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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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7)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 '원숭이 발'
명작 반열에 오른 공포소설영국 작가 윌리엄 위마크 제이콥스는 낯선 인물이다. 주요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도 그의 책이 단 한 권도 보이지 않는다. 《세계 호러 걸작선》 《고전 공포 걸작선》 《세계 단편소설 읽기》 같은 책에 <원숭이 발>이 포함되어 있는 정도다. 우체국 공무원을 그만두고 소설쓰기에 전념한 제이콥스는 어린 시절 템스 강 부두의 기억을 바탕으로 유머러스한 소설 여러 편을 발표했다. 하지만 공포감을 몰고 오는 <원숭이 발>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원숭이 발>은 제이콥스의 대표작으로 1902년에 펴낸 그의 단편소설집 《The Lady of the Barge》에 실린 작품이다.단순한 공포에 그치지 않고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오묘한 작품으로 공포소설로는 드물게 명작 반열에 올랐다. 1980년 미국 <워싱턴 포스트>가 ‘근대 200년 영어문학 걸작 50편’을 선정할 때 <원숭이 발>도 포함되었다. 《모비딕》 《노인과 바다》 《위대한 개츠비》 《폭풍의 언덕》 《주홍글씨》 같은 작품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니 얼마나 대단한 소설인지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이 작품이 인정받고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세 가지 소원’이라는 장치를 통해 운명과 선택, 욕망과 허상을 다각도로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원숭이 발>은 세 가지 소원을 이룰 기회를 얻은 한 가족의 이야기다. ‘별다른 노력없이 그저 말만 하면 세 가지 소원이 이루어진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신중하게 <원숭이 발>을 접하면 좋을 것이다.단순한 주제로 쓴 단편소설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긴장과 두려움을 안기는 묘한 분위기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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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창업자 유일한은 어릴적 미국인 양자로 입양…조선족 동포의 비참한 삶 보고 의약사업 시작
유한양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규모가 크지 않음에도 존경을 받는 이유는 설립자 유일한의 경영이념 때문이다. 유일한은 평생 동안 이룬 기업과 재산을 사회에 내놓았다. 기업의 경영권은 임직원들에게 주었고 후손들은 회사일에 일절 관여하지 못하게 했다.■ 기억해 주세요^^창업자 유일한 씨는 지금도 쓰이고 있는 안티푸라민을 개발했어요. 또 당시엔 생소했던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했어요.홀로 미국 갔다가 돈을 도둑맞았는데우리나라 기업의 역사에서 유일한은 매우 독특한 존재다. 대다수의 사람이 일본 기업들을 모방했던 것과 달리 유일한의 경영은 미국 기업들과 상당히 비슷했다. ‘양행’이라는 이름 자체가 서양으로 간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세상을 떠나면서 남겨 놓은 유산, 즉 전문경영인 체제 그 자체가 미국식 경영의 상징이다. 그의 성장 과정 자체가 미국인이 되어 가는 과정이었다.유일한은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났다. 유일한의 미국 생활은 아주 어릴적부터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유일한의 나이 아홉 살에 홀로 미국으로 떠나보낸다. 그런데 아뿔싸. 배를 타고 미국을 가는 도중 부모가 준 돈을 모두 도둑맞았다. 빈털터리로 미국 땅에 내린 소년 유일한을 미국인 자매가 양자로 입양해서 어른이 될 때까지 키워줬다.그는 완전한 미국인으로서의 삶을 살았다. 미시간대학을 다닐 때 미식축구 선수를 했을 정도였고, 졸업한 뒤 GE에 취직해서 승진도 매우 빨랐다. 직장을 나와 사업을 시작한 곳도 미국이었다. 사업 아이템은 숙주나물 장사였다. 중국인들이 숙주나물을 좋아하는데 당시 미국에서는 구하기가 어려웠다. 유일한의 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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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4) 바둑 인공지능 (AI)
■ 기억해 주세요^^작년 이세돌 9단과 대결해 화제를 모은 ‘알파고’의 실력에 ‘딥젠고’가 도전장을 냈다. 딥젠고와 알파고의 대결은 아니지만 일본의 인공지능 기술수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인공지능이 바둑대회에 출전했다. 3월 21일부터 23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월드바둑 챔피언십’이다. 인공지능과 특정 기사가 1대1로 붙어 승패를 다투는 방식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다른 참가자들과 동일한 자격으로 출전하는 방식이다. 한국· 중국·일본에서 내로라하는 바둑기사 세 명과 일본판 알파고인 ‘딥젠고’ 등 네 ‘명’의 기사가 풀리그로 격돌했다. 한국에서는 랭킹 1위 박정환 9단이 출전했다.딥젠고는 일본의 바둑 AI전문가들은 딥젠고는 알파고에 비해 실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실제 딥젠고는 간신히 꼴찌를 면했다. 대회 개막 전, 프로 기사들과의 연습 대국에서 거둔 승률도 압도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만간 딥젠고가 인간계 최고수의 실력을 넘어서리라는 점에는 모두가 의견을 같이 한다. 계산에 관한 한, 인간의 뇌는 기계적 연산을 넘어설 수 없는 까닭이다. 바둑을 전략게임으로 보지만, 바둑의 속성은 계산이다. 계산 방식이 독특하고 복잡하고 정교하기는 하지만.바둑의 이론과 격언은 귀와 변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중에서도 귀의 중요성이 변에 비해 우위를 점했다. 귀는 중앙과 변에 비해 영역이 좁다. 좁은 지역이라 그만큼 경우의 수와 변수가 적고, 상대적으로 정확한 계산이 가능하다. 미지의 영역이 아니라 ‘아는’ 영역인 것이다. 단련에 의해 인간의 뇌가 거의 모든 변화를 따라잡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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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6)그레이엄 그린 '정원 아래서'
치료의 방편으로 시작한 글쓰기영국 작가 그레이엄 그린은 21세에 첫 시집을 낸 이후 67년 동안 25권의 장편소설을 포함해 60권이 넘는 책을 냈다. 1991년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바로 1년 전에도 단편집과 여행기를 출간할 만큼 열정적으로 집필했다. 그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특별하다. 학생 시절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심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던 그에게 정신과 의사가 치료의 한 방편으로 글쓰기를 권유한 것이다. 그린은 글쓰기를 통해 절망감과 비참한 감정에서 벗어났고, 엄청난 양의 작품을 우리에게 선물했다.시작과 끝을 대강 구상하면 놀라운 스토리가 끊임없이 날아드는 장편에 매력을 느낀 그린. 자신의 본류를 장편소설로 여기면서 열린 결말로 독자를 매혹시키는 단편소설 집필에 어려움을 느낀다고 고백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세계 문학계로부터 장편뿐만 아니라 단편에서도 ‘의심할 여지 없이 최고 수준의 거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레이엄 그린은 49편의 단편을 4권의 단편집에 나누어 발표했다. 기존 단편집에 들어가지 않은 4편을 추가해 53편이 실린 그린의 단편집이 국내에서 출간됐다. 961페이지에 달할 정도로 두꺼운 책에 다채로운 작품을 담았다.삶이 불안정했던 그린의 작품에는 불안함과 공포라는 창을 통과하는 그만의 독특한 시각이 담겨 있다. 그린은 “자신의 단편소설 가운데 어떤 요소가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가독성’을 가장 먼저 꼽았다. 상징이나 모호성, 지루한 묘사를 걷어내고 분명한 상황과 스토리를 통해 세계관을 전한 덕분에 재미있고 잘 읽힌다. 이야기를 하나하나 열 때마다 독특한 매력에 빨려들게 될 것이다.작가 자신이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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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5) 안 소피 브라슴 '숨쉬어'
《이방인》에서 영감을 얻다명작 소설을 읽은 뒤 영혼이 주인공과 함께 멀리 떠나버린 듯 아득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으리라. 책을 읽고 ‘재미있다, 감동적이다’에서 끝나는가, 내가 더 멋진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가.지난주 소개한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을 읽고 강한 영감을 얻은 프랑스 소녀 안 소피 브라슴은 소설쓰기에 들어갔다. 열일곱 살 브라슴이 쓴 《숨쉬어》는 프랑스 메이저 출판사에서 출판돼 돌풍을 일으켰고 17개 언어로 번역됐다.프랑스 문단에 데뷔한 최연소 작가의 작품 《숨쉬어》는 ‘이미 거장의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와 함께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소르본에서 문학을 전공한 브라슴은 스물한 살에 두 번째 소설 《몬스터 카니발》을 발표해 역시 호평을 얻었다.1984년생인 브라슴이 열일곱 살 때 딱 그 나이 친구들을 그린 만큼 《숨쉬어》는 10대의 정서를 날 것 그대로 풍긴다. 미묘한 마음이 방향 없이 흔들리다가 곤두박질치는 모습이 현기증 날 정도로 선명하다.긴 인생에서 10대는 어떤 나이인가. 아직 배우고 충고를 들어야 할 때라는 어른들의 말을 무시하고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지금이 인생의 정점’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이 책을 읽을 때 ‘나는 아직 인생의 초입이고, 많은 것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으로 주인공의 삶을 따라가 보길 권한다. 열여덟 살인 주인공 샤를렌 보에는 살인을 저지르고 감옥에서 지내고 있다. ‘확실히 나는 잔인했다.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잔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한 행동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잔인했다’고 읊조리면서.풍족한 가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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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기타
(53) 중국 문명 이야기
■기억해 주세요^^明나라는 淸나라보다 영토는 작았지만, 관습, 언어, 인종 등이 훨씬 더 ‘중국적’이었다. 오늘날 중국 영토의 많은 부분은 청나라 때 비로소 중국의 영역으로 들어온 지역이다.중국은 문명이다. 국가로 보기에는 지나치게 인구가 많고 영역도 넓다. 서쪽 신장지구의 터키계 이슬람 신도들과 불교 및 내세를 믿는 티베트 주민들, 농경문화와는 거의 접점이 없는 유목민들이 모두 ‘중국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효율적인 통치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삶의 양식이 완전히 다른 민족들이 ‘한 나라’로 묶여있기 때문이다.한족으로 동질화가 가능한가중국 문제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정치학자 로스 테릴(Ross Terrill)에 따르면 현재 상황을 유지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단일성’에 집착한다. 동일한 역사와 동일한 풍습이 있다는, 존재하지 않는 허구를 사실로 포장한다. 예컨대 동서로 네 시간의 시차가 나는 데도 중국 정부는 단일 시간대를 고수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베이징의 시간에 맞춰 ‘새벽 세 시’를 ‘아침 일곱 시’로 인정해야만 한다.외부로부터 유입되는 정보가 없고, 중앙정부가 힘으로 각 지역을 누를 수 있다면 중국은 갈라지지 않는다. 문제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세계 모든 지역의 정보교류와 경제교류 총량이 빠르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과거의 방식은 거의 수명이 다 했다. 그렇다면 중국이 미래에 선택할 수 있는 대내 전략은 무엇일까. 첫째, 연방제 국가로 거듭나는 것이다. 법에 의거해 문화적 인종적 소수파에게 보다 너른 권리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각 지역의 독자성을 인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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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공산정권 들어서자 북한 기업인들 남한으로…SPC·아모레퍼시픽·진로·대한전선 일궈
우리나라 기업들 중에는 북한 출신 기업가들이 세운 곳이 많다. 몇 군데 예를 들자면 파리바게트의 SPC 그룹,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 대한전선, 진로 같은 곳이다. 오늘은 이들의 이야기다.■기억해 주세요^^공산당은 개별적인 기업 활동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아서, 개인의 재산을 모두 빼앗아 국가의 소유로 했다. 그런 곳에서 기업활동은 불가능했다.일본빵집에서 일 배운 허창성SPC라는 이름의 뜻은 삼립-파리바게트 회사다. 허창성이 세운 삼립식품이 그 뿌리이다. 허창성은 황해도 해주 사람인데 어릴 적 일본인 빵집에서 일을 배워 상미당이라는 빵집을 열었다. 물론 장소는 고향인 해주였다.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다시 가게를 차렸다. 빵 만드는 일을 현대화해서 삼립식품이라는 식품기업으로 키워냈다. 허창성의 차남 허영인은 그것을 다시 SPC라는 새로운 개념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개성 사람 서성환은 화장품 사업을 일으켰다. 해방 전 그는 개성에서 어머니 윤독정 여사와 함께 세안수(얼굴 닦는 액체)와 동백기름(머리에 발라서 윤이 나게 하는 기름) 장사를 했다. 해방이 되자 서울의 남대문 시장에서 본격적인 화장품 사업을 시작한다. 회사의 이름은 태평양화학이라고 붙였다. 사업이 잘 됐으나 70년대에 들어 지나친 다각화로 인해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 그것을 차남인 서경배가 맡아서 구조조정을 하고 화장품 사업에만 집중한다. 또 적극적인 해외진출을 시도한다. 그 결과가 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이다.‘참이슬’ 창업자 장씨는 평안도 뿌리함경도 출신 기업가로는 지난번에 칼럼에서 소개한 동양제과의 이양구 말고도 설경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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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타
14세때 일본회사 사환으로 일하기 시작…러시아·베트남·중국서 '초코파이 신화'
한국은 과자에서도 세계적 명품을 배출했다. 초콜릿에 덮인 바삭한 비스킷, 그리고 그 사이에 든 말랑한 마시멜로! 중국에서도 베트남, 러시아에서도 초코파이는 인기 폭발이다. 초코파이는 오리온(옛 동양제과)이 1974년에 만들어 히트시킨 과자다. 오늘은 그 기업을 세운 이양구 회장 이야기다.■ 기억해 주세요^^6·25전쟁, 피난, 부도위기 같은 온갖 역경을 뚫고 비즈니스를 키워간 것은 이양구의 기업가 정신이었다.16세 때 식품가게 차려이양구는 1916년 함경북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열네 살에 함흥물산이라는 회사에 사환(인턴사원에 해당)으로 취직했다. 일본인 사장 시노자키는 원칙에 충실했다. 정직과 신용을 목숨처럼 여겼고 직원들에게도 같은 것을 요구했다. 소년 이양구도 그런 사람이 돼 갔다. 사장의 신임을 얻어 스무 살 되던 해에 간부 자리에 올랐지만 2년 뒤(1938년) 그곳을 나와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식료품가게였는데 사업을 잘해서 재산이 불어났다. 함흥 인근에 20만평의 땅을 샀을 정도였으니 대단한 성공이었다.해방이 되면서 사업을 다시 시작하려 했지만 김일성 공산정권 때문에 불가능했다. 1947년 함흥의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 38선을 넘었다. 서울로 온 그는 남대문시장에서 자전거 행상으로 과자장사를 시작했다. 제법 자리를 잡을 만하자 1950년 6·25 전쟁이 터졌다. 이번에는 부산으로 피란을 가서 설탕장사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입 설탕을 팔다가 1953년 삼성물산의 이병철이 설탕의 국산화에 성공하자 독점판매권을 얻어서 사업을 늘려 갔다. 설탕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어린 시절 함흥물산에서 배운 정직과 신용이 성공의 비결이었다.흑자전환&h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