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블랙
색은 물체에 흡수되지 못하고 튕겨 나온 빛의 잔여물이다. 예컨대 사과가 붉게 보이는 이유는 사과 표면이 붉은색에 해당하는 긴 파장의 빛은 반사하고, 다른 파장의 빛은 흡수하기 때문이다. 같은 원리로 어떤 물체가 검은색으로 보이면 표면이 빛을 반사하지 않고 대부분 흡수했다는 뜻이다.
그래서 과학계에서는 진정한 어둠을 따로 구분하기 위해 물체가 반사하는 빛의 양이 전체의 0.5% 미만인 상태, 다시 말하면 반사율이 0.5보다 작은 상태를 ‘울트라블랙(Ultrablack)’이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빛의 반사를 극도로 억제한 울트라블랙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소재와 구조를 연구해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팀은 울트라블랙 중에서도 반사율이 유난히 낮은, 지금까지 보고된 것 중에 가장 어두운 옷감을 개발해 지난해 11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했다.
먼저 동물의 피부나 눈 조직에 존재하는 흑갈색 색소인 멜라닌과 화학적으로 비슷한 물질인 ‘폴리도파민(PDA)’으로 양모를 염색했다. 그 후 물체 표면을 아주 미세하게 깎아내는 ‘에칭(etching)’ 과정을 거쳤다. 에칭은 마치 조각가가 칼로 나무를 깎듯 눈에 보이지 않는 높은 에너지를 가진 플라스마 상태의 기체 입자들로 양모 표면을 정교하게 다듬는 기술이다.
연구팀은 플라스마의 에너지와 에칭 시간을 조절해가며 가장 어두운 상태를 구현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때 양모 표면은 에칭으로 인해 솟아난 얇은 섬유가 뭉쳐 극락조의 깃털처럼 빛을 가두는 나노미터(nm, 10억분의 1미터) 크기의 미세한 다발 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이렇게 완성된 원단은 빛의 99.87%를 흡수했고, 반사율은 0.13%에 불과했다. 이는 원래 영감을 얻은 극락조 깃털의 평균적인 색보다 더 어두운 수준이다. 연구팀은 정면에서 최대 120도 벗어나 옆에서 비스듬히 보더라도 색이 변하지 않고 여전히 어둡게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실 세상에는 이미 ‘반타블랙(Vantablack)’처럼 빛을 99.9% 이상 흡수하는 아주 어두운 물질이 존재한다. 그런데 반타블랙은 작은 기둥 모양의 탄소 나노 튜브를 바늘 숲처럼 촘촘히 세워 만들기 때문에 살짝만 건드려도 구조가 쉽게 망가진다. 게다가 제작 과정에서 독성물질이 쓰이는 경우도 있어 피부에 닿는 물건으로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연구팀이 울트라블랙을 구현할 대상으로 양모(울)를 선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공기가 잘 통하고, 부드러우며 인체에 해롭지 않아 일상생활에서 입을 수 있는 ‘유용한 검은 소재’를 찾으려 한 것이다.
이처럼 과학자들이 ‘진짜 검은색’에 집중하는 이유는 빛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위해서다. 빛의 반사를 극단적으로 억제하는 기술은 우주 망원경 내부에서 아주 미세한 별빛을 포착하거나 고성능 카메라 렌즈의 선명도를 높이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구조가 약하고 독성이 있는 물질뿐이라 활용에 한계가 있었지만, 이번에 개발된 원단은 인체에 무해하고 부드러워 실제 옷으로 만들어 입을 수 있다는 점이 혁신적이다. 앞으로 이 ‘울트라블랙’ 양모는 패션 산업은 물론 적에게 들키지 않는 스텔스 의류나 빛에 민감한 첨단 과학 장비까지 우리 생활 곳곳에서 폭넓게 활약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기억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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