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상화의 정치학
실물보다 크고 화려하게 그려진 왕
눈높이는 항상 감상자의 시선보다 높아
초시간적 영원불멸의 존재로 묘사
현실선 온갖 병 달고 산 왕
곰보에 성홍열 앓고 대머리, 평생 가발 집착
통풍·두통·관절염이 죽을때까지 괴롭혀
실물보다 크고 화려하게 그려진 왕
눈높이는 항상 감상자의 시선보다 높아
초시간적 영원불멸의 존재로 묘사
현실선 온갖 병 달고 산 왕
곰보에 성홍열 앓고 대머리, 평생 가발 집착
통풍·두통·관절염이 죽을때까지 괴롭혀
이에 따라 왕의 초상화는 실물보다 크고 화려하게 그려졌고, 초상화가 걸리는 위치도 정교하게 계산됐다. 감상자가 언제나 왕을 우러러볼 수 있도록 왕의 눈높이는 언제나 감상자의 시선보다 높게 맞춰졌다. 베르사유에서 복잡한 에티켓의 홍수 속에서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했고, 귀족들의 동태 하나하나를 끊임없이 감시한 루이 14세의 삶이 초상화에도 반영된 것이다.
루이 14세가 평상복 차림으로 초상화에 등장한 적은 없다. 언제나 로마 전사처럼 갑옷을 입은 모습이거나, 군주의 화려하고 장엄한 복장을 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유명한 작품은 1701년 야생트 리고가 완성한 루이 14세의 초상화다. 초상화 속에서 루이 14세는 안감에 흰 담비 털을 덧댄, 황금빛 백합꽃 무늬가 가득한 푸른색 망토를 걸쳐 입고 있다.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칼과 황금 왕관 등도 태양왕의 절대 권위에 어울리게 화려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이 그림은 아주 특이한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데, 바로 그림에 묘사된 왕의 모습이 생물학적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림의 상체는 60대 ‘할아버지’의 신체적 특징을 지녔지만, 하체는 20대의 건장한 청년의 다리로 그린 것이다. 한마디로 상체는 가발을 썼다고 해도 가볍게 늘어진 볼을 통해 영락없는 63세 할아버지의 모습이지만, 다리는 몸에 꼭 맞는 비단 바지를 입고 이제 막 춤을 추려는 듯한 자세를 취한 모습이 20대의 탱탱하고 건장한 다리가 분명하다.
젊고 영웅적인 왕과 늙고 준엄한 왕이 한 그림에 한 몸을 이뤄 공존하는 것은 단순히 화가의 실력이 미숙해 빚은 결과가 아니다. 젊은 몸과 늙은 몸이 합체된 이 괴물 같은 왕의 형상은 살아 있는 왕은 언젠가 소멸하게 될 육체를 지닌 인간적 존재이지만, 왕국을 지배하는 최고 주권자로서 왕은 초시간적인 영원불멸의 존재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국왕이체론’은 중세 말 이후 프랑스 군주정을 지탱해온 정치신학으로, 초상화란 은유를 통해 영원 불멸성을 재현한 셈이다.
하지만 이런 정치적 프로파간다에도 불구하고 생물학적으로 루이 14세는 한 사람의 병약한 인간일 따름이었다. 루이 14세는 77세까지 장수한 인물이었지만, 한편으론 온갖 병을 달고 살았다.
여러 명의 시의가 작성한 루이 14세의 <건강일지>는 의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남아 있다. 그는 1647년 14세 때 천연두를 앓았고, 1658년 성홍열, 1663년에는 홍역을 앓으며 죽음의 고비를 간신히 넘겼다. 그는 천연두의 후유증으로 얼굴에 곰보 자국이 생겼고, 성홍열을 앓고 난 다음에는 머리가 빠져 거의 대머리가 됐다. 그때부터 평생 가발에 집착했다. 또 피부병과 위염·설사 등 가벼운 질병을 달고 살았으며, 평생 편두통과 치통·통풍·신장결석·당뇨 등 만성질병의 고통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복잡한 의례와 함께한 왕의 식사는 하나의 정치 행위였고, 루이 14세는 하루 세끼 코스별로 10종류의 요리가 나오는 식사를 아침 3코스, 저녁 5코스로 매일 소화했다. 침실과 마차 안에 과자류나 초콜릿 등이 수북이 쌓여 늘 사탕을 입에 물고 살았다.
하지만 이처럼 대책 없이 먹어대다 보니 왕은 수시로 위염을 앓고 설사를 되풀이했다. 여기서 두통과 현기증, 심장 부담, 의기소침 등이 파생됐다. 시의들은 당시 처방대로 사혈이나 관장을 반복적으로 시행했고, 때론 왕의 숙면을 위해 약간의 아편을 처방하기도 했다. 결국 시의들이 행한 관장과 사혈은 왕의 건강을 해쳤다.
여기에 단것을 입에 달고 산 까닭에 치아 문제가 심각했다. 루이 14세는 10대부터 잇몸에 염증이 생기고, 30대에는 치아 대부분이 썩었다. 결국 1685년에는 위턱의 치아 하나만 남긴 채 이를 전부 뽑아냈으며, 치아가 없어진 상태에서 왕의 음식은 모두 유동식으로 바뀌었다.
설상가상 1685년 받은 수술이 잘못돼 루이 14세의 입천장에 구멍이 나 버렸다. 그래서 액체를 마시면 분수처럼 그 일부가 코로 흘러 들어갔으며, 잇몸에 염증이 생기면서 혈농이 흘러 왕 주변에 가면 악취가 진동했다. 결국 루이 14세는 1685년 이 구멍을 막기 위해 잇몸을 14번이나 뜨거운 쇠로 지지는 대수술을 받았고, 이후 이 수술은 세 차례나 계속됐다고 한다.
왕의 고난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잇몸 수술 1년여 후인 1686년 왕은 항문 근처에 종기가 발견됐고 곧 수술해야 할 정도로 커졌다. 결국 여러 차례 종기를 짜내고 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수술을 받았다. 곧이어 오른쪽 발에서 통풍이 도졌고, 항문의 종기가 종양으로 발전해 장기로 번지는 치루가 됐다. 이때부턴 키니네와 독주·하제 등 온갖 치료법이 총동원됐으며, 왕의 몸도 점점 지쳐갔다. 결국 그해 11월 루이 14세는 치루 수술을 받았는데, 소독제도 마취제도 없이 무자비하게 수술이 진행됐다. 사료에선 “왕이 꿋꿋하게 버티며 수술 중 단 한 번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고 전하지만 그 신빙성에는 의문이 남는다.
이후에도 왕은 통풍과 두통을 계속해서 겪었다. 괴로운 수술 후유증으로 우울증과 류머티즘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이런 육체적 고통 탓에 ‘만사가 귀찮아진’ 왕이 낭트칙령 폐지 등 주요 사안을 대충 처리해버렸다는 역사적 해석마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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