르테르는, 로테의 아버지 밑에서 일하던 서기가 남몰래 로테를 흠모하다 그 사실을 털어놓은 후 해고를 당하고 급기야 미쳐버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다.
또한, 여주인을 사랑하였으나 그녀가 다른 사람을 선택하자 그만 죽여버리고 만 하인에 대해 행정관이 "그자를 구원할 방도가 없다"고 단호히 말하는 것을 듣고 좌절에 빠진다.
이로써 베르테르는 확신한다.
자신의 사랑은 구원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것이며 그 때문에 세상과 끝내 불화할 수밖에 없다는 걸.
슬픔은 필연적이다. 사랑을 차지하지 못한 상실감 때문이 아니라, 인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랑)은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좌절감과 그로 인한 불화가 계속될 테니까.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은 그야말로 '간신히' 몸을 이끌어야만 삶을 살아가게 한다.
이 소설이 내게, 이룰 수 없는 사랑으로 슬픔에 빠진 청년의 이야기인 동시에 누구에게도 자신(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사랑)을 이해받지 못해 절망한 청년의 이야기로 읽히는 것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