엥겔계수와 생활수준
 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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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한 뒤 잊혀진 엥겔계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비지출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계수가 지난해 31년 만에 30%를 넘어섰다. 고령화와 경기 부진으로 전체 소비는 위축됐는데 식료품과 외식 물가가 올라 식비 지출은 늘어났기 때문이다. 얇아진 지갑에도 외식과 배달은 줄이지 않는 등 생활 양식이 변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2026년 3월 19일 자 한국경제신문-

지난해 한국의 엥겔계수가 30.3%를 기록하면서 1994년 이후 처음으로 30%를 넘어섰다고 합니다. 엥겔계수는 경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지표 중 하나입니다. 엥겔계수는 어떻게 태어났고, 왜 중요한 지표일까요.

엥겔계수라는 개념의 기원은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857년 독일 작센 지역 통계국장이던 에른스트 엥겔은 벨기에 노동자 가구를 대상으로 가계 조사를 하던 중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가계소득이 낮을수록 전체 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소득이 높을수록 그 비중이 낮아진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러한 내용을 ‘벨기에 노동자 가족의 생활비’라는 논문에서 발표했고, 이후 이 같은 현상은 ‘엥겔의 법칙’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또 전체 지출 대비 식료품비 비중은 그의 이름을 따 ‘엥겔계수’로 불립니다. 최근에는 엥겔계수를 산출할 때 경우에 따라 식료품비에 외식비까지 포괄하기도 합니다.

이 법칙이 성립하는 이유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사람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소득이 낮더라도 식비를 완전히 줄일 수 없는 것이지요. 반대로 소득이 늘어난다고 해서 식사량이 무한정 증가하지도 않습니다. 예컨대 연봉 1억원인 사람이 5000만원을 버는 사람보다 2배 많은 음식을 소비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한 끼 밥값으로 좀 더 많은 돈을 쓸 수는 있겠지만요.

엥겔계수는 한 국가나 가계의 생활수준을 가늠하는 데 활용됩니다. 이 숫자가 낮을수록 식비 외에 교육·문화·여가 등에 더 많은 지출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즉 단순한 생존을 넘어 삶의 질을 높이는 소비가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원리가 국가 단위에서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국민소득이 높은 선진국일수록 엥겔계수가 낮고, 반대로 이 수치가 높을수록 개발도상국에 가까운 것으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2016년 미국 농무부가 식료품비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미국과 영국의 엥겔계수는 각각 6.4%, 8.4%로 10%를 밑돌았습니다. 한국(13.4%)과 일본(14.2%)은 10%대였고, 중국은 22.6%로 20%를 넘어섰습니다. 인도네시아(31.7%), 아제르바이잔(40.5%), 나이지리아(58.9%) 등 개발도상국일수록 그 비중은 더욱 높아졌습니다.

우리나라 가계는 작년 월평균 366만원을 지출했고, 이 가운데 식료품과 외식비로만 111만원을 쓰면서 엥겔계수가 30.3%를 기록했습니다. 한국의 엥겔계수가 상승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요인은 물가입니다. 코로나19가 본격화한 2020년 이후 소비자물가는 16.7% 올랐지만, 먹거리 물가는 이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했습니다. 농축수산물 가격은 26% 올랐고,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도 각각 24%, 25% 상승했습니다. 필수재인 식비를 줄이기 어려운 상황에서 가계는 다른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엥겔계수가 높아진 것입니다.

소비 행태의 변화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주택이나 자동차처럼 큰 지출은 미루는 대신,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작은 사치’ 소비가 늘고 있습니다. 한때 유행하던 ‘두바이 쫀득 쿠키’처럼 가격은 비싸지만, 경험 자체에 가치를 두는 소비가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러한 흐름은 외식과 디저트 소비 증가로 이어지며 식비 비중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됩니다.

고령화 역시 중요한 배경으로 꼽힙니다. 연금소득에 의존하는 고령 가구는 상대적으로 문화·여가 소비보다 식생활 중심의 지출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제로 한국보다 먼저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도 지난해 엥겔계수가 45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엥겔계수 상승은 단순한 통계 변화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가계가 교육이나 문화, 미래를 위한 투자에 돈을 쓸 여력이 줄어들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수시장 위축으로 이어져 경제 전반의 성장에도 부담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물가안정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가계의 실질소득을 높이고, 소비구조를 다양화하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다만 최근에는 엥겔계수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엥겔이 이 법칙을 발견한 19세기와 달리, 오늘날에는 외식과 배달 음식이 일상화됐습니다. 과거에는 가정에서 직접 조리하던 식사가 이제는 서비스 형태로 제공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가 경제적으로 발전하면서 식사도 ‘분업’이 이뤄지게 된 것이죠. 그런데 이 과정에선 식비에 음식 재료비뿐 아니라 조리·서빙·배달 같은 인건비도 반영됩니다.

국가별 경제 구조의 차이도 고려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은 곡물 자급률이 20% 안팎에 불과해 주요 식량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기후변화로 국제 농산물 가격이 오를 경우 국내 식료품 가격도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요인을 감안하지 않은 채 엥겔계수만으로 국가의 경제 수준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입니다.NIE 포인트
[수능에 나오는 경제·금융] 소비 중 식료품비가 30%, 뒷걸음질 친 삶의 질
1. 소득이 늘어날 때 식료품비 지출 비중이 낮아지는 이유를 설명해보자.

2. ‘작은 사치’ 문화 이면의 심리적·경제적 배경을 토론해보자.

3. 엥겔계수의 한계에 대해 공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