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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그래픽=추덕영 한국경제신문 기자
“주사 한 번 맞고 10kg 감량.”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해 할리우드 스타들이 극적인 체중 감량의 비결로 꼽으며 세계적 인기를 끄는 약이 있습니다. 덴마크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와 미국 제약사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 같은 비만 치료 약물입니다. 병원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수요가 급증하고, 일부 약국에서는 품귀 현상까지 벌어집니다. 최근 주사가 아닌 알약 형태의 ‘먹는 위고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과거에도 다이어트 약은 많았지만, 이번에는 많이 다릅니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우리 몸의 식욕 조절 호르몬을 활용합니다. 식사 뒤 분비되는 GLP-1이라는 호르몬과 비슷한 작용을 해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고 식욕을 줄여주는 원리입니다. 덜 먹어도 배고프지 않게 하는 것이죠. 특히 마운자로는 GIP라는 또 다른 호르몬에도 작용해 체중감량 효과가 더 크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예전 다이어트 약이 식욕 억제제나 지방 흡수 차단제였다면, 최근 비만약은 몸속 대사 체계를 바꾸는 방식입니다.

수요가 폭증하면서 사회문제도 불거지고 있습니다. 정상 체중인데도 미용 목적으로 약을 처방받는 사람이 늘고, 10대 청소년 사이에서는 뼈가 보일 정도로 마른 몸을 추구하는 ‘뼈말라’ 문화가 확산할 조짐도 보입니다. 결국 정부가 나섰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이 약들을 오남용 우려 의약품으로 지정해 엄격하게 관리할 예정입니다.

이제는 힘들게 운동하거나 혹독한 식단 관리를 하지 않고도 주사 한 번, 알약 하나로 살을 뺄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랜 고통을 끝내줄 ‘마법의 약’이겠지만 경제·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이 약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정말 건강을 위한 치료일까”, “돈 있는 사람만 날씬해지는 사회가 되는 것 아닐까”라는 질문도 커지고 있거든요. 비만약 열풍의 이면에 숨은 논란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소비·산업을 뒤흔드는 '살 빼는 주사'
건강 혁신인가, 새로운 불평등인가
Getty Images 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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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와 마운자로 같은 신약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천문학적 연구비와 오랜 시간이 투입된 결과물이죠. 제약사는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내기 위해 일정 기간 다른 회사가 똑같은 약을 만들지 못하도록 특허권을 통해 독점적 지위를 누립니다. 독점시장에서는 공급자가 가격 결정권을 갖기 때문에 약값이 매우 비싸게 책정됩니다. 혁신에 대한 보상이라는 긍정적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소비자 부담을 키우는 문제도 생깁니다.

그래서 비만약의 한 달 투약비는 국내 기준 수십만 원에 달합니다. 체중감량이 절실한 저소득층 환자는 비싼 약값 탓에 치료제를 구경하기 어려울 겁니다. 반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쉽게 약을 구비해 건강과 미용 효과를 모두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비만을 질병으로 본다면 누구나 치료받을 권리가 있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제력이 접근성을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지며 건강 불평등이 심화할 수 있습니다.

건강보험 적용과 정부 규제 딜레마

현재 비만 치료제 시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돈이 된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글로벌 제약사들은 물론 국내 제약업체까지 더 싸고 강력한 약을 만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거든요. 하지만 소비자는 약의 부작용이나 정확한 효능을 의사만큼 잘 알지는 못합니다. 결국 정보 비대칭으로 자원이 잘못 배분되는 시장실패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비만을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보고 국가 건강보험을 적용해 누구나 저렴하게 처방받아야 한다는 찬성 의견과 미용 목적의 오남용과 세금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이 맞서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정책적 딜레마도 존재합니다. 비만은 당뇨나 심혈관 위험을 높이는 만성질환인데, 정부가 나서 지나치게 규제한다면 치료 기회나 권리까지 가로막힐 수 있다는 지적입니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정부의 개입과 시장의 자율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비만 치료제에 울고 웃는 산업

비만약은 다른 산업들의 흥망성쇠까지 좌우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은 곳은 식품 산업입니다. 달고 짠 고열량 간식이나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등 정크푸드의 소비가 줄고 있기 때문입니다.

재미있는 현상도 있습니다. 지방뿐 아니라 근육까지 빠지게 하는 비만약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닭가슴살 같은 단백질 식품을 더 많이 소비하고, 근력운동을 위해 피트니스센터를 찾습니다. 비만 치료제가 식욕을 억제해 정크푸드에 대한 수요 자체를 줄인다면, 반대로 근육 손실을 막기 위한 단백질 식품이나 피트니스 산업은 비만약과 함께 소비가 늘어나는 보완재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항공업계에서는 전 세계 탑승객의 평균 체중이 줄어들면 비행기를 띄우는 데 필요한 막대한 항공유를 절감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의 선택 변화가 기업의 전략과 산업 구조까지 흔드는 셈이죠. 상품 하나가 산업 전체를 재편하는 나비효과를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비만약은 해방일까, 또 다른 강박일까

비만을 게으름이나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여기는 시선은 사실 흔합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의 비만은 싸고 자극적인 가공식품, 과도한 노동시간, 걷기 힘든 도시 구조 등 복합적인 사회적 원인에서도 비롯됩니다. 근본 원인은 외면한 채 살 빼는 약이라는 결과만 소비한다면 결국 실패의 책임은 온전히 개인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체중 관리가 도덕적 의무처럼 여겨지는 사회에서 특히 여성에게 그 압박은 강하게 작용합니다. 소셜미디어(SNS)는 극도로 마른 몸을 전시하고, 패션계에서는 잠시 불었던 자기 몸 긍정주의(Body Positivity,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 열풍이 사그라들고 다시 마른 모델들이 런웨이를 점령하고 있습니다.

비만약 열풍은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건강은 개인 책임일까요, 아니면 사회가 함께 해결할 문제일까요. 정부는 안전을 위해 어디까지 규제해야 할까요. 날씬함을 지나치게 이상화하는 사회 분위기는 건강한 것일까요. 비만약은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 체중이라는 강박에 더 강하게 옭아매는지도 모릅니다. 기술이 인간의 몸을 바꾸기 시작한 시대엔 그 약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NIE 포인트1. 비만약에 국가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할까?

2. 비만은 개인의 의지 문제일까, 사회 구조적 문제일까?

3. 돈 있는 사람만 더 건강해지는 사회는 공정할까?

김정은 한국경제신문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