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풍경을 바꾼 신기술
가스등, 19세기 대도시에 본격 확산
기차는 유럽에 교통혁명 일으켜
철도의 부상
탄광서 운하로 가는 지선으로 출발
1825년 영국에서 상용노선 개통
사용처 확산한 증기기관
증기선으로 증기기관 상용화
고정관념과 거부감이 확산 반대
가스등, 19세기 대도시에 본격 확산
기차는 유럽에 교통혁명 일으켜
철도의 부상
탄광서 운하로 가는 지선으로 출발
1825년 영국에서 상용노선 개통
사용처 확산한 증기기관
증기선으로 증기기관 상용화
고정관념과 거부감이 확산 반대
가스등의 확산 속도는 경이적이었으나 더 빨리 유럽의 풍경을 바꾼 신기술이 있었다. 증기기관을 적용한 기차였다. 검은색의 거대한 뱀들은 대자연을 누비면서 꿈틀거리며 입에서 연기를 뿜어냈다. 기차가 돌진하는 소리는 고요함을 깨뜨렸다.
증기기관이 처음 상업화된 건 1712년이었지만, 증기기관이 경제활동에 긍정적 효과를 미치기까진 시간이 필요했다. 영국의 일인당 총생산 증가가 눈에 띄게 가속화되었을 때는 1830년대 들어선 이후였다. 조지 스티븐슨은 1814년에 증기기관차를 제작했지만, 실용화의 물꼬를 튼 것은 1820년 철도 레일이 깔리면서다. 탄광이나 제철소에서 운하에 다다르기 위한 지선(支線) 운송 수단으로 주로 쓰이던 증기기관차는 철로가 확장되면서 운송수단으로서의 위상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1825년 영국 더럼주의 두 작은 마을인 스톡턴과 달링턴 사이에 최초의 철도 노선이 개통됐다.
1829년 철도 운송 경쟁에서 스티븐슨의 ‘로켓’이 승리했고, 이어 1830년 이 증기기관차는 영국의 대표적 대도시 리버풀과 맨체스터 사이를 운행하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에서는 처음엔 매우 짧은 노선만 건설됐는데, 이 노선은 말이나 도보로도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1835년에는 뉘른베르크와 퓌르트 사이에, 1837년에는 라이프치히와 드레스덴 간에 철로가 놓였다. 같은 해 파리와 생제르맹이 철도로 연결됐고, 1838년에는 베를린과 포츠담, 빈과 바그람 사이에 철도가 건설됐다.
처음에는 철도 노선은 신기한 오락거리로 여겨졌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빠른 속도로 실용화가 이뤄졌다. 1839년 볼티모어와 필라델피아 사이에 최초의 침대차가 운행됐고, 로버트 풀턴이 만든 최초의 증기선인 ‘노스 리버 스팀보트’(후일 클레몬트호로 개칭)가 등장했다. 이 증기선은 1807년 뉴욕에서 올버니까지 허드슨강을 항해했다. 범선으로 4일 걸리던 240km 거리를 32시간에 주파했다. 곧이어 최초의 해양 증기선 ‘피닉스’호가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최초로 해외 국가를 연결한 국제선 증기선도 미국산인 ‘사바나’호(돛과 증기기관 병행)였다. 이 배는 1818년 뉴욕-리버풀 항로를 26일 만에 운항했다. 영국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 기간 여객용 증기선의 수를 20척에서 300척 이상으로 늘렸다. 1833년에는 최초의 증기선 군함을 건조했다.
선박 프로펠러의 발명에 힘입어 증기선은 세계적인 주요 교통수단이 됐다. 합스부르크 제국령이던 트리에스테 출신인 요제프 레셀은 1829년 초에 프로펠러를 사용하는 데 성공했지만, 오스트리아 경찰은 프로펠러선의 시범 운항을 금지했다. 하지만 1830년대 후반 영국에서 시범 운행이 이뤄졌고, 레셀이 도입에 실패한 지 10년 만에 최초의 스크루 증기선이 진수됐다.
증기선이 범선을 능가한 것은 18세기 후반이었다. 자연력에 의존한 범선이 스케줄을 정확히 지키기 어려웠던 반면, 증기선은 예측 가능한 장점이 컸다. 1869년 수에즈운하가 개통하면서 운하를 통과하기 어려운 범선에 비해 자체 동력을 지닌 증기선의 강점이 더 두드러졌다.
증기선이 뿌리내리기까지 대중의 보수성과 정부의 관료주의에 맞서 싸워야 했다. 철도의 도입은 더 큰 저항에 부딪혔다. 바이에른에 최초의 독일 철도 노선이 건설될 예정이자 에를랑겐대 의학부는 대중 증기 열차 운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전문가 의견을 발표했다. 빠른 움직임은 뇌 질환을 유발하며, 빠르게 달리는 기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뇌 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선로 양쪽에 최소 1.5m 높이의 나무 벽을 세워야 했다.
라이프치히에서 드레스덴까지 이어지는 두 번째 독일 철도에 대해선 바람이 막힌다는 이유로 소송이 제기됐다. 당시의 의료 보고서는 노인들이 갑작스러운 기압 변화로 쉽게 진로를 잃을 수 있다며 터널 건설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프로이센에선 우정국장 카를 페르디난트 나글러가 베를린과 포츠담을 잇는 노선 건설에 반대하면서 비슷한 거리를 일주일에 네 번 운행하는 영국산 열차가 절반이 빈 채로 운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프로이센 황제 역시 “몇 시간 일찍 포츠담에 도착하는 것이 그리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포츠담에 알현하기 위해 소환된 루트비히 티크는 철도를 거부하고 마차를 타고 갔다. 루트비히 리히터 역시 증기기관차에 반대했다. 러스킨은 “나는 더 이상 철도 여행을 여행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뿐이고 소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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