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 코의 비밀
코끼리 하면 길게 늘어진 코와 커다란 귀, 묵직한 몸집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 거대한 동물의 시력이 상당히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의외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코끼리의 시력은 사람의 시력 검사표 기준으로 환산하면 약 0.1 정도에 불과하다. 안경 없이 일상생활이 불편할 정도로 눈이 나쁜 사람과 비슷하다. 특히 어두운 밤이나 시야가 가려진 환경에서는 주변을 파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코끼리의 코 주변에는 약 1000개에 달하는 짧은 수염이 빽빽하게 나 있는데, 이 수염이 단순한 털이 아니라 물리적 움직임을 통해 주변 환경을 감지하는 ‘촉각 센서’ 역할을 한다는 게 연구팀의 결론이다. 느껴서 보는 방식을 통해 부족한 시각을 완벽하게 보완하는 셈이다.
연구팀은 수염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정교한 실험을 수행했다. 우선 수염 내부를 3차원으로 꿰뚫어 볼 수 있는 마이크로 CT 장비를 사용해 수염의 층별 밀도를 측정했다. 수염에 아주 미세한 힘을 가하면서 그 자극이 뿌리까지 어떻게 전달되는지 확인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진행했다. 가상의 공간에서 수염이 휘는 모든 과정을 수학적으로 계산해본 것이다.
분석 결과 코끼리 수염의 중심부는 바깥쪽보다 12배나 더 단단했다. 이처럼 안팎의 강도가 전혀 다른 이중 구조는 신호를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설계다. 먼저 부드러운 바깥쪽 층은 아주 미세한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신호를 만들어내는 입구 역할을 한다.
그러면 단단한 중심부가 이 신호를 중간에 흩뜨리지 않고 뿌리까지 곧게 전달하는 고속도로 역할을 해준다. 진동이 중간에 금방 사라지는 일반적인 털과 달리 코끼리의 수염은 이런 협력 구조 덕분에 작은 자극도 신경까지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 실제로 코끼리 털의 민감도는 일반 털의 2.4배 수준이었다.
코끼리의 수염을 이용해 시각을 보완한다는 사실은 행동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코끼리는 코를 좌우로 천천히 흔들며 주변을 쓸어보듯 탐색하고, 물체에 수염을 가볍게 접촉해 표면의 거칠기나 형태를 확인한다. 특히 코끼리는 이 수염 레이더를 통해 0.1㎜ 수준의 아주 미세한 표면 차이까지 구별해낼 수 있다.
0.1㎜는 머리카락 한 올 정도의 얇은 두께인데, 눈으로 보지 않고 수염 끝에 느껴지는 감각만으로 알아차린다. 좁은 길을 지날 때는 코를 앞쪽으로 뻗어 장애물과의 거리를 파악하고, 먹이를 집을 때는 눈으로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물체도 정확히 집어 올린다. 덕분에 어두운 환경에서도 정교하게 주변을 인식할 수 있다.
이 연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코끼리의 감각 시스템 일부를 밝혀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구팀은 이 수염 구조를 그대로 모방해 3D 프린팅으로 ‘인공 촉각 센서’를 제작했다. 코끼리의 수염처럼 겉은 유연하고 안은 단단하게 만들어 민감하게 느끼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기능을 구현했다.
기존 촉각 센서는 민감하면 쉽게 망가지고, 튼튼하면 미세한 자극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 구조는 높은 민감도와 튼튼함이라는 두 가지 한계를 동시에 극복했다. 이 센서는 카메라가 작동하기 힘든 어두운 곳이나 연기, 먼지가 가득한 재난 현장에서 로봇이 주변을 감지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우리는 보통 ‘본다’는 행위를 눈과 카메라 같은 시각 장치에만 의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코끼리는 전혀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인식한다. 눈으로 보는 대신 ‘느끼면서 보는’ 것이다. 이번 연구는 감각이 하나의 방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쩌면 미래의 기술 역시 카메라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향이 아니라 코끼리의 수염처럼 다양한 감각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발전할지도 모른다. 코끼리의 작은 수염이 거대한 로봇 기술의 방향을 바꾸는 중요한 힌트가 되고 있다. √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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