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박사의 '그것이 알고 싶지?'

"전쟁터보다 병원에서 병사들이 더 죽는다"
깨끗한 병원으로 사망률 낮춘 나이팅게일
■기억해 주세요^^
나이팅게일은 환자 사이의 최소 거리 유지, 간호사 1명당 최대 환자의 수(12명), 병실내 온도 습도의 조절 등을 처음 시도했어요.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1820~1910)은 누구나 안다. 그가 간호학의 창시자라는 것도 일반 상식이다. 1893년 제정돼 간호학도들이 맹세하는 ‘나이팅게일 선서(Nightingale Pledge)’도 유명하다. 하지만 ‘간호학’이 인류의 삶을 어떻게 바꾸었기에 나이팅게일의 이름이 불멸의 명성을 획득했을까.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은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부유한 영국 상류층의 딸로 태어났다. 이름 ‘플로렌스’는 피렌체의 영국식 발음이다. 언니 파세노프도 이탈리아 출생인데, ‘파세노프’는 나폴리의 그리스식 이름이다. ‘나폴리’는 그리스어 사투리로, ‘새로운 도시’라는 뜻이다.
[세계문화사 '콕 찌르기] (51) 나이팅게일, 병원을 혁신하다
간호학을 창시한 여전사

나이팅게일은 신의 소명을 받았다며, 어린 시절부터 본인의 천직을 간호사라고 주장했다. 당시의 간호사는 ‘병원이라는 특수공간에서 일하는 하녀와 청소부’ 정도의 이미지였다. 상류층 여성이 지원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나이팅게일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을 깼다. 나이팅게일의 진정한 업적은 이것이 아니다. 1853년부터 1856년까지 크림반도에서 크림전쟁(제1차 동방전쟁)이 벌어진다. 러시아제국에 맞서 오스만제국, 영국, 프랑스, 사르데나 공국 등이 연합전선을 편 전쟁이다.

병원의 더러운 붕대, 시트가 더 문제

30대 중반의 독신 여성(당시로서는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나이팅게일은 평생을 독신으로 시종했다) 간호사로 참전한 나이팅게일은 이스탄불 야전병원장으로 활동하며 영국군 부상병의 사망률을 40%대에서 2%로 획기적으로 낮춘다. 한 장군이 ‘전쟁터보다 나이팅게일의 병원에서 병사들이 더 많이 죽어 간다’고 발언한 것이 개혁의 시작이다. 장군의 발언을 반박하기 위해 사망원인 통계자료를 만들던 나이팅게일은 장군의 말이 사실이며 더러운 붕대, 침대시트의 재사용, 오염된 물 등이 2차 감염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위생’이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이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이다.

현대 통계학의 창시자가 나이팅게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는 병사들의 사망원인을 시각적 도표로 만들었고, 통계학에 바탕을 둔 나이팅게일의 자료는 설득력이 높았다. 이 공적을 바탕으로 나이팅게일은 영국 왕립통계학회의 첫 여성 회원이 되었으며 미국 통계학회의 명예회원으로 추대된다. 통계를 바탕으로 의료시설을 개선해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업적은 나이팅게일을 신화(神話)로 만들었다. 밤중에 등불을 들고 병상을 회진하는 그녀의 모습을 형용한 말이 ‘등불을 든 여인(The Lady with the Lamp)’이다. 당대의 신문기사와 미국 시인 롱펠로의 시에서 나이팅게일을 묘사한 구절이다. 우리나라에서 간호사의 상징으로 널리 쓰이는 ‘백의의 천사(White Angel)’는 나이팅게일의 생애를 다룬 여러 전기영화 가운데 하나의 제목이다.

나이팅게일이 처음 시도한 환자 사이의 최소 거리 유지, 간호사 1명당 최대 환자의 수(12명), 병실 내 온도 습도의 조절, 환자 개인을 위한 별도의 조명 설치 등은 현대 병원설계에서도 참고하는 대목이다. 나이팅게일 이전에는 병원이 다른 시설에 비해 특별히 위생 상태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부재했다.

의료복지 체제 확립에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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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전쟁 이후 영국 사회는 나이팅게일을 전쟁영웅으로 대우했으며, 나이팅게일은 ‘빈민원의 의료복지체계 확립’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1911년부터 시행한 영국 국민보호법, 1946년부터 시행한 전 국민 의료보험의 기본 아이디어가 나이팅게일의 것이다. 여담이지만, 2차 대전 이후 비로소 시행된 전 국민의료보험의 완전실시를 막은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와 관련이 있다. 1950년 6·25 동란에 참전한 영국군의 전비조달 문제다. 6·25 동란의 영국군 참여로 영국인들은 실시 예정이던 ‘진료무료 약값무료’의 꿈을 접고 ‘진료무료 약값 자비부담’ 선에서 만족했다.

나이팅게일은 자애롭고 따뜻하기보다 성격이 강한 여장부 스타일의 전사였다. 전장에 도착한 의료품은 적법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병원에 보급할 수 있다는 한 장군의 명령에 맞서 손으로 의료품 상자를 부수고 ‘이것이 행정 절차요’라고 말하며 약품을 꺼내갔다는 일화가 있다. 여성과 간호사에 대한 편견, 위생이라는 개념의 정립과 새로운 병원제도의 도입 등을 위해 그는 평생을 싸웠다. 자신의 이상을 아이디어 차원에서 제시하는 것뿐 아니라 통계자료를 통한 설득, 실행을 통한 증명, 그리고 사회적 투쟁을 통해 하나하나 구체적인 현실에서 구현했다는 점에서 나이팅게일의 생애는 위대하다. 위대함 그 이상이다.

글=황인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