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경자유전'이라니...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8월 22일 충남 홍성의 한 마을을 찾아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한 현장 농업인 간담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단군 이래 처음이라는 농지 전수조사와 농지법 개정이 최근 농촌지역과 사회에서 큰 갈등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이 투기 목적으로 논밭을 소유하는 것을 막고 농지와 관련한 각종 데이터도 잘 구축하겠다는 제도 개선의 뜻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고령과 건강 문제 때문에 농지를 관행적으로 임대해온 농지 소유주들이 자칫 땅을 강제매각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겨나면서 농민들의 반발이 커졌습니다. 최근 정부는 투기 목적이 아닌 관행적인 임대차나 휴경(농사 짓지 않는 농지)에 대해서는 강제처분을 유예해주기로 한발 물러섰습니다.

이번 이슈는 이재명 대통령이 헌법상의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강조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경자유전이란 용어는 생소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토지제도와 농정(農政)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개념이기에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경자유전은 말 그대로 농사 짓는 사람이 농지를 소유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실제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게 하고, 농사 짓지 않는 사람이 투기나 임대 목적으로 농지를 소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제도적인, 철학적인 기반이죠.

농업이 기본이었던 근대 이전 사회에선 토지가 가장 중요한 생계 수단이자, 지배층의 권력 기반이었습니다. 농민이 땅을 가져야 나라가 안정된다고 생각했죠. 일제강점기 때는 수탈이 심한 소작농 제도로 인해 농민의 고통과 불만이 어마어마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수립 이후 농지개혁법을 만들고, 지주의 땅을 유상매수·유상분배(돈을 주고 사서, 돈을 받고 나눠준 것) 방식으로 소작농들에게 나눠줘 소유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역사적인 경험과 사회 이념을 중시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드물게 경자유전 원칙을 헌법에 명문화했습니다. 헌법 제121조 1항은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하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농지가 단순한 사유재산이나 투기 수단이 아니라, 식량 안보와 직결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을 헌법 차원에서 선언한 겁니다.

하지만, 복잡해지는 현대사회의 소유와 경작 관계를 일률적으로 강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농촌지역 고령화와 자본농·기술농의 부재가 이런 원칙을 지키는 데 장애가 됩니다. 현실에선 농사를 직접 짓지 않는 은퇴 농민이나 도시민이 농지를 소유 또는 상속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자유전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면 대규모 자본이나 기업, 첨단 스마트팜 기술을 가진 청년농이 농지를 확보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농지에 대한 수요가 농민층으로만 제한돼 농지 가격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도시민이 주말 농장이나 은퇴 뒤 귀농을 위해 매입한 토지가 규제에 묶이면서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도 끊이지 않아요. 규제의 역설도 있습니다. 서류상으로만 영농 계획서를 제출하고 실제로는 농사를 짓지 않는 위장 농민이나 투기세력이 생겨난 게 그런 예입니다.

경자유전 원칙은 역사적으로 농지개혁의 기초가 됐고, 평등사회로 나아가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또한 농업 생산성을 높여줘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경제시스템 속에서 현실과의 괴리는 갈수록 커졌습니다. 제도 보완과 개선을 동시에 요구받는 상황입니다.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