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항로(Arctic Sealanes 또는 Northern Sea Route)는 북극해를 지나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북미를 잇는 해상 수송로를 말합니다. 20세기엔 옛 소련이 원자력 쇄빙선을 도입하며 항로를 관리하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기후변화 여파로 북극 빙하 면적이 급격히 줄면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과거엔 여름철에나 운항할 수 있었고 군사 목적의 항로 활용에 머물렀다면 이제 상업용 물류 항로로 조명받기 시작한 겁니다. 글로벌 물류·통상의 미래를 바꿀 대안 항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북극항로의 경제적 이점은 기존 수에즈 운하 항로와 비교해 보면 확연합니다. 예를 들어, 부산항에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까지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면 약 2만㎞인데, 북극항로를 통하면 약 1만3000㎞로 줄어듭니다. 운항 기간도 수에즈 항로는 약 30~40일,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20~25일 걸립니다. 그만큼 연료비도 덜 들지요.
하지만, 당장은 수익성을 자신할 수 없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1년 내내 운항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겨울철엔 북극해에 두꺼운 얼음이 덮여 내빙선이 필요하고, 쇄빙선 동반도 필수적입니다. 쇄빙선(Icebreaker)은 말 그대로 얼음을 깨부수며 나아가는 배입니다. 내빙선(Ice-Class Ship)은 쇄빙선이 지나간 자리나, 떠다니는 얼음 조각이 있는 수역을 안전하게 지날 수 있도록 선체가 강화된 선박을 말합니다. 선박 앞부분과 외벽 철판을 일반 배보다 훨씬 두껍게 만들어 일반 선박보다 건조비가 비쌉니다. 결국 운항 비용이 커지게 됩니다.
겨울철엔 운항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는데요, 일정한 운항 시간이 생명인 컨테이너 물류에는 치명적입니다. 인프라 부족도 문제입니다. 사고가 났을 때 구난·구조 시설, 수리 조선소, 통신망, 정박 시설 등이 북극항로 주변엔 매우 열악하죠. 지정학적 리스크도 없지 않습니다. 수에즈 운하 봉쇄 등 중동 리스크, 아덴만의 해적 위협 같은 요소는 없지만, 러시아와 서방 국가 간 갈등이 북극항로를 위험에 빠트릴 수도 있어요.
전혀 다른 문제도 있습니다. 바로 북극 생태계 파괴 가능성과 기후변화에 미칠 악영향입니다. 배가 엔진을 돌리기 위해 중유를 태우면 검은 재(찌꺼기)가 나오는데, 이를 블랙 카본(Black Carbon, 검은 탄소)이라고 합니다. 이게 눈과 얼음 위에 쌓이면 마치 여름에 검은색 옷을 입은 것처럼 태양의 열기를 반사하지 못하고 흡수하게 됩니다. 그러면 북극 빙하가 훨씬 빠르게 녹을 수 있습니다.
또 선박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낮은 기온 때문에 자연 분해가 매우 어렵고, 구조와 방제작업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됩니다. 생태계 교란과 소음 피해도 예상됩니다. 이런 이유로 나이키나 H&M, 갭 등의 주요 화주(운송 화물의 주인)는 자사 제품을 북극항로로 보내지 않겠다는 기업 서약에 참여했습니다. 상당 규모의 화물 운송량이 보장될지 미지수란 얘기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전체 해빙이 녹는 7~11월의 여름·가을철 운항이 주로 이뤄지고, 수송 화물도 일반 컨테이너에 실리는 물품이 아니라 러시아산 액화천연가스(LNG), 석유, 철광석 등 원자재가 주를 이룹니다.
이번 국적선사의 북극항로 시범 운항은 컨테이너선으로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당장은 정기 운항이 어렵더라도 미래에 대비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날짜가 며칠 지연되어도 큰 문제 없는 비정기 특수화물 시장을 공략해 본다는 의미가 큽니다. 해양 수송의 주도권을 우리나라가 미리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북극항로와 관련한 뉴스가 나올 때 이와 같은 기초 이해가 있으면 한결 뉴스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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