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하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들 동네의 대부분이 조용한 골목이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특히 성수동은 수제화 거리의 낡은 공장과 창고를 예술인들이 감각적으로 꾸미면서 독특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습니다. 개성 넘치는 음식점과 카페와 공방 등이 사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며 인기 상권으로 급부상한 거죠.
하지만 상권이 유명해지고 유동인구가 늘면서 가게 임대료와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사람들과 독특한 문화를 유지해오던 소규모 상점들은 임대료 상승에 밀려 떠나게 됐어요. 이제는 높은 월세를 감당할 여력이 있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정도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죠. 아마 최근 성수동에 가 본 분들은 느꼈겠지만 유명 브랜드의 팝업 매장이 우후죽순 들어섰고, 전반적인 물가도 꽤 비싸졌어요. 초기 예술인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골목 상권의 고유한 매력이 사라지면서 성수동만의 개성과 특색을 잃게 됐고, 상권 활성화에도 제동이 걸렸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처럼 특정 지역이 개발되면서 가치가 올라가고 임대료가 급상승하면서 이를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합니다. 국립국어원은 젠트리피케이션을 ‘둥지 내몰림’이라고 표현했는데요, 비자발적 이주를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젠트리피케이션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화려한 핫플 뒤에 숨은 이 이슈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볼게요. 끊임없이 핫플 삼키는 젠트리피케이션
규제가 정답 아닌데…'공존의 길' 없을까
한때 가로수길은 트렌디한 감성을 담은 소규모 디자이너 숍과 카페 등으로 가득한 대표적 핫플이었습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을 가속화한 건 ‘애플 사건’이었어요. 애플은 2018년 1월 가로수길에 국내 첫 공식 매장을 연 후 해당 건물을 20년 장기 임대하는 계약을 맺으며 20년치 임대료인 600억 원을 선납했거든요. 월세로 환산하면 매달 2억5000만원에 달했죠.
그러자 다른 건물주들이 “우리도 월세를 애플만큼 받아야겠다”며 일대 임대료가 폭등하기 시작한 겁니다.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한 이들은 쫒겨나 가로수길의 안쪽 도로인 ‘세로수길’ ‘나로수길’ ‘다로수길’ 등 골목상권으로 밀려났어요.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의 후폭풍은 가로수길뿐 아니라 성수동, 북촌, 연남동, 망원동 등 앞서 언급한 지역들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도심 부활 vs 원주민의 눈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ion)은 지주, 신사 계급을 뜻하는 영어 단어 젠트리(gentry)에서 유래했어요. 낙후하던 구도심 지역이 재개발이나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임대료가 가파르게 오르자 오래전부터 거주해온 주민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른 지역으로 밀려나는 현상입니다.
이 용어는 1964년 영국의 도시 사회학자 루스 글라스가 1960년대 런던 도심 도시 재개발 과정을 설명하며 처음 사용했어요. 당시 런던은 도심에 노동자계급이, 교외에 중산층과 상류층이 살았거든요. 도로가 건설되면서 접근성이 높아진 도심에 기업 및 편의시설 등이 생기자 중상류층은 도심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낙후한 주택을 고치거나 집을 새로 짓는 움직임이 이어졌습니다. 도심의 임대료가 오르면서 예전부터 살던 노동자계급은 높아진 주거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밖에 없었죠. 결국 이 일대는 부동산 개발업자에 의해 고급 주택과 건물로 탈바꿈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인데요, 상업지역뿐 아니라 주거지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고 있어요. 낡고 오래된 주택 등이 재개발이나 재건축 사업을 통해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바뀌고 있잖아요. 부동산 가치가 높아지면서 주택구매 비용이나 임대료 등 주거비가 오르고, 그 결과 중산층이나 고소득자가 원주민을 대체하는 거죠.
임대료 묶는 정책, 부작용 우려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공존합니다. 일단 황폐화된 구도심을 되살릴 수 있어요. 낙후하던 지역의 부동산 가치가 오르고 관련 인프라도 개선됩니다. 하지만 지가와 임대료가 상승하다 보니 예전부터 거주해오던 원주민은 다른 곳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성수동이나 가로수길처럼 대기업 프랜차이즈로 채워지면서 골목상권의 고유한 개성과 특색도 사라지겠죠. 그럼 사람들은 외면할 테고, 지역 경제의 활성화 또한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상가건물의 임대차 보호 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고, 임대료 인상 상한선을 9%에서 5%로 낮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개입이 순기능만 있는 건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반시장적 정책을 동원하는 게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일본은 임대료 문제가 건물주와 임차인 간 지역사회의 약속이어서 함부로 올리지 못하거든요. 정해진 규범에 따라 협의하는 거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NIE포인트 1. 역세권, 학원가, 오피스 등 주변 상권의 특징을 생각해보자.
2. 재건축와 재개발 사업은 어떻게 다른지 찾아보자.
3. 도심 공동화를 극복하는 도시재생사업에 대해 알아보자.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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