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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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0) 창씨개명 이야기
■ 체크 포인트식민지 등 정복된 국가에선 자주 이름바꾸기가 강제로 시행된다. 터키와 불가리아 사이에서도 창씨개명이 분쟁을 일으켰는데…일제 강점기에만 창씨개명(創氏改名)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영국은 아일랜드를 정복하고 게일어 지명을 영어식으로 모두 바꾸었다. 세계적인 극작가 브라이언 프리얼(Brian Friel: 1929~)은 《이름 바꾸기(Translations)》(1980)라는 3막 희곡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이 작품을 통해 그는 19세기 말 아일랜드 도네갈 지방의 한 농촌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이름과 지명과 언어 자체가 정치, 사회, 문화적 영향으로 급격하게 바뀌는 현실을 증언한다. 고유한 언어가 소멸해 가는 바로 그 순간이다.아일랜드를 정복한 영국의 이름바꾸기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례도 있다. 이름 바꾸기를 강요당해 국적을 버리고 망명한 스포츠 스타의 이야기다. 나임 슐레이마놀루(터키)의 처음 이름은 나임 슐레이마노프다. 불가리아 산간 마을에서 광부인 아버지와 가정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155㎝의 단신이었지만 152㎝인 아버지와 141㎝인 어머니에 비하면 그는 가족 중 최장신이었다.어려서부터 힘이 장사였던 슐레이마놀루는 15세 때 이미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이듬해 자기 몸무게의 세 배를 들어 올린 역사상 두 번째의 인간이 되었다. 불가리아 정부는 1984년부터 ‘슐레이마노프’에게 매달 연금을 지급하고 아파트도 제공했다. 일종의 파격이자 엄청난 특혜였다. 문제는 같은 해 1984년에 터진 터키계 불가리아인들의 시위다. 불가리아 정부는 소수민족을 탄압했다. 반터키 캠페인이 일어나고 모스크가 폐쇄되었으며 이슬람 축제 및 이슬람식 장례식 금지, 터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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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2) 장영희·김점선 '생일'
시를 읽으면 좋은 가사가 나온다형식과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는 시의 특징은 언어를 함축적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짧은 언어에 많은 의미를 담아 아름답게 표현하는 시를 ‘문학의 정수’라고 일컫는다. 그래서 시는 감성이 살아 움직이는 청춘에 써야한다고들 말한다. 시인들이 다른 장르에 도전하기도 하는데 시를 오래 쓴 작가들의 문장력은 특별한 데가 있다.예전 학생들이 시집을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시를 읊었다면 요즘 친구들은 직접 가사를 써서 랩을 만들고 부른다.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에 이어 고등래퍼가 상종가를 치는 중이다. 비트에 맞춰 랩을 할 때 가사에 귀 기울이다가 ‘시를 읽으면 훨씬 좋은 가사를 쓸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다.아치볼드 매클리시의 ‘시법詩法’에서는 시를 이렇게 표현한다.‘시는 둥그런 과일처럼/만질 수 있고 묵묵해야 한다./엄지손가락에 닿는 오래된 메달들처럼/딱딱하고/새들의 비상처럼/시는 말을 아껴야 한다./시는 구체적인 것이지/진실된 것이 아니다./슬픔의 긴 역사를 표현하기 위해서는/텅 빈 문간과 단풍잎 하나/사랑을 위해서는/비스듬히 기댄 풀잎들과 바다 위 두 개의 불빛/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단지 존재할 뿐이다.’서강대 영문과 교수이자 수필가였던 장영희 선생이 엄선한 시와 단상, 화가 김점선 선생의 밝고 환상적인 그림을 담은 《생일》에서 소개한 시이다. ‘장영희의 영미시 산책’이라는 타이틀로 신문에 연재됐던 시 가운데 49편을 뽑아서 엮은 《생일》은 영어 공부도 하고 시도 읽고 해설도 보고 그림도 감상할 수 있는 일석사조의 책이다.그 자리에서 휘리릭 읽고 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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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개화 전, 장사는 천한 '말업' 큰 돈 벌면 장사 '끝'…개화 후, 큰 돈 벌어서 기업 이어가면서 '확장 경영'
박승직, 김성수, 김연수, 박흥식 등 초기의 기업가들 이야기를 세 번에 걸쳐 연재했다. 이들 개화기의 기업가들이 초기의 본격적 기업가들이기는 하지만 최초라고 말하긴 어렵다. 조선조에도 이미 원초적 형태의 기업가, 즉 상인들은 있었다. 하지만 그들을 본격적인 기업가라고 말하긴 어렵다. 박승직부터 시작되는 개화기의 신흥 상인들과는 행동 방식이 많이 달랐다. 그 차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기억해 주세요^^기업가 정신이 우리나라에 생기기 시작한 것은 갑오개혁 이후부터입니다. 이전에 상업은 천한 직업으로 홀대받았어요.개처럼 번 뒤 정승처럼 폼내면서 살다조선조 상인의 대표 격은 철종 때의 임상옥이다. 소설가 최인호가 그의 일생을 상도(商道)라는 소설로 출간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는 중국과의 인삼거래로 큰돈을 벌었다.임상옥이 박승직, 김연수 등 개화기의 상인들과 결정적으로 달랐던 점은 돈을 번 후의 행동이다. 박승직 등은 돈 버는 데에 성공한 후에도 그 성공을 기반삼아 사업을 더욱 크게 키워나갔다. 자식들에게도 물려줬다. 반면 임상옥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단 큰돈을 벌자, 장사를 그만 두고 벼슬길에 나섰다. 수재 의연금을 낸 공으로 곽산 군수가 되었고, 더 이상 승진이 안되자 고향으로 돌아가 안빈낙도의 생활을 시작했다. 좋은 집을 지어 놓고 선비들을 두루 불러 세상을 논했고 술을 마시며 시를 읊었다.장사는 천한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버려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돈을 벌면 양반 족보와 벼슬을 사서 어떻게든 팔자를 바꾸려 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속담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었다.갑오개혁 이후 사농공상&r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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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49) 인물에 대한 평가는 사실인가?
■ 체크 포인트범죄자, 사기꾼이었던 사람이 형사로 맹활약했다면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아돌프 히틀러처럼 어떤 기준을 적용해도 악인인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다수 인물들의 생애는 선악으로 선명하게 나눠지지 않는다.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특정 사건, 사건이 벌어진 배경, 당시의 역사적 전후 사정을 입체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래서 어렵다. 프랑수아 비도크(E. F. Vidocq: 1775~1857)라는 인물이 있다. 프랑스 대혁명 시절 군복무를 마친 비도크는 탈영병이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된다. 교도소에서는 위조지폐 제조의 죄명이 더해져 사기 혐의로 중노동형을 선고받는다. 10여 년 동안 탈옥과 체포를 거듭하면서 형량이 늘어났는데, 그 과정에서 비도크는 범죄자들을 통해 뒷골목의 정보, 범죄수법에 통달했을 뿐 아니라 본인 스스로가 변장의 달인이 된다.감방에 수감된 비도크…절도사건 해결그의 인생 반전은 1810년 같은 감방 수감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를 활용해 경찰에 정보를 전달한 사건이다. 연쇄 절도에 시달리던 경찰에게 특정 거리를 지목하며 가보라고 한 것이다. 사건은 해결되었다. 깜짝 놀란 경찰들에게 비도크는 ‘범죄자들에게는 독창성이 없다. 한 번 사용한 범죄 방식을 다시 쓰고, 한 번 안전하다고 믿은 아지트를 다시 사용한다. 그래서 추리가 쉬웠다’고 말했다 한다. 옥중 추리로 연쇄 절도 집단을 일망타진한 비도크는 며칠 후 백작 부인 살인 사건을 해결한다. 남편을 기다리던 백작 부인이 총에 맞아 처참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인데, 그는 사상 최초로 과학적인 수사 기법을 동원한다. 그리고, 권총 상자의 파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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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1) 러디어드 키플링 '정글북'
최연소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정글북》은 1894년 발표된 이래 1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출판, 극장 애니메이션, TV 애니메이션, 영화 등으로 각색되며 사랑받고 있다. 1907년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이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그의 나이는 41세였다. 최연소 수상 기록은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디즈니 실사판 영화 《정글북》의 원작인 이 작품 주인공은 ‘늑대인간’ 모글리다. 대충 스토리만 훑으면 이 작품의 진면목을 만날 수 없다. 정글의 동물을 하나하나 상상하면서 그들의 특성과 매치하면 벅차면서 뿌듯하고 재미있는 세상을 탐험할 수 있다. 《정글북》에는 7편의 짧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모글리가 직접 등장하는 이야기는 세 편이다. 이 세 편의 짧은 소설을 제대로 읽으려면 꽤나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어릴 때 그림 동화책을 휙휙 넘기며 봤다면 삽화가 간간이 들어가 있는 성인용 《정글북》을 다시 읽어보길 권한다.늑대인간은 현실에서도 가끔 등장해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아기가 늑대와 함께 야생의 삶을 살다가 다시 인간 세계로 돌아온 일이 실제로 여러 차례 있었다. 신화나 전설에도 ‘늑대로 변한 인간’ 얘기가 나오고 늑대인간을 주인공으로 삼은 영화와 소설도 계속 발표되고 있다.늑대가 자주 활용되는 이유는 뭘까? 인간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살면서 위협을 줬던 동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숲이 개발되고 도시가 확대되면서 사라진 늑대들이 이제 이야기가 돼 인간과 함께하는 것이다.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늑대가 개로 진화했으니 우리는 여전히 늑대와 함께하는 셈이다.모글리가 등장하는 세 편을 살펴보자. ‘모글리의 형제들’은 모글리가 호랑이에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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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한국 최초 백화점으로 일본과 경쟁…무너진 조선 유통업에 변화를 심다
서울 종로2가 로터리에 상층부가 뻥 뚫린 특이한 건물, 종로타워가 서있다. 원래 이곳에는 화신백화점이 있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박흥식은 일제 강점기에 화신백화점을 세운 사람이다. 그 시절 가장 혁신적 기업가가 박흥식이었다.■ 기억해 주세요^^박흥식은 16세 어린 나이에 쌀장사로 돈을 벌어 종이 장사를 시작해요. 스웨덴 종이를 수입하는 수완도 발휘했어요.서울 종로2가 ‘종로타워’ 자리에서 출발박흥식은 1903년 평안도의 용강에서 태어났다. 그의 나이 16세에, 쌀장사로 큰 돈을 벌었다. 1926년에는 그 돈으로 선일지물이라는 상호를 내걸고 종이 장사를 시작하게 된다. 철저히 신용을 지킨데다가 경품을 내거는 등 적극적 마케팅을 한 덕분에 사업은 번창했다. 그러나 곧 조선인이라는 한계에 부닥쳤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종이 공급은 일본인이 거의 독점했다. 특히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 대규모 종이 수요자들에 대한 신문 용지 공급은 모두 일본인 종이상들이 맡고 있었다. 일본의 종이 제조업체들이 조선인에게는 신문 용지의 공급 자체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쉽게 포기할 박흥식이 아니었다. 북유럽 국가들이 제지업의 강자임을 알아낸 박흥식은 스웨덴 대사관에 종이를 수입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낸다. 놀랍게도 스웨덴 대사는 박흥식에게 감사의 인사와 더불어 스웨덴 제지회사의 연락처를 보내왔다. 수입한 스웨덴 종이는 일본 것보다 품질과 가격이 모두 뛰어났다. 이윤을 붙였는데도 일본산 종이보다 훨씬 저렴했다. 조선의 모든 신문사는 물론이고 일본 본토의 지방 신문사들까지도 박흥식의 선일지물에서 종이를 조달해갔다. 1930년대 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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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48) 역사는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 체크 포인트인간의 삶을 단칼에 무 자르듯 재단할 수는 없어요. 인간과 역사는 원래 복잡하고 다층적인 것이지요. 과거는 바뀌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은 그 자체로 불변이다. 하지만 해석하기에 따라 사건의 의미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당대인이나 후대 역사가들이 존재를 몰랐던 문서나 서신, 유물이 발견되는 경우도 있고, 역사적 인물 본인이 감췄던 비밀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을 단칼에 무 자르듯 재단할 수 없다. 인간과 역사란 본디 다층적인 것이기 때문이다.이미 벌어진 일인데도 어떻게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보자. 차이코프스키(1840~1893)의 사망 원인은 자살인가 타살인가 병사인가? 정설은 ‘셋 모두 다’이다. 최근에는 사고사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죽음은 하나인데 원인이 서너 개인 경우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차이코프스키는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당시 관습으로는 상당히 늦은 나이인 37세 때 처음 결혼하지만 두 달 만에 파경을 맞았다. 얼마나 가정생활이 힘들었던지 차이코프스키가 투신자살까지 시도할 정도였다. 그는 평생에 걸쳐 우울증을 앓았다. 공식 정신과 진료 기록도 세 차례나 있다. 인생의 각기 다른 시기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받을 만큼 마음의 평정이 깨져 있었다는 뜻이다.동성애자들에게 혹독했던 제정 러시아차이코프스키는 동성애자였던 듯하다. 문제는 제정 러시아가 동성애자들에게 혹독한 사회였다는 점이다. 동성애를 하다 적발되면 정당한 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당사자를 처형할 수 있었다. 최소한의 형벌이 종신형이었다. 연좌제 비슷한 제도도 있었다. 친구 가운데 누군가가 처벌받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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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평생 두 번 이상 읽어야 할 책매년 엄청난 책이 쏟아져 나온다. 이미 나온 책은 또 얼마나 많은가. 책의 홍수 속에서 그저 떠밀려가기보다 나에게 도움 되는 책을 선별해야 한다. 이리저리 피해가려고 해도 여기저기서 툭툭 얼굴을 내미는 ‘인생 숙제’ 같은 책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노인과 바다>이다. 이 책은 청소년 시절에 한 번 읽고 나이가 좀 들어서 또다시 읽어야 할 책이다. ‘청소년 시절에는 하품이 좀 나왔지만 철들어서 읽을 때는 인생의 묘수를 깨달았다’는 이들이 많다. 지금 한 번, 먼 후일 한 번, 두 번 읽을 것을 권한다.헤밍웨이는 전쟁을 소재로 한 <무기여 잘 있거라><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를 비롯한 수많은 명작을 쓴 미국 작가이다. 제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터키 내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여한 헤밍웨이의 작품 특징은 강렬한 현장성에 있다. <노인과 바다> 역시 20년 간 생활했던 쿠바와 낚시를 즐겼던 멕시코 만류를 배경으로 탄생했다.<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53세였던 1952년에 발표하여 엄청난 호평을 얻었고 1953년에 퓰리처상, 1954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헤밍웨이가 생애 마지막으로 발표한 이 작품이 왜 갈채를 받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심은 걸까. 독자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주인공과 함께 사투를 벌이는 듯한 생생함과 함께 큰 깨달음을 주기 때문이다.스토리는 간단하고 내용도 길지 않다. 산티아고라는 노인은 84일째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40일까지 함께 했던 마놀린이라는 소년은 부모의 강요로 다른 배에 가버렸다. 산티아고를 잊지 못하는 마놀린이 찾아와서 커피를 대접하며 용기를 준다.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