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의 풍선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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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전세난 속에 집주인이 ‘갑(甲)’으로 군림하고 있다. 미취학 아동이 있거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입자를 기피하는 일은 심심찮다. 조그만 오염이나 낙서에도 집 전체 도배 비용을 변상하게 하는 특약을 강요하고, 계약 직전 조건을 변경하는 사례가 잦아졌다. 세입자의 통장 사본과 신분, 직업까지 면접 보듯 검증하는 사례도 빈번해졌다.

-2026년 5월 5일자 한국경제신문-

시장에서 재화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지점에서 결정됩니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을 늘리고 줄이면서 최적의 균형을 찾습니다. 그러나 정부의 인위적 규제로 가격을 통한 수급 조절 기능이 작동하지 못하면, 가격 이외의 다른 기준으로 거래가 이뤄지는 ‘비가격경쟁’이 발생합니다. 최근 부동산 시장에서 발생하는 비가격경쟁의 원인과 문제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전세시장에서 고장난 가격 기능과거에 부동산 전세시장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가격을 통해 수급을 조절하는 시장이었습니다. 전세를 얻으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전셋값이 오르고, 이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타 지역으로 이동하거나 매매로 돌아서는 동시에 전세 공급도 늘어나면서 최적의 균형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각종 정부 정책으로 가격 조절 기능이 고장 났습니다.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으로 가격 인상 폭을 묶은 상황에서, 지난해 정부는 수도권에서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집을 살 경우 6개월 이내 입주하도록 의무를 부과했습니다.

이어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해 대출받았든 안 받았든 아파트를 사면 2년간 실거주하도록 했습니다. 이주비 대출도 최대 6억원으로 제한했습니다. 이주비 대출은 재건축·재개발 조합원이 기존 주택을 철거하기 전 다른 곳으로 이사하면서 필요한 돈을 빌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 같은 규제는 임차인의 안정적 거주를 보장하고, 집을 사고팔아 돈을 버는 ‘투기’를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가격이 묶인 데다 집주인의 실거주를 강요하다 보니 전세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서울 아파트 전세 물건은 1만5403개로 2023년 통계 작성 이후 최악의 품귀 상태입니다. 성동구 센트라스처럼 2529가구 규모의 대단지에서도 전세 매물이 1개뿐인 상황입니다.“옛날 같으면 전셋값 올리면 되는데”지금처럼 정부 정책으로 가격을 통한 효율적 자원 배분이 불가능해지면 가격이 아닌 다른 기준으로 수요자와 공급자가 선별됩니다. 기사에서 언급된 세입자 신원 조회나 전문직 선호 현상이 대표적입니다. 가격을 더 올릴 수 없는 집주인이 세입자의 직업과 통장 사본, 자녀 유무를 확인하는 이른바 ‘세입자 면접’을 보는 겁니다.

전문직 독신이나 무자녀 가구를 선호하는 것은 집의 노후화 가능성을 줄여 사후 관리 비용을 아끼려는 경제적 선택입니다. 결국 가격으로 승부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은 집주인의 사적인 취향이나 조건에 맞춰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립니다. 어린 자녀가 있거나 반려동물을 키우는 서민은 돈이 있어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차별을 겪게 됩니다.

비가격경쟁은 시장의 비효율을 낳습니다. 별다른 규제가 없던 시절, 집주인은 집을 험하게 쓸 세입자를 받을 ‘위험’을 미리 전셋값에 반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신원 조회 등의 방식으로 직접 검증에 나서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거래비용이 발생하게 됩니다. 비가격경쟁이 비정상적 거래를 만든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전세 매물이 간절한 임차인은 가격 상한제하에서 공식적인 임대료 외에 뒷돈을 요구받거나, 수리비 전액을 전가하는 특약을 강요받을 수 있습니다. 수억 원의 보증금을 내고도 냉방 시설 설치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경제학에선 “가격은 수요자와 공급자에게 생산과 소비를 조절하는 ‘신호등’ 역할을 한다”고 설명합니다. 가격의 배분 신호가 마비되면 수급 불균형은 해결될 수 없고, 세입자 면접 같은 비정상적 거래도 이어질 것입니다. 정부의 인위적인 시장 개입이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비전문직, 유자녀 가구처럼 평범한 국민에게 더 가혹한 경쟁 환경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NIE 포인트
[수능에 나오는 경제·금융] 정부 규제로 가격 묶이면 '비가격 경쟁' 불가피
1. 비가격경쟁이 발생하는 상황을 설명해보자.

2. 집주인의 거래비용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3. 서민을 위한 규제가 오히려 피해를 키운 사례를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