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기업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한 중소기업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폐쇄된 모습. /한경DB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한 중소기업 공장이 가동을 멈추고 폐쇄된 모습. /한경DB
한계기업을 제때 퇴출했더라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0.4~0.5% 증가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행은 지난 12일 ‘경제위기 이후 우리 성장은 왜 구조적으로 낮아졌나’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199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성장 추세가 구조적으로 둔화한 가장 큰 원인으로 민간 소비와 투자의 위축을 지목했다. 그러면서 부실기업 퇴출 지연이 투자를 위축시켰다고 분석했다.“부실기업 방치하면 다른 기업에도 악영향”한계기업이란 재무구조가 망가져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는 기업을 말한다. 통상 이자보상비율이 3년 연속 100% 미만이면 한계기업으로 분류한다. 이자보상비율은 기업의 1년치 영업이익을 그해 상환해야 할 이자비용으로 나눈 것이다. 이 값이 100% 아래라면 사업해서 번 이익으로 은행 빚의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한계기업이 계속 연명하면 정상적인 기업이 자금을 조달할 길마저 좁아진다. 그래서 한계기업을 이른바 ‘좀비기업’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은은 실제 퇴출된 기업의 재무적 특성을 바탕으로 국내 12만여 개 기업 중 ‘퇴출 고위험 기업’을 뽑아냈다. 2014~2019년 퇴출 고위험 기업의 비중은 4%였지만 실제 퇴출된 기업은 절반인 2%에 그쳤다. 2022∼2024년에는 퇴출 고위험 기업이 3.8%, 퇴출 기업은 0.4%로 격차가 더 벌어졌다. 한은은 “한계기업은 같은 공급망 안에 있는 다른 기업의 경영까지 악화시키고 신규 기업의 진입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적했다.

한은은 퇴출 고위험 기업이 정상 기업으로 대체됐다면 2014~2019년 국내 투자가 3.3%, GDP는 0.5% 상승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2022~2024년에도 국내 투자는 2.8%, GDP는 0.4% 올랐을 것으로 봤다. 지난해 명목 GDP를 감안하면 부실기업을 ‘물갈이’하지 못해 10조원 안팎의 성장 기회를 놓친 셈이다.

원칙대로라면 경쟁력이 훼손된 기업은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것이 맞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지만 망할 기업은 망하고, 경쟁력 있는 기업이 살아남는 게 시장경제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1990년대 경제 거품이 꺼지면서 한계기업이 속출했는데도 당장의 후폭풍을 우려해 과감히 정리하지 못했다. 이것은 결국 ‘잃어버린 30년’의 장기침체로 빠져드는 패착 중 하나가 됐다.한은 “원활한 진입·퇴출로 역동성 높여야”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임현우 한국경제신문 기자
한은은 1970년 석유파동 당시 성장률이 급락한 뒤 이전 추세를 웃도는 수준으로 회복한 것과 달리, 이후 찾아온 경제위기에는 과거의 성장세를 되찾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사태를 거칠 때마다 성장률이 단계적으로 하락했다. “구조적 성장둔화를 완화하려면 금융을 지원하더라도 기업의 원활한 진입과 퇴출을 통해 역동성을 뒷받침하는 방향이 돼야 한다”는 게 보고서의 조언이다.