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AI의 인간 노동력 대체, 또는 AI 시대의 ‘노동의 종말’은 생글생글에서도 커버스토리로 다룬 적이 있는 주제입니다. 전혀 새로운 얘기는 아닙니다. 최근엔 AI 서비스로 인해 소프트웨어 업계가 모두 망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었죠. 그럼에도 보고서 하나가 어떻게 이런 큰 충격파를 던지고, ‘AI발 종말론’ 얘기까지 퍼졌는지 궁금해집니다.
시트리니리서치의 보고서는 극단적 가정을 더해 결론에 다다릅니다. 예를 들어 화이트칼라의 대량 실업, 그로 인한 소비 급감, 종국에는 주택담보대출 시장의 붕괴와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전망합니다. 겉으로만 경제가 성장하는 ‘유령 국내총생산(GDP)’이란 개념까지 제시했어요. ‘유령 GDP’라고 할 정도의 공급과잉 문제가 경제 전반에서 불거질지, 보고서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어떠한지, 소프트웨어 업계의 공포심은 어느 정도인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AI가 만드는 '유령 GDP'…위기 부르나?
"수요 부족은 총생산 다시 줄여" 반박도
19세기 공급과잉 논쟁
경제학이 학문적 기초를 갖추기 시작한 고전학파 시절엔 ‘공급은 스스로 수요를 창출한다’는 믿음이 퍼져 있었습니다. 이는 19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장 바티스트 세가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명제인데요, 이후 ‘세의 법칙(Say’s Law)’으로 불립니다. 경제주체는 생산을 통해 소득을 얻고 그 소득은 다른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가 되기 때문에 경제 전체로 볼 때 지속적인 공급과잉(General Glut)은 있을 수 없다는 겁니다.
역시 19세기 경제학자인 영국의 데이비드 리카도와 토머스 맬서스는 이를 두고 다시 논쟁을 벌였습니다. 리카도는 세의 법칙을 받아들여 “부분적 과잉(특정 산업의 과잉생산)은 있더라도 경제 전체의 일반적 과잉은 없다”고 봤습니다. 예를 들어, 소프트웨어 산업과 같은 특정 분야에서 과잉이 나타나더라도 그로 인해 절감된 비용이 다른 분야의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에 경제 전체의 과잉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맬서스는 저축이나 소득분배 구조의 영향으로 “경제 전체적으로 수요 부족 또는 과잉생산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불완전균형을 간파한 케인스
이 논쟁에 중요 이정표를 만든 인물은 존 메이너드 케인스입니다. 그는 <고용·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에서 세의 법칙을 정면 부정합니다. 케인스는 ‘유효수요의 부족’으로 총공급이 총수요를 초과하는 상태가 정상적인 상황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축과 화폐의 기능도 영향을 미친다고 봤습니다. 가계와 기업이 소득의 일부를 저축하고 그 저축이 같은 규모의 투자로 이어지지 않으면 총수요는 총공급보다 작아집니다. 화폐는 투자위험이 없는 안전자산이어서 화폐 자체를 보유하려는 욕구도 있습니다. 기업이 생산활동으로 번 돈을 경기 상황에 따라 소비나 투자에 쓰지 않고 현금으로 보유하는 경우가 그런 예입니다. 총공급과 총수요가 일치하면 경제가 이상적인 균형에 도달한 것인데, 현실에선 공급과잉 등 불완전한 상태에서 균형이 이뤄지기도 한다는 겁니다.
“AI발 종말론은 허구” 주장도
현실로 돌아와 봅시다. 현대 경제학계의 시각처럼 경제 전체의 공급과잉은 일시적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시트리니리서치 보고서의 ‘유령 GDP’는 가능한 얘기입니다. 지금 빅테크들은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AI 기술개발 경쟁에 승부를 걸고 있는데요, 이게 실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유령 GDP가 되는 겁니다. 최근 미국 증시가 급등락을 반복하는 데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물론 반론도 제기됩니다. 시장에선 공급과잉도 우려하지만, 혹여 AI 기업들의 투자자금이 바닥나지는 않을지 주목합니다. AI 투자가 공급과잉을 낳을지, 필요한 투자가 집행되지 않아 관련 기술개발이 더뎌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또한 GDP는 증가하는데 현금을 쌓아만 두고 소비는 붕괴한다면 디플레이션이 생길 겁니다. 그러면 GDP는 다시 줄어들게 되죠. 이런 관점에선 ‘증가하는 유령 GDP’라는 개념 자체가 모순이 됩니다.
금리, 채권 매매, 보조금 등 정책 수단을 가진 정부와 중앙은행의 존재도 있습니다. AI가 생산을 주도한다고 해서 소비가 감소하는 경제를 정부가 방치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런 관점에선 AI발 종말론은 과장이고, 이런 논리 전개는 허구라고 봅니다.NIE 포인트1. ‘세의 법칙’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무엇인가?
2. 고전학파 경제학은 완전경쟁시장을 가정한다. 또 다른 가정이 있다면?
3. 경제는 장기적으로 균형을 찾아간다. 현실에 맞는 설명일까?AI발 종말론은 미래 대비하라는 경고
'사스포칼립스'는 이미 진행 중인 현실
금융위기와 연결한 시각
시트리니리서치의 시나리오는 단기 예측이라기보다 AI가 일자리와 소득분배, 금융시스템 등을 얼마나 취약하게 만들 수 있는지 조금은 과장되게 드러낸 경고 정도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탄광 속 위험을 알리는 카나리아에 비유하면 어떨까요? 여기에 인류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정말 큰일이 벌어지는 거죠.
미국 월가가 이 보고서에 주목한 것은 요즘 투자심리가 많이 위축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월가는 보고서대로 최악의 상황에 이르진 않겠지만, AI의 파괴적 혁신 및 그에 따른 연쇄효과는 충분히 우려할 만하다고 봅니다. 한편으론 글로벌 경제위기의 ‘10년 주기론’이 얘기되곤 하는데, 그런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저소득층의 비우량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이 문제였다면 2028년엔 화이트칼라의 우량 대출의 부실화가 문제라고 보고서는 짚습니다. 이런 비교 자체가 경제위기에 대한 평소 공포심을 반영하고 있는 겁니다.
주목할 부분은 유효수요를 동반하지 않는 기술 진보의 위험성을 금융위기와 연결한 시각입니다. 단순히 실업이 늘어나는 게 문제가 아니라 화이트칼라의 고용과 소득 상황이 주택담보대출의 상환, 자산 가격, 민간 소비, 그리고 은행의 대차대조표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로를 짚고 있는 겁니다. 또한 기술 진보가 자본 소유자에게 편향되면 소비 기반이 약화되고 장기적인 수요 부족, 즉 경기침체에 시달릴 수 있다는 현대의 불평등 연구와도 논점이 맞닿습니다.
‘AI 시대의 첫 희생양’ SW
시트리니리서치 시나리오가 미래의 공포라면, AI 에이전트(비서)로 인해 소프트웨어 산업이 타격을 받는 것은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지난달 3일 미국 뉴욕 증시에선 앤스로픽이 공개한 AI 에이전트 서비스 ‘클로드 코워크’가 법률·영업·마케팅·데이터분석 업무를 자동화해주는 기능을 선보였습니다. 예를 들어, 계약 검토, 컴플라이언스, 법률 브리핑 등을 자동화하는 법률 특화 AI 서비스를 출시한 겁니다. 이는 AI 모델 개발사가 소프트웨어 및 정보서비스 기업에 API(애플리케이션 간 소통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직접 끝단의 고객에게 전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날 소프트웨어 및 정보서비스 업체 주가가 급락하며 나스닥지수의 하락 폭을 키웠습니다. AI가 기존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비즈니스 모델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공포 때문입니다. 지금은 비전공자도 앱을 만드는 ‘바이브 코딩(vibe coding)’ 기술까지 개발되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소프트웨어를 사지 않고 직접 만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올 만하죠. “AI 시대에 소프트웨어 산업은 끝났다” “디지털 시대의 챔피언들이 AI 시대의 첫 희생양”이란 말이 벌써부터 돌고 있습니다.
요즘 기업은 필요한 소프트웨어를 직접 구매하지 않고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를 통해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서비스형 소프트웨어를 ‘사스(SaaS)’라고 부릅니다. 이 업계에 종말(아포칼립스)이 왔다고 해서 ‘사스포칼립스’가 엄습했다는 말이 요즘 유행입니다.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들의 가치는 이미 지난 1년간 약 10% 하락하며 다른 빅테크 회사와 대비되기도 했습니다. AI발 종말론은 조금 과장됐다고 해도 사스포칼립스는 현실의 공포가 되고 있습니다.NIE 포인트1.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에 어떤 위기가 있었는지 알아보자.
2. 유효수요를 동반하지 않는 기술 진보의 사례는?
3. 앤스로픽의 ‘클로드 코워크’가 화제다. 어떤 서비스인지 찾아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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